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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예기치 않은 것을 얻어오는 것

 동네를  걷다보니 지하철 두정거 거리를 걷게 되었다.

길은 넓고 반듯하고 깨끗했으며 우람한 가로수 나무들도 그늘을 만들어 주어 걷기 편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그에 딸린 상가로 위치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 했다.

오죽하면 이따금 연립주택들이 보이기라도 하면 반가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오래된 집들과 담이 있는 정감있는 골목이 보고 싶었다.

 

의정부 외곽에 가면 그런 집들이 있지 않을까싶어 전철을 타고 갔다.

그런데 의정부역에 내리니 내가 오래전에 왔던 의정부역 주변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좀 더 걸어서 의정부 외곽쪽으로 가려다가 가기 전에 의정부역 주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 부모님과 연천 큰댁이나 작은 아버님댁에 가려고 기차를 타기 위해 왔던

의정부역 주변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기억을 되살려 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의정부역 옆에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던 미군부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역 주변을 돌다가 미군부대가 있었던 장소에 커다란 기념탑을 보게 되었다.

천만다행 탑 뒤쪽에 당시의 의정부역 주변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자 잊혀졌던 오래 전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는 이 사진이 내눈에 들어와 나로 하여금 세월의 지층에 깔려 사라질 기억을 되살려준 것이다.

돈암동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 의정부까지와서는 미군부대 담장을 따라 걸어 의정부 역사로 왔었다.

담장의 색깔은 군부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밝은 미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높은 담장 위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버스에서 의정부역이 보이면 바로 내려야 하는데 미처 내리지 못해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 한참 걸었던 일,

기차 시간을 놓칠까 뛰었던 일들 그러다 놓치면 다음 기차 시간까지 기다리며 대합실 안팎을 드나들며

미군부대 담장 앞에 있는 노점상이나 포장마차에서 주전부리를 사먹었던 기억들.

지금은 연천까지 차를 운전해서 가면

불과 한시간 남짓이면 쉽고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당시엔 한번 가려면 큰 결심을 해야 했다.

 

난 오래된 집들과 골목을 보려던 생각은 까맣게 잊고 그 당시 부모님을 비롯해서

다양한 조합으로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의정부역 주변을 걷다가 기억을 떠올리다가를 반복하였다.

오늘 떠올린 기억 속의 일들은 아마도 단도리가 잘되어 쉽게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마치 창고 정리를 하다가 먼지 쌓인 오래된 반가운 물건을 보고

'이런게 있었네'하고 잘 닦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을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은 전혀 예기치 않은 것을 얻어오는 것이란 말이 어울리는 하루였다.

의정부 외곽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골목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미군부대자리에 세워진 기념탑
기념탑 뒤의 오래전 의정부역 사진이 내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지금 의정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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