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좋은 언어로

너무 한창 나이에 요절한 시인 신동엽.

그래도 다른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홀로남은 시인의 아내인 인명선 여사의 노력으로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랐고

문학관도 세워졌으며 신동엽의 이름을 내걸고 후배들의 창작 기금도 지원하는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건 흐믓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신동엽 시인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던 책이다.

어릴 적 시절의 통지표, 입학허가서부터 결혼식 사진, 가족 사진, 직장에서의 모습,

시인으로서의 생활과 다른 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 등과 신동엽을 육필 원고, 편지 등이 실려 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이나 작품을 색안경을 쓰고 들여다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신동엽이 아나키스트였고 장인이 월북하였다는 것 때문일 것이고,

'껍데기는 가라'고한 다소 과격하고 직설적인 싯귀 때문인가?

하지만 그의 시를 보면 그가 인간 본성을 따스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동엽 시인이 처음 등단했을 때 시인의 작품을 신문사에서 마음대로 고치고 일부를 삭제하고 게재한 것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너무나 큰 횡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펴내기까지에는 신동엽의 부인 인병선 여사와 신동엽의 아버지의 힘입은 바 큰데

기억력이 남달랐던 신동엽의 아버지와 신동엽 관련 신문 기사 하나 빠짐없이 스크랩을 하고

시인 자신도 꼼꼼하게 기록한 시작노트를 유족들이 다 보관해왔던 것이다.

 

어렵기 그지없던 초근목피의 시절 게를 먹고 간디스토마에 걸린 것이 원인이 되어

후에 간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신동엽, 어렵던 시대가 그를 앗아간 셈이다. 

 

< 신동엽 평전 - 좋은 언어로 / 김응교 / 인명선 유물 공개 고증 / 소명출판 >

 

 

 

< 좋은 언어 >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하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유작시, 사상계 1970>

 

 

-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 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 동엽이 태어난 1930년은 일본이 중국에 싸움을 건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1년 전으로,

일제는 바야흐로 조선에 있는 모든 것을 긁어가 무기를 만들던 시절이다.

숟가락, 젓가락마서 빼앗겨야 하는 식민지의 기막힌 현실....

 

- 동엽의 성적표에는 병으로 결석했다고 기록된 날이 잦다.

어릴 적부터 그리 건강하지 않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1942년 4월 동엽이 5학년 때 일본인 교장은 '특별한 애'라고 칭찬하면서

조선 아이로서는 유일하게 신동엽을 뽑아 일본여행의 기회를 준다.

 

- 무엇보다도 아나키즘을 주장한 크로포트킨의 책은 동엽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나키즘이란 어떤 체제나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개인이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아나키즘에 찬성한 동엽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한쪽에 쉽게 찬성할 수 없었다.

 

- 무정부주의자인 동엽은 우익, 좌익 양쪽에 끌려가 매를 맞았다.

 

- 전주사범 학생들은 대댜수가 농촌출신의 가난한 수재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몸으로 겪어온 학생들에게 토지 개혁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 토지개혁운동에 참여한 동엽은 친일파로 꾸려진 정부에 맞섰다.

이 일로 인하여 동엽은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 1950년대의 예술계는 서구의 실존주의나 모더니즘이 유행이었다.

이러한 추세에 신동엽은 동의할 수 없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체험한 동엽은,

비극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모더니스트의 문학을 극도로 비판한다.

 

-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를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로 형상화한 시인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려 한다.

이는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시에 대한 이해를 편협하게 했다.

 

 

 

신동엽 시인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해지려는 관성  (0) 2022.04.08
변경 9  (0) 2022.03.21
박세리와 공동묘지  (0) 2022.03.13
변경 8  (0) 2022.03.10
변경 7  (0)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