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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여) 여흥 민씨 고택 부여 여흥민씨 고택을 찾아갔다. 제대로 티맵이 안내를 해서 신난다 하고 갔는데 그만 문이 닫혀 있었다. 고택을 한바퀴 돌면서 밖에서 찍고 아쉽게 돌아섰다. 다음을 기약하고..... 더보기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와 정림사지 박물관(아래)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고 씌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년)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다. 그 이후로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와적기단은 건물을 짓기 전 기초가 되는 땅을 단단히 하고 높여 습기나 침하를 막고 건물의 위용을 높였다. 정림사지에서는 각 건물지에서 이러한 와적기단이 대량 출토되었다. 백제의 불교문화는 신라와 일본에도 전파되었는데 사찰건축에서 정림사지의 와적 기단이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어 정림사지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요한 역사유적지임을 살펴볼 수 있다. 탑의 하단부에는 글씨도 새겨져 있었다. 고려시대 석불좌상은 언제 보아도 다소 유치하기도 하.. 더보기
쉿, 저기 신동엽이 있다. 완력이 강해 보이는 각진 사각형의 턱과 날카로운 눈매, 음습한 곳에서 일하는 비밀 경찰의 느낌도 난다. 참 재미있기도 하고, 절묘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이작품을 신동엽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와서야 보게되었다. 이런 사람 뒤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신동엽 시인은 요주의 인물로 취급되었던 것일까? 좌익활동을 한 적도, 반정부활동도 하지 않은 신동엽 시인에게 유신정권 말기에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아마도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로 표현한 때문일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했을 때도 제 발 저린 이들은 "뭐~?나를 껍데기라고?" 했을 런지도..... 내가 본 신동엽의 책 사진에 삽입된 신동엽 문학관 사진에는 이 작품이 없어서 작품 제작연대를 보니 2020이라고 새겨있었다. 신.. 더보기
(부여) 궁남지 궁남지에 들어서서 포룡정을 바라보는데 막 분수가 솟구쳐 올랐다. 마치 우릴 환영하듯이..... 백제시대의 조경기술을 엿볼수 있는 궁남지는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으로 부여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백제시대의 별궁에 딸린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무왕35년(634년)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물을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본떴다'라는 기록이 전하고 있단다. 현재 복원공사를 통해 조성된 것보다 당시의 궁남지는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제던가 이 다리를 건널 때 사람도 많았고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났다. 아마도 행락철 연꽃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듯 싶다. 봄볕이 따사롭고 주변 버드나무에 물이 막 오른듯한 지금이 호젓하기도 .. 더보기
(부여) 능산리 사지 능산리 사지는 567년 백제 위덕왕이 부왕인 성왕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백제 왕실의 기원 사찰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당시 모습을 투명 유리에 그려 상상을 돕게 하였다. 백제문화관광단지에는 아래 사진처럼 오랜 노력 끝에 복원해 놓은 건물이 있었다. 높은 언덕 위로 성벽이 보이고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 되었던 곳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다. 이곳에 원래의 모습으로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다시 세워놓는게 나을까 생각해보다가, 이곳은 이런 모습대로 남겨두는게 더 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텅빈 공간에 기둥을 받쳤던 주춧돌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상상하는 묘미가 있으니 말이다. 더보기
(부여) 왕릉원 고분군 부여 숭목전 - 백제는 도읍의 위치와 시기에 따라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로 구분된다. 이중 사비백제는 성왕이 도읍을 부여로 한 538년부터 660년까지이며,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다. 숭목전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비롯하여 사비백제의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거행하는 공간이다. 지금까지는 사비백제 왕족의 무덤인 능산리고분군(왕릉원)에서 매년 대왕제를 거행함에도 별도의 제례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곳에 2019년 숭목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부여왕릉원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사비시대의 백제왕릉이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군은 중앙의 왕릉군 7기이다. 이들 고분은 모두 왕과 왕족들의 분묘로 생각되며 백제 후기 묘제를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석실분이다.. 더보기
(부여) 낙화암 사자루 -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 백마강 쪽으로는 백마장강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백화정 -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낙화암 정상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로 백제 멸망당시 (서기 660년)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 '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건립했다. 유서깊은 다른 유적보다도 낙화암이 내 머릿속에 들어차게 된 것은 다분히 어릴 때 배웠거나 읽은 책 속의 이야기가 관념적으로 그려진 때문이 아닐까? 선녀같은 옷을 입은 삼천의 궁녀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이 낙화암에서 몸을 내던져 하늘하늘 꽃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한데다가 나라를 사랑하는 충절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에 낙화암에 처음 .. 더보기
고목 나무는 한 곳에서 불평불만 없이 별다른 조건없이도 오랜 시간 살아가며 묵묵히 견디곤 한다. 1100~1500년 정도 되었다는 용문산 은행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도 그 위용은 대단하다 210년된 무수골 느티나무 240년된 남해의 보호수 선정릉 은행나무 500년 방학동 은행나무 550년 김포 장릉 거제도 매미성 앞 수락산 느티나무 수원 화성 앞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진주성 느티나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