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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잊혀진 이름

  어린 시절 내이름은 지금 사용하는 이름이 아니었다.

 

종선(鍾善).

 

점쟁이가 바꾸어야 한다고 했을까? 아니면 작명가에게 물었을까?

아무튼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어준 이름이 종선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내 위로 태어난 형과 누이를 한국전쟁 통에 셋이나 잃고 망연자실,

그 후 휴전이 되어  내리 딸 만 둘을 연이어 낳고 나서 마침내 낳은

귀하게 태어난 아들이니 어쩌겠는가?

아마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 이름을 열 글자로 바꾸어야 좋다고 한다면 바꾸셨을 것이고,

개똥이란 이름이 아이를 위해 좋다고 한다면 아마도 기꺼이 개똥이란 이름으로 바꾸실 분들이셨다.

나에 대해 온갖 정성을 다한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종선아~~

종선아~~밥 먹어라~~

종선이 어머니~~

 

어느 드라마에선가 비슷한 이름이 내관의 이름으로 불려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호적에 있는 이름보다는 종선이가 내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다.

 

 

 

 그런데 호적까지 개명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으셨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맏이시고 나 또한 맏아들이니 이름을 바꾸면 큰 댁 어르신들이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셨는지

호적에는 돌림자를 사용한 원래의 이름으로 그대로 두셨다. 

 

내가 혼란스러웠던 일은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실 때였는데, 종선이가 아닌 이름인 호적의 이름을 부르셨다.

주민등록상에 등재된 이름이 취학통지서에 나온 것이었으니 당연히 종선이란 이름을 부르실리가 없으셨겠지.

 

너무 어색했다. 내 이름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선생님께선 재차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시 확인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 동안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저게 내이름인가? 하고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하곤 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일은 당시 집에서 부르는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의 아이가  우리 반에 있었으니.....

성이 달라서 그래도 덜 헷갈렸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부를 때마다 어느 게 내 이름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세월이 가면서 정리가 되게 된 것이 서류 상의 이름이 갖고 있는 확장성의 힘이었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학교에 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공적인 무기를 가지고 집으로 동네로 퍼지게 되었다.

 

생활통지표에는 어김없이 종선이가 아닌 이름이 올라와 있고

내가 사용하는 교과서나 공책이나 학교에 낼 그림의 뒷면에는 어김없이 종선이란 이름이 아닌

학교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집이나 동네에서도

종선이란 이름의 사용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기억 속에서도 멀어져 갔다.

지금은 그런 이름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하다.

 

 

  일몰. 해질무렵의 또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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