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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유년의 기억

 

 

지금은 왼쪽에 철책이 처져 있지만 지금부터 40년 전 그땐,

꽤 넓은 공터가 있었고 오른쪽 담은 옛 담 그대로 시멘트만 덧 씌운것 말고는 40년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벽에 대고 공도 차고 불장난도 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벽에 구멍도 뚫어서 야단도 맞고 공 넘어가면 찾으러 가서는 또 야단 맞고,

겨울이면 따뜻한 남향이라서 이벽에 기대서서 놀고  여름이면 돗자리 깔고는 밤늦도록 하늘쳐다보고 이야기 하고, 킹스컵대회 축구 중계를 어른들과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들으면서 스르르 잠들던 기억...'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이회택 선수가  골을 넣어서 우리 대한민국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감격에 차서 항상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외치던 이광재 아나운서의 중계방송.....

이제 그만 집에 들어와 자라고 우리 남매들을 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공터.

딱지치기,구슬치기,공놀이,불장난,비가오면 함정을 만들어 놀기,눈싸움,겨울이면 하수구에서 나온 물이 얼어 썰매타기까지

모든 놀이가 이루어지던 곳. 한가지 흠은 높은 곳에 있어서 공을 차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공이

떨어지면 그걸 주으러 한참을 내려 가야했던 일이다.

 낭떠러지 아래에는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암자에서 기르는 거위는 어찌나 크기가 큰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보다 훨씬 더 컸다.

공을 주으러 한 참 내려가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거위를 피해가는 거였다.

거위는 낮선 우리들이 나타나면 어찌나 쫓아다니면서 꽥꽥거리는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종종 거위가 꽤꽥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암자에서 일하는 험상굿은 할머니가 나오시는데 걸리면 얼마나 무서운지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셔서는 거위보다 더 큰 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야단을 치셨다.

그 공이 그 높은데서 떨어지면 기왓장이 남아나겠느냐는둥 사람이 다치면 어떡허냐는둥

한참을 설교하다가 너희들 여기 부처님께 백팔배하면 공을 돌려주겠다고 하신다.

그러면 할 수없이 백팔배를 해야했는데 힘든 것은 둘째고 앞에 있는 불상이 어찌나 무섭던지....

 

가끔 거위도 피하고 할머니도 피해서 공을 가져올 수 있는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거위와 할머니가 무서워서 가끔씩은  그 험한 낭떠러지를 기어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기어내려간 이유 중 또 한가지는 그 절간 뒷켠에 있던 두그루의 복숭아 나무 때문이었다.

복숭아가 채 익기도 전, 겨우 매추리알 정도 되었을까 싶으면 어김없이 우리들의 차지였다.

밤에 몰래 낭떠러지에 있는 나무를 타고 내려가서는 손으로 더듬거려서 양쪽 주머니 가득 익지도 않은 복숭아를 따가지고 오는데

들키지 않고 올라오면 다같이 뿌듯한 기분에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환호도 잠시 뿐. 집에 돌아와서는 주머니 안쪽 사타구니가 가렵기 시작하는데 주머니안에 있던 복숭아털이 

연한 살갗에 닿아서 가렵고 따갑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 어른들에게 그 먹지도 못하는 복숭아를 미련스럽게 따가지고 오느냐고 또 다시 야단을 맞고는 했었다.

어쨌거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되게 마련이다.

 

4월18일 화단 -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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