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고양이를 버리다

 내 또래의 남자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의 불화는 당연한 일처럼 흔한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겪은 파란만장하고 고난한 시대를 살아오신 세대이다보니,

자식인 우리의 세대를 그야말로 모든 안락함을 다 갖춘 시대로 여기셨을 것이다.

그 분들은 배부르고 등 따뜻하기만 한 것으로 최상의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평 불만은 투정에 불과하다고 여겼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던데도 이렇게 게으름을 떤다고? 그런데도 공부를 안 한다고?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긴 하지만 하루키도 아버지와 심한 불화를 겪는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는 일은 흔한 일이었단다.

아버지와 고양이를 상자에 담아 해변에 두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보니 그 고양이가 먼저 집에 와 있더라는 이야기.

그때부터 고양이를 키우게되어 하루키의 책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구체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에도 참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는데

실제로는 그 시기에 하루키의 아버지는 난징에 있지 않았단다.

 

전쟁 체험을 한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부족할 게 없는 환경에서,

아들인 하루키의 학업 태도는 못 마땅했으리라.

 

1949년생인 하루키도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20여년간을 얼굴도 안보고 지내다

아흔이 된 아버지를 60이 다 된 하루키가 병상에서 마주한다.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풀어놓지는 않고 하루키답게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다. 

아버지와의 구체적인 불화 내용은 다른 책에서 별도로 언급 할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작가 자신은 시시콜콜 이야기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루키는 좋건 싫건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자신에게 계속 이어지고 물려져 내려오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고 있는데 공감가는 대목이다.

 

점점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같은 이런 류의 책에 더 손이 간다.

하루키가 직접 삽화를 부탁했다는 카오 옌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고양이를 버리다 /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2) 2023.12.10
불편한 편의점  (10) 2023.09.12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8) 2023.07.22
정신없이 내 닫는 사람들  (2) 2023.05.23
대망 다시 읽기  (0) 20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