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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산) 부산 박물관 저건 맷돌인가? 하고 보았는데 고래의 뼈라고 씌어 있었다. 고래의 크기를 짐작해보는 한편으로 소설 '백경'이 떠오르고 저렇게 큰 고래를 그 옛날 어떻게 잡은걸까? 아니면..... 조개 껍질에 구멍을 내어 팔찌처럼 차고 다녔다는.......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멋지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느낌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왜적들이 침입하여 우리 군사들을 잔인하게 제압하는 장면이었다. 저런 그림을 남겨 둔 것은 후세에 다시는 저런 치욕스런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되겠다는 교훈을 주는 것일지...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은 일본에 가서도 크게 환영 받았던 듯 해은일록 - 해은(海隱)민건호가 매일 기록한 일기인데 책을 앙증맞은 크기로 묶어 놓은 정성과 성실함이 대단하다. 손때 묻은 책들을 만져보고.. 더보기
(부산) 오륙도 스카이 워크 오륙도인데 섬이 섬을 가리고 있어서 스카이 워크 방향에서는 두개의 섬만이 보인다. 무섭다고 해서 혼자 다녀왔다는...... 더보기
(부산) 송도에서 해운대로 송도에서 해운대로 왔다. 몇 년전에 왔던 해안가에는 영화관련 전시물과 조형물들이 그때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추운줄 모르고 다녔는데 오늘밤엔 바닷바람이 꽤 차게 느껴지고 전에 이미 보았던 것들이라 아쉬움없이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아침 식사를 위해 올라간 식당에서 첫날에는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둘째날에는 음식들보다 벽을 장식한 장식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 작품 감상하듯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다녔다. 더보기
(부산) 자갈치 시장과...... 부산 국제영화제 거리를 지나 롯데마트에 차를 주차하고 자갈치 시장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과 설을 앞두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백화점 안에서는 아래 위로 물이 솟구치고 쏟아지는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옥상에 전망대가 있다고 하여 올라가보니 전망대겸 정원이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파란 하늘과 맑은 날씨로인해 더욱 시야가 확 트인 느낌이다. 코로나 상황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꼬~~ 더보기
그날, 그곳, 그들의 이야기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면서 부산역과 부두로 수많은 피란민이 모여들었고 중구는 피란처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중앙동에서 대청로, 동광동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40계단은 구호물자를 내다 팔던 장터이자, 판자촌 언덕길로 이어지던 삶의 길목이었고 피란 중에 헤어진 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처절했던 전쟁의 그날, 피란민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곳, 40계단을 통해 암울했던 시절. 그러나 결코 꿈과 희망을 버릴 수 없었던 그들. 흑백사진은 당시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남쪽으로 25미터 떨어진 곳에 새롭게 만들어 놓은 현재의 40계단. 석탄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연탄을 찍어내던 틀은 아주 어린 시절에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참빗과 담뱃갑도..... 더보기
(부산) 석당 박물관 경상남도청으로 건립되어 전시에 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동아대 석당 박물관을 찾아갔다. 무엇보다 복천동 고분 유물이 보관되어 있고, 국보인 동궐도가 있다고 하여 호기심이 일었다. 석조관음보살 좌상 고려시대로 추정 2층에서 내려다 본 광개토대왕릉비 모형 1925년 경상남도청으로 건립되었으며, 변형된 고전주의 양식의 벽돌 기와 건축물. 피란수도 당시에 정부종합청사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더보기
(부산) 임시 수도 기념관 전쟁시 대통령 집무실이었던 임시 경무대 뒷편으론 임시 수도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시절인데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들의 삶의 모습이라 궁핍하기 짝이 없다. 삼시세끼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모습에 힘든 시기를.... 우리 조상들이 참 잘 헤쳐왔구나 하는 존경심이 인다. 천막교실에 들어서니 어려운 시절이었겠지만 낭만적인 모습도 떠 올랐다. 피난지의 천막 교실.... 그리고 교실 앞에 종 더보기
전쟁 때 대통령은 어디에...... 1926년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건립된 동 서양 절충양식의 벽돌 건축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3년간(1950~53)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사빈당이란 당호가 쓰여 있다. 외교활동과 주요 회담이 열렸던 곳이고 옆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 모형이 앉아 있었다. 내부는 군산에서 보았던 일본식 건물의 느낌이 많이 풍겼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무 바닥에 닿아 보여지는 빛과 창살 그림자가 가만히 뜰을 내다보며 관조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