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작가들의 주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딱딱했던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든다.
작가 백수린의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읽으면서 감성지수가 높아진 기분이 드는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다. 작가가 묘사한 글 속의 이미지를 떠 올려보면
작가가 살고 있는 곳이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짐작이 된다.
혼자서 단독주택에서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실감나게 그려보여주고 있다.
'옛 골목과 낡은 집으로 이루어진 우리 동네' 그곳에서 살아가며 겪고 깨닫고 느끼는 것들과 함께.
<나는 편리나 실용의 깃발을 높이 든 자본주의의 논리로도 함부로 지워버리지 못한 시간의 무늬들이 남아 있는 이 도시를 아름다운 장정의 고서적처럼 아낀다.> 라는 표현에서 감탄을 했는데 곳곳에 보석을 숨겨두고 있는 책이다.
자신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언젠가는 떠나지만 오랜 기간 살아온 많은 이들은 재개발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이가 다른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들어온 질서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사람들의 대한 애정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런 작가와 이웃인 50대 여성 E언니가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사회라 여겨진다.
<한밤중에 동네를 다시 한번 찾아가본 후 계약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아빠는 나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셨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쫓아오는데 달아나거나 숨을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내가 묻자, 그제서야 아빠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생각조차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남성이 보는 세상과 여성이 보는 세상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을 그 순간 절실히 깨달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 이건 남성 여성의 시각차가 아니라, 작가의 아빠가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서 조차 이런 시각차이를 발견하게 되니 일반 남성들에 대한 시각은 얼마나 부정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수도생활을 하다 10년 만에 귀국하여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이웃 50대 여성 E언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삶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를 생각케 하였다.
-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 완벽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게으름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완벽한 것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결국 그 누구도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속삭임이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백수린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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