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신경숙의 책을 다시 읽어야 할까? 많이 망설이다 집어 든 책이다.
앞으로도 계속 표절파문은 신경숙에게 주홍글씨처럼 따라 다닐테지만, 애써 신경을 끄고 읽으려 했다.
살고 싶어 썼을 작가를 위해.
공전의 베스트 셀러인 <엄마를 부탁해>의 아버지 버전이라 할 수 있을 작품인 <아버지에게 갔었어>
아버지를 개별자, 단독자가 아닌 '아버지'라는 틀에 묶어 생각하면서 쏘았을 화살을 이제 뽑아 드리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린 '아버지'라고 하면, 가족 구성원들을 돌보고 거두는 기둥같은 의미로의 아버지만을 생각해 왔는데, 한 인간, 한남자로서의 모습도 함께 그리려한 글이다.
주인공의 고향인 J시는 우물 정자가 들어가는 지명이라고 한 걸 보면 정읍으로 생각하며 읽게 된다.
바로 작가 신경숙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그래서 더욱 주인공은 작가와 겹쳐지는 모습으로 읽힌다.
주인공도 작가로 설정되어 있으니.
소설 속에 표현된 어떤 인물은 작가 주변의 현존하는 누구와 닮은 인물일 수도 있을 터인데, 그 인물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당사자로 여겨지는 실존 인물의 반응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라져도 무방할 함께 한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고 두렵다고 하면서 작가로 살아가야 하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은 공감이 갔다.
함께 한 어떤 시간을 내 식대로 문장으로 복원해서 내놓는 일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해보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두렵다. 사라져도 무방할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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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헌이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어 상실감에 젖어 있는 여자다.
그런 연유로 가족들과 조금은 소원하게 지내왔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는 계기로 홀로 계셔야 하는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에 머물게 된다.
글의 대부분은 화자인 내가 아버지에 대해 들은 이야기나 편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오래된 궤짝 속에서 발견한 아버지와 외국건설현장에 나가 있던 오빠와의 편지를 통해 주인공의 머릿속에 있던 아버지가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완성이 되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상실감으로 인한 빈 공간을 아버지의 이야기로 채운 기분.
아버지의 편지 부분에서 맞춤법이 서툴러 읽는데로 쓴 글씨가 정겨웠다.
< 비행기를 그르케 오래 탔따니 마니 곤해겄따. 니가 나에게 쓴거와 똑가튼 거로 삿따>
외국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늙어서 배운 한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매번 편지 말미에 씌어있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는 글은
우리네 모든 부모들이 대부분이 그런 심정으로 자식들을 대해왔을 것 같았다.
부분부분 따로 소제목을 붙인다면,
아버지와 전쟁, 아버지와 송아지, 아버지와 큰 오빠, 아버지의 상경기, 등등의 소제목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집안 어른들이 군대 징집을 면케 하려고 아버지의 검지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에선 심장이 저려왔다.
지금의 우리의 윗세대가 직접 몸으로 겪어온 격랑들, 한국전쟁, 4.19, 민주화 운동 등....속의 아버지.
삶의 하중을 강하게 맨몸으로 버티며 살아낸 우리네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표현들.....>
- 그 가게는 그런 곳이었다. 당장 필요한데 그것만 사러 읍내까지 나가게 되지는 않는 물건들이 선반이나 유리장 안에 오밀조밀 진열되어 있었다.
- 어떤 물건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버리지도 없애지도 누구에게 준 적도 부숴버린 적이 없어도 어느 시간 속에서 놓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고 희미해진다. 그랬지, 그랬는데,라는 여운을 남겨놓고.
- 앵무새가 해찰을 하는 것 같을 때
해찰하다: 어떤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
- 나는 내가 감당 못하겠는 개와 고양이와 앵무새 들을 아버지에게 데려다줬듯 도시에서 책들이 감당 못할 정도로 쌓이면 트럭에 실어 아버지에게 보냈다.
- 함께 한 어떤 시간을 내 식대로 문장으로 복원해서 내놓는 일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해보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두렵다. 사라져도 무방할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 뚜껑이 열린채 덩그렇게 놓인 변기가 막 켠 불빛 속에 고적하게 있을 뿐 아버지는 없었다.
고적하다[孤寂--]국어뜻인적이 없어 쓸쓸한 느낌이 들 만큼 고요하다
-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내빼는 상상도 신발을 갈아 신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탈의 상상으로 상기한 내 뺨이 빠른 속도로 그곳의 공기에 적응해 누르스름해졌다.
-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 그게 뭐라고 그리 인색을 떨었는지. 딸을 잃고 나니 모든 일에 경계선이 사라졌다. 웃을 일도 따질 일도 지킬 일도 무의미해졌다.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그저 덩어리진 채 흘러갔다.
-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라고 할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 라고
- 때로 오랜 시간들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서사를 겅중 건너뛰는 이런 엉성한 질문이 통하는 관계가 가족이기도 하다.
- 헌이가 그렇게 말했으면 맞는 말이다, 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 긍정적인 말들의 영향은 작지 않았다.
- 안내문이 공허하게 읽혔다.
-젊은 날엔 잠이 모자라서 등만 대면 곯아떨어지곤 했는디 인자 잠잘 시간이 많아지니까는 항상 깨어 있는 거 같어야. 아버지가 뭔잠을 그리 깊이 자느냐고 누가 업고 가도 모르것다고 했는디 인자는 깊은 잠이 안들어서 기척이 다 들린다.
- 좋은 일이면 모를까 나쁜 일을 서울서 바쁘게 살고 있을 너그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내 마음이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 아그들한테 말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살었네.
- 내가 순옥씨 아법지말고 순옥씨가 누구나고요? 물었더니 입을 딱 다물어버리야. 나는 너그 아버지가 누구보고 씨라고 하는 걸 처음 들었네. 그것도 여자한테 말이다.
- 나헌티 내일은 새신문이 배달되는 걸 의미했오.
- 내가 내뱉은 말은 나를 찔러댔ㄷ. 나는 자주 내가 내뱉은 말에 깊이 찔려서 자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 거칠어진 손바닥이 뺨을 실켜놓았다.
- 좋은 세상 만났으면 잘 살았을 사람들.
- 아버지가 깊은 잠을 자던 집은 우리 가족의 안식처였다는 생각.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지. 아버지가 편하게 깊은 잠을 자는 집은 든든했다.
-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엄마에게서는 너나 이제 아는 일이지라는 말을, 여동생게게서는 언니가 듣고도 잊었을거야, 라는 말을 듣고 있을까.
-이제야 마음은 무슨 일이든지 다 바다드릴 수 잇을 것 가튼데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업게 되엇습니다. 다시 만낫을 때 갈재의 골짜기에서 뭔 일이 잇었는지 캐묻지 않아 감사햇습니다.
- 기억나지 않는 지난밤을 상기시켜 아버지를 다시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아버지가 잠들지 못한 지난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동안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네가 더 일했어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 반은 니가 했구나. 내 자식인 것이 항상 든든했다.
-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이 옹졸해져서 쓰기를 주저했던 말들이 메마른 아버지의 입에서 풍부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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