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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여 박물관2 충청남도의 청동기시대부터 마한까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자 - 이동식변기 부여 능산리 사지 석조사리감 백제금동대향로 서산마애삼존불 모형.... 금동관음보살입상 - 머리에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쓴 '관음보살'이다.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작은 보주를 잡고 있는 자세가 독특하다. 둥글고 앳된 얼굴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며 꼭 다문 입가에는 보일 듯 말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신체의 굴곡을 드러내는 양감이 자연스러우며 우아하고 세련되어 백제 조각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더보기
부여 박물관 롯데에서 4,223억원을 투자하여 리조트, 아울렛을 조성하였고 차후 스파빌리지, 테마정원을 충청남도와 협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약간의 화려함과 소박함이 어우러져 싫증이 나지 않는 백제 기와들 심초석 더보기
백제금동대향로에 숨겨진 것들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가 부여 박물관에 있다 하여 찾아갔다. 높이 61,8cm 무게 11.85kg 으로 생각보다 컸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악어, 신선, 날개달린 물고기,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등이 산모양을 배경으로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있어 마치 보물찾기처럼, 숨은 그림 찾기처럼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향로는 향을 피워 나쁜 기운을 막는 도구이다. 부여 능산리 사찰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봉황 한 마리가 향로 꼭대기에 앉아 있는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뚜껑은 붇러운 능선이 겹겹이 쌓인 산 모양이다. 산 사이사이에 구멍을 내어 향의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만들었다. 향을 산 모양으로 만드는 방식은 중국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박산은 신선들의 이상 세계인 신산을 .. 더보기
(부여) 위례성 위례성의 위치는 지금 서울에 속해 있지만 이곳 부여 백제문화 관광 단지 북쪽 끝에 이렇게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영화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 여겨졌다. 초가 처마에도 저렇게 고드름이 달려 있는 것도 신기하다. 볕이 좋은 날인데도 그늘이 진 곳이라 아직 녹지않고 있었다. 볕이 잘 드는 곳과 황토빛은 포근한 느낌이 들고 앉아 있고 싶게 만든다. 시늉뿐이긴 하지만 성 둘레에는 해자까지 만들어 놓았다. 더보기
(부여) 백제문화단지 오랜기간(6000여일)에 걸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입장료는 6000원 부여 리조트에 숙박하면 4000원. 표를 사서 입장하려니 오늘 관람 중에 드라마 촬영이 있어 혹시 불편하시더라고 양해 바란다고 안내를 하였지만 일찍 와서 아직 촬영이 이뤄지는 곳은 없어서 별다른 불편은 없었다. 다만 관람하는 내내 들려온 '사랑해요~ 백제~~오오~♬~♪'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노래가 조금 거슬렸다. 좀 다른 음악과 적절하게 섞어 들러주었으면 좋았을 듯 싶었다.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저 노래가 지겨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후에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잔잔한 음악이 들려왔다. 신을 벗고 올라가라는 안내문이 보여 잠시 왕비 노릇을 해보시라고 권하고 사진도 찍어 드렸다. 죽간과 목간에 이렇게 역사적 이야기들을 기.. 더보기
어제 저녁 오늘 저녁 어제 저녁은 구드레*** 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오늘은 롯데 아울렛에서 저녁을 먹었다. 먹은 음식보다는 실내 장식이 더 눈에 들어왔다. 소의 워낭이나 오래된 등잔을 모아놓았던 어제 식당과 오늘 저녁을 먹은 아울렛과 숙소 입구의 장식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더보기
(부여) 여흥 민씨 고택 부여 여흥민씨 고택을 찾아갔다. 제대로 티맵이 안내를 해서 신난다 하고 갔는데 그만 문이 닫혀 있었다. 고택을 한바퀴 돌면서 밖에서 찍고 아쉽게 돌아섰다. 다음을 기약하고..... 더보기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와 정림사지 박물관(아래)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고 씌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년)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다. 그 이후로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와적기단은 건물을 짓기 전 기초가 되는 땅을 단단히 하고 높여 습기나 침하를 막고 건물의 위용을 높였다. 정림사지에서는 각 건물지에서 이러한 와적기단이 대량 출토되었다. 백제의 불교문화는 신라와 일본에도 전파되었는데 사찰건축에서 정림사지의 와적 기단이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어 정림사지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요한 역사유적지임을 살펴볼 수 있다. 탑의 하단부에는 글씨도 새겨져 있었다. 고려시대 석불좌상은 언제 보아도 다소 유치하기도 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