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현장을 본 아이. 그것도 가족이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걸 본 아이.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아이, 그리하여 괴물이라 불리게 된 아이는
또 다른 괴물을 만난다.
부모 입장에서 갓난 아이 때 우리 아이가 조금 다른 아이와 다르면 조금 늦는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도 다른 아이보다 늦다. 아이의 엄마도 여느 엄마처럼 그리 생각했고
혼자서 버티고 비티다가 칠 년이 세월이 흘러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하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아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의학적으로는 감정표현불능증.
사람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싸이코패스가 떠오르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인다.
아이의 엄마는 '희노애락애오욕'게임을 하면서까지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치려고 하고 편도체가 작아서 일어난 일이라 편도체처럼 생긴 아몬드를 꾸준히 먹인다. 하지만 감정이란 게 학습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몬드를 먹는다고 편도체가 커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거라 한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묻지마 칼부림으로 인해 주인공에게 헌신을 다하던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입원해서 식물인간처럼 지낸다.
이 사건 현장에 있던 주인공의 아무 감정이 없는 무덤덤한 태도가 큰 화제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전혀 주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괴물로 비쳐지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릴적 부모와 헤어져 살인을 빼고는 다 해보았다는 또 다른 괴물같은 아이, 곤이를 만나게 된다.
두 아이의 만남에서 비극도 희극도 아니라지만 난, 희극으로 읽혀진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생겼으니 말이다.
아주 희귀한 경우라 개연성은 희박하지만
작가는 주인공처럼 우리도 주변의 일들에 대해 아무 감정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묻는듯 했다.
그리하여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눈에는 괴물로 보일지라도 그들 내면에서는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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