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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그해 겨울 새벽에...

 새벽 3시경.

잠결에 울리는 전화벨소리.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지요? 이 새벽에..."

"여기 성북경찰서인데요. **번지 집주인 되시지요? 불이 났습니다."

 

우리집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는 순간.

앞이 캄캄해져서 무얼 해야 할지... 망연자실.....

옷을 대강 추스려 입고 집사람과 텅빈 거리를 쏜살같이 차를 몰고 갔다.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 30일 새벽에.....

 

몸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가 화장실 출입이 불편하시자

우리는 살던 한옥집을 전세 주고 아파트로 전세를 얻어 이사를 했다.

그런데 그만 전세를 주고 온 한옥집에서 불이 난 것이다.

 

도착해 보니 주변도로는 불자동차와 수많은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이웃집 지붕 위에서 소방대원들이 불난 우리집을 향해 연신 소방호수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흘러넘친 물들로 인해 집 앞 길은 온통 빙판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나타나자, 저기 집주인 왔다고 하면서 경찰에게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다가와 가장 먼저 "화재보헙 들으셨어요?"하고 묻는다.

가정집에 화재보험든 예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고, 우리도 역시 들지 않았다.

 

추위를 몹시 타는 내가, 그 추운 새벽에,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 하는 생각 만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다.

더우기 세입자 중 한 사람은 화상을 입어서 병원에 갔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화재가 진압이 되고 소방대원들도 자리를 떴다.

뿌옇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고, 그 아침 햇살과 함께 모든 소리들도 함께 사라졌다.

불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방금 전의 아비규환과는 전혀 다른 고요가 찾아왔다.

마음을 진정 시키며 잿더미로 변한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목불인견.

 

 

마루에서 누워 쳐다보면 눈에 들어왔던 매끈하고 고운 서까래와 들보의 나무들은 온데간데 없고

검게 타고 흉측하게 갈라진 나무들이 질척한 바닥에 불규칙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제비들도 날아와 집을 짓곤 하던 처마도 검게 변해 군침흘리는 괴물의 입처럼 물을 떨구고 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집이라 너무나 허망했다.

 

주변 사람들은 화재의 원인이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실화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막상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명 실화라고 남의 일에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단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좀 추스리고 생각해보니 내가 운전 해서 간 길이

고대앞 길이었는지, 미아리고개 넘어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혼이 나간 상태로 반나절을 보냈다.

 

 

<큰 아이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나무는 대문 쪽이라 불에 타지 않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다.>

 

 며칠이 지나  입원했던 세입자도 회복이 되어 퇴원하였고

우리는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전세금을 다 돌려주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화재 진압하느라고 지붕이 망가진 이웃집들도 수리를 원해서 모두 수리비를 지불하였다.

 

주변 어르신들은 집수리와 전기공사를 다하고 전세를 준지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인데

세입자에게 오히려 변상을 요구해야지 세입자 원하는데로 다 들어주면 그게 다 빚이 될텐데....

어떡하려구 그랬느냐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인데다가 나이도 나보다 많으신 분이

내 손을 잡으면서 하소연하는데 집사람과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은행 빚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직도 악몽같은 그 새벽의 전화벨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나에겐,

화재 뒷처리를 하며 보낸 그 겨울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그해 겨울 마지막 날에....

 

<불난 집에서 가져온 유일한 것......기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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