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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모정의 세월

 

가끔 사람들 DNA안에 그 사람만의 

예정된 삶의 모습이 정교하게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그것을 굳이 운명이라 이름 붙인다면 운명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두 번 살도록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운명이.........지금이 두 번째 삶.

 

나는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채

절벽 아래 파 밭에 널브러져 정신을 잃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난리났다며 내 주변을 에워쌌다.

엄마는 나는 듯이 계단을 두 세개씩 뛰어내려와

버선 발로 병원으로 나를 업고 내 달렸다.

 

한국 전쟁 통에

두 아들과 딸하나를 가슴에 묻으신 나의 부모님들은

휴전이 되어 서울에 정착하면서 첫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도 딸이었고, 셋째로 드디어 아들인 내가 태어났다.

그러니 오죽 애지중지 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항변을 하지만 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의 장난과 개구진 모습....그리고 제어가 안 되는 행동은 상상 그 이상이었단다.

개구진 조카 누구누구 어릴 적과 비슷했어? 아니 그 이상....

그럼 누구누구네 아들 누구정도? 아니 그 이상.....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집 주변은 낭떠러지가 많아 안전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허다하게 떨어지고 깨지고 찔리고....

아마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원인 중 하나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직전 어느 날.

 

환한 대낮이었던 기억이 난다. 낭떠러지 위에 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그 나무 위에 올라가 놀다가 떨어지면서 바위를 구르고 굴러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먹을 것을 들고 나간지 5 분도 채 안된 시간에 벌어진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애가 떨어졌다고 소리치는 통에 집안에 있던 어머니가 버선 발로 뛰어나오셨는데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60개가 넘는 계단을 2-3개씩 한꺼번에 뛰어내려오셨단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완전히 날랐다고 한다.

그게 어머니의 힘,모성의 힘이 아니었을까?

 

난 엄마가 그 전에도 그 이후도, 한번도 뛰는 걸 보지를 못했다.

매 번 엄마가 뛸 때마다 나는 엄마 등 뒤에 기절한 채 엎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날라 내려오셔서는 날 들쳐엎고 병원으로 또 내달리셨다.

 

최근 큰 누이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학교에 다녀와 보니 수박 만하게 부은 내 머리가 피묻은 붕대로 감겨 있고

비스듬히 누워서 계속 토하고 있었으며 엄마와 아버지는 그 옆에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망연자실..... 촛점 잃은 눈으로 하늘을 보고 멍하니 계시더란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죽지 않는다면 아마 바보가 될거라고 다들 이야기 했단다.

그 이후에도 '쟤는 오래 못 살거야'라고들 했지만,

다행히 죽지도 않고 약간 어리버리 하지만 아직 살아있다.

......007만 두번 사는 게 아니다.


 

당시 어머니가 나 때문에 뛰어내리길 반복했던 그 계단입구...

오랫만에 가 보았다. 계단의 수를 다시 세어보니 68개였다.

 

나를 위해 지극 정성이셨던 엄마는 상상이나 하고 계실까?....당신의 손주가 장가를 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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