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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우리 엄마는 란

누군들

그리운 사람

없으리오마는

.

.

.

 

매,란,국,죽

외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엄마와 엄마 자매들의 이름들이다.

큰이모..... 매

둘째인 우리 엄마... 란

그리고 셋,째 넷째 이모인..... 국과 죽

 

한 분인 외삼촌은 봉....봉황의 봉이었을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외삼촌은 아주 잘 생겼다고 외숙모는 회고하신다.

 

역시 내가 뵙지 못한 외할아버지는 당시로서는 꽤 멋스러운 분이셨을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할 당시라서 여자이름 조차 말자, 끝순이.....가 있을 정도였는데

네 딸들의 이름을 저렇게 지으셨으니 딸을 넷을 낳을 작정을 하셨는지....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셨다.

그 중에서 둘째 딸인 우리 엄마는 순서에 의해 '란'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너무도 순진하고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셨던 분이셨다.

얼마나 순진한지를 알 수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

 

 

엄마가 시집 오셔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러니까

엄마한테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신 상태로 이야기를 하셨던 모양이었다.

일종의 부부싸움.

 

당시 오고간 대화 중에 할머니께서 '외짝 사랑이 어디 있어?' 하시더란다.

그 말 속의 '외짝사랑'을 엄마는 처음에는,사랑채 문이 한 짝 밖에 없어서 외짝 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하시고는 당시를 회상 하시곤 얼굴이 빨개지셔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주위에서들 법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번도 우리 오남매에게 소리내어 야단치거나 매를 들지도 않았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아침 준비를 하셨던 분.

 

그렇게 순진하시고 반지빠르지 못해 남한테 속기도 잘하시던 분을,

왜 하늘은 무심하게도 젊은 나이에, 그것도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시게 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돌아가셨다.

난 한번도 어머니라고 부른 기억이 없다.

언제나 나에겐 ..............엄마....

 

돌아가셔서 발인하는 날

얼마나 눈이 많이 오던지 엄마를 모신 차가 중간에 서 버렸다.

어린 오남매를 두고 떠나려니 차마 떠날수가 없으셔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천지사방이 하얗고 눈물이 흐르기는 커녕....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 보니 방송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눈이라고 각 지역을 연결해서

눈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조금 더 사셨으면 아들 딸들이 결혼하는 것도 보시고 손주들의 재롱도 보셨을텐데...

아주 작은 의학상식이 좀 더 있었더라면 돌아가지시도 않으셨을텐데...

작은 치료로도 나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우린 너무 무지했다.

 

지금 살아계시면 좋아하실 일이 많으셨을텐데... 지금 살아계셔도 80대이시니.....

오래 전 지금 내 나이때 돌아가셨다. 한창 나이에....

 

누군들 그리운 사람이 없으리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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