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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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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구성원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흩어진 상태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임에도 안타까움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래서 소설 속의 가족들이 어떤 부도덕한 일을 꾀하더라도 그들 편에 서서 보게된다.

이른바 전지적 주인공 시점이다.

 

영희는 밤무대의 이름없는 악사인 창현을 만나 살림을 차린다.

배우로의 전향이란 헛된 꿈에 빠진 창현을 뒷바라지 한답시고 미장원도 팔고 모든 돈을 탕진하다시피한다.

그럼에도 육욕에 눈이 어두운 영희는 전혀 게의치 않는다.

전형적인 도회의 탕녀와 기둥서방의 치정인 것이다.

더욱 창현은 그런 영희에게서 야금야금 돈을 뜯어낸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만 창현은 아이를 원치 않음은 물론 놀라 까무러칠 파렴치한 행동을 한다.

영희가 병원으로 아이를 떼러 중절수술을 하러 간 사이에 온갖 돈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도망을 간다.

그것도 이웃들로부터 아내 입원을 핑게로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돈까지 꾸어서......

영희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나락에 이른 것이다.

영희는 그런 창현에의 배신에 미용실에서 사용하던 면도칼을 소지하고 다닌다.

 

한편 인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고에 진학 하지만 열악한 학교 환경과 몇 교사와의 불화로 인해 학교를 떠난다.

집으로 돌아가 개간지 일을 잠시 돕고는 편지 한통을 남기고 가출을 감행한다.

스스로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뭔가를 도모 하려면 그래도 가장 큰 도시로 가야 할 거 같아 부산으로 간다.

헌책방에서 기거하며 사원겸 먹고자는 일을 해결하기도 하고,

한약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대입검정고시까지 치른다.

 

명훈은 씨앗의 겨우 두 배 정도의 수확을 올릴 뿐인개간지 를 팔아치우고

가족들 모두 서울로 이주하지만 서울 살림이 만만치 않고 가지고 있는 돈도 떼이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 국민소득이 100불이 안 되던 시절, 대부분의 국민들이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다.

 

 

- 행복이란 어떤 면에서는 개체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그 개체에게 가장 만족스럽게 소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희의 상상력은 먼저 둘 만의 소비에서 불타올랐다. 생물적인 욕구부터 동물적인 욕구까지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획득의 수고로움 없이 소비하는 과정이었다.

 

- 거리는 걷기에 꼭 알맞은 초여름 밤이었다. 그게 또 영희의 현실감을 마비시켜 그때쯤은 꺼내도 좋을 궁색한 얘기를 자제하게 만들었다.

 

- 뒷날 인철은 예술과 인격을 분리시키려는 서구적인 예술가론에도 남다른 거부감을 나타냈다. 예술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권리인 양 착각하고, 그것으로 인격적인 결함을 얼버무리려는 시도에는 무자비할 만큼 비판적이었고, 나중에는 그런 감정의 확대가 예술뿐만 아니라 대의 일반에까지 번져 그가 산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다시 말해, 휘두르는 깃발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데 약용되는 기색만 있으면 그 깃발 자체까지 의심했으며, 특히 부도덕한 행실이나 대중적인 허영심의 면죄부로 내밀려들 때는 당시 이미 시대의 공통선으로까지 자리 잡아 가던 민주화도 인권도 자유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는 종종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난 받았다.

 

- 세상에 못 볼 일이 자식 죽은 것과 농사 타들어 가는 것이다.

 

- 성취에 이르지 못하면 일생을 그 갈망과 갈증에 시달려야 하고 성취에 이르러도 현실로는 허망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그 지향.

 

- 자학할 건 없어 어차피 시들게 되어 있는 농촌이야. 해방뒤 우리가 수입한 개인주의는 종종 개인의 자유보다 책임 쪽을 강조하는 행태로 영향을 준 탓에 우리는 은연중 자신에게 비정하게 된 측면이 있지. 그렇지만 농촌 문제라면 곧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게 드러날거야.   <변경8/이문열/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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