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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지는게 이기는 것이다.

 연일 터지는 학폭사건들을 보고 듣다보니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당시 내가 다닌 학교 아이들이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었는지,

그런 폭력 사건을 겪거나 본 기억이 거의 나지를 않는다.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이 거칠게 싸운 걸 본 적도 없다.

콩나물 시루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무탈하게 졸업한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때리거나 맞거나 한 기억도 없고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단체로 매타작을 당한 것이 유일한 것 같다.

 

학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하는 곳이고, 선생님 말씀이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지상최대의 과제였다.

초중고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했다. 이건 개근 상장이 있다는 걸로 증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피치못해 결근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40여 년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출근을 했다고 하면

믿지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결근하지 않고 다녔다는 증명이 없으니 안타깝다. 어쨌거나

이런건 성실하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융통성이 1도 없는 것으로 요즘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 대부분이 나와 같다.

엄마가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신 유일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요령도 좀 피우고 얍삽하게(?) 살 수도 있었을텐데, 아주 고지식하셨다.

 

이런 것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도 유전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오남매에게 불안함이 있으셨는지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그 중에 많이 하신 말씀 중 하나가 "지는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이었다.

 

그러시면서 덧붙이시길 "때린 놈은 발을 오무리고 자고, 맞은 놈은 발을 뻗고 잔다"는 것이었다.

우리 오남매가 누구와 싸우거나, 맞거나 아니면 누굴 때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신게 이해가 안되었다. 지금 그러셨다면 "우리가 언제 싸우기나 했어요?"하고 되물었을텐데,

그땐 선생님이나 아버지의 이야기에 토를 달거나 하면 안되는 걸로 여겼었다.

 

때린 아이는 밤새 맞은 아이가 어디 심하게 다쳤을까봐 조마조마해서 잠을 못 이루지만,

맞은 아이는 맘은 편해서 발을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 말씀이었다.

그때는 엄한 아버지가 어려워 그러려니 하고 수긍했지만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말도 안되는 논리였다.

 

때린 아이가 발을 오무리고 자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맞은 아이도 맞은게 억울해서 발을 뻗고 편히 잘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험한 세상을 살아갈 자식들에게 미리미리 단도리를 하시려 그랬었나보다.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셨고 아버지는 엄하시기는 했지만

매와 폭력으로 우리를 통제하지 않으셨다.

지금에서야 부모님의 커다란 은혜를 입은거라 여겨진다.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한 친구와 올라간 개운산.....지금 가보니 많이 정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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