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책 사이에서 손 때가 많이 묻고 낡은 책이라 눈에 뜨여서 집어 들었다.
지나영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 지나영?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았다.
남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쳐났던 사람이 갑자기 멈춰야하고 멈출 수밖에 없다면....
저자는 35~40도에 육박하는 더운 여름 날씨에도 에어컨은 커녕 전기장판을 틀고, 아래위로 내복과 겨울옷을
예닐곱 겹 껴입어야 몸에 느끼는 한기를 좀 떨쳐낼 수 있었고 끊임없이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렸단다.
미국의 유명한 병원의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반년이나 흐른 뒤에야 겨우 알게 된 병명 자율신경계 장애 중
하나인 '신경매개저혈압'
발병하기 전에는 매일같이 복싱과 요가 조깅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에너지를 자랑하며 쉴틈없이 일과 모임을 만들어서 우리 아파트의 시장이라고 불리웠던 사람이라
더욱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지나영은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거쳐 서울 소재 의대 레지던트에서 떨어졌음에도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가 된 사람.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런데
영어가 원활하지도 않은데, 정신과 의사라니 그것도 어린 아이와 공감을 나누면 소통이 이뤄져야 하는 소아정신과 의사이다보니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데 웬걸~~!!! 상대하는 환자가 어린 아이라 어눌한 의사 선생님의 발음을 교정해 주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단다. 와아~~!!! 탄성이 절로 났다. 돈을 받아가면서 영어를 배우고, 어린 환자는 의사 선생님을 가르친다는 자존감으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치료의 계기가 되었으니 일거양득.
미국에서 의사인 남편과 결혼도 하고 잘 나갔는데 덜컥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투병 생활로 인해 더욱 내적인 단단함이 묻어나는 글이다.
많은 에피소드들로 인해 읽는 내내 의미있던 시간이었다.
- 40대 정신과 의사인 나도 한국의 화장품 광고를 보고 혹하는데
한창 남의 눈에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은 얼마나 자주 휘둘리고 좌절하겠는가.
-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는 돈과 같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을 똑같이 얻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실망하고 괴로워한다.
손실 회피 편향 즉, 1만원을 얻었을 때는 1만원의 행복을 느낀다면 1만원을 잃었을 때는
그보다 훨씬 큰 5만원짜리 실망을 느낀다.
-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것을 더 깊고 강하게 느낀다. 실제로
떡 하나를 훔쳐 간 사람에 대한 분노는 쉽게 잊지 못하는 데 반해,
나에게 떡 하나를 더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빠르게 잊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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