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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작가의 책상

 작가의 서재에 관한 내용의 연재나 책은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작가의 책상이다.

서재보다는 작은 공간인 책상과 작가의 글쓰는 자세나 생각을 담은 글이다.

지금껏 보아온 작가의 주변 공간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다분히 연출의 의도가 드러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의도는 없어 보였다.

55명이나 되는 작가들을 일일이 섭외를 하고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작가의 글쓰는 모습이 각양각색 으로 다양하게 담겨 있고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멘트가 곁들여져 있다.

사진 속에 담긴 모습과 책상에서 그 작가의 이런저런 모습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작가의 글쓰는 모습은 저명한 화가가 그린 자화상이나 인물화에서 그림 속 인물의 내면까지 느낄 수 있듯

사진 속의 작가와 주변의 모습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이 있는가 하면, 정신없이 너저분한 책상도 있고,

엄청 큰 책상이 있는가하면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옹색한 책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방의 조리대 위에 앉아 글을 쓰는 베로니카 체임버스의 글과 사진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고 앉은 자세를 좋아한다는 작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가족사를 어린 시절에 겪은 심리적인 것이 투영된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서 마음 한켠 짠해지기도 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는 고스란히 성인이 되어서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질 크레벤츠는 수십 년간 유명 작가들의 사진을 찍어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작가가 감사의 말 말미에 글을 쓰는 성스러운 내적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 해준 작가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작가들의 책상이 내 책상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내심 크게 안도했다는 말을 적어넣어 웃음 짓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상을 소재로 한 책도 기대가 되는데 한 두명도 아닌 여러 명을 설득하여 사진을 찍고 진솔한 자신의 속내를 내 보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만 독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도 많을테니 말이다.

 

 

 

- 질크레멘츠의 카메라가 포착한 이 내밀한 은신처의 주인들 가운데 책상을 완전히 포기한 이들도 있다. 미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솔 벨로우는 책상 대신 제도판 앞에 똑바로 서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줄 쳐진 노트를 든 채 소파에 앉아 있고, 윌리엄 버클리는 차 뒷자리에 앉아 녹음 장치에 대고 구술하고 있으며, 로스 맥도널드는 앉은 자리가 곧 침대이자 책상인 셈이고, 워커 퍼시와 캐슬린 샤인은 실제로 침대에서 글을 쓴다. 

 

- 아흔살이 넘어서 버나드 쇼가 발표한 작품들은 대부분 졸작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도 졸작인 거 알아.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장 피아제는 "나의 아내는 친절하게도 내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 타자기가 시에 대한 속 깊은 친밀감으로부터 나를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면,

손글씨로 인해 다시 그 친밀감을 회복한 셈이다.<파블로 네루다>

 

- 글쓰기는 엄청난 고독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천성적인 자유분방과 고독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어려운 선택 앞에서 내가 취하는 행동은, 나의 시간을 글쓰기에만 죄다 쏟아붓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행은 물론이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여행 중에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아한다.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 관찰하기도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주의력과잉장애'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나는 세상에서 그게 제일 쉽다.<수전 손택>

 

- 나는 동 트기 전,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홀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는다. 그리고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그게 바로 당신 만의 의식이예요.<토니 모리슨>

 

- 나는 언제나 마지막 한 줄, 마지막 단락,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맨 먼저 쓴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돌아가 글을 앞으로 진행 시킨다. 따라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안다. 나의 목적이 우엇인지도 알고 있다. 다만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는데, 그건 신의 은총에 맡긴다.<캐서린 앤 포터>

 

- 나는 어떤 산문 픽션도 타자기로 집필한 적이 없다. 언제나 노란색 필기용 종이에 2B 연필로 글을 써 왔고, 지금은 그 방식이 너무 익숙하고 편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도구의 품질이 작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떤 건 너무 엉망이라 종이에 쓴 글이 지워지지 않을 때도 있는데, 사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만약에 어떤 섬으로 휴가를 갔는데 노란색 종이를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아마 깊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 물론 하얀 종이에도 쓸 수는 있다. 다만 그 경우에는 불리한 조건이 추가되는 셈이다. <윌리엄 스타이런>

 

-나는 내 침대를 사랑한다. 내 침대는 책상보다 훨씬 널찍해서 책이나 원고를 마구 늘어놓을 수 있다. 또 내 침대는 책상보다 푹식푹신하고 부드러워서 낮잠 자기에도 그만이다. 나를 둘러싼 좋은 것들은 모두 침대를 구심점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밤이건 낮이건 어디서 나를 찾아야 하는지 다들 알고 있다는 점이다.<캐슬린 샤인>

 

- 나는 대체로 느슨한 버뮤다 셔츠나 아주 헐렁한 티셔트, 또는 넉넉한 스포츠 셔츠에 늘어진 양말, 늘어진 샌들을 주로 신는다. 그런 차림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얽매지 않으며 손과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더없이 편하다.

<제임스 A. 미치너>

 

- 나는 믿어. 팔을 들어올리면 결국 날게 된다는 걸.<앤 페트리>

 

- 나는 부르클린의 삼 층 짜리 계단식 빌딩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별 탈없이 잘 지낸다. 언젠가 친구 하나가 날 보더니 꼭 고양이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유인즉 내가 틈만 나면 높이 기어 올라가서 눈 아래 보이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여왕처럼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엄마의 소녀>를 쓸 때 가끔씩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의 가족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에 특히 엄마에 대해 글을 쓰려면 가능한 한 높은 횃대와 같은 장소가 필요했었다. 때로는 너무 깊이 파고들다가 자칫 길을 잃거나 늪과 같은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아파트의 다락방이나 적갈색 집의 지붕밑, 심지어 주방의 조리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로니카 체임버스>

 

<작가의 책상 / 질 크레멘트/ 박현찬 옮김 / 위즈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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