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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아렌트를 읽다가 일어난 생각들

 

 너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우리사회를 편가르는 일등공신인 정치이야기는 대화 소재로 꺼려지게 된다.

그렇다고 정치 혐오증에 빠져 아예 벽을 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의사와는 다른 그들만의 의사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즘엔 언론들마다 어느 한 정파의 대변자노릇을 한다는 생각이 든지 오래고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보게된 책이 아렌트였다. 나치의 만행을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충격을 준 인물인 한네 아렌트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고.

 

그중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는 지은이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이어서 다행이었다.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색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도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삶의 개인사에 일일이 골치아픈 정치 문제는 전문가인 내편을 선정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따르곤 한데서 조금이라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TV에서 자기들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정치해설을 하다보면 내 주체적인 판단이 흐려지기 일쑤였다. 고로

그들의 현란한 해설이 아닌 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작은 근거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란 무엇이고 현대 정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라면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석 할지 말이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일본의 정치 상황에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으로 설명한 것이라 우리 정치 상황을 이야기 하기 껄그운 것도 어느 정도 객관화 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가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란 사실과 '전체주의'가 처음엔 긍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나폴레옹에 지배를 당한 독일등의 나라에서 '프랑스'라는 적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로 지금 같이 강력한 '국가'가 탄생한 것이고, 이런 '적'에 의해 생긴 결속력은 계속 '적'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2차대전 독일의 결속력 강화를 위해 골라낸 적이 '유대인'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유대인 박해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고 들어왔다.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들이 그 참상을 다루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절절함에 감동한 이야기는 질리도록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핍박을 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들이 당했던 것을 잊어버리기나 한 듯 강한 힘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인들을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이 당했기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인가? 그건 복수라는 이름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다.

폭력을 지금 끊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만큼의 이성도 없다면 인간도 아닌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금 살아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하고 조언을 할지가 궁금하다.

 

 

 

 

- 20세기 폭력의 시대를 겪었던 한나 아렌트가 평생을 싸워왔던 것은 '전체주의'지만, 작금의 소비사회, 매스미디어 사회는 또 다른 전체주의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아렌트와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사람들을 뜨끔하게 만들었던 아렌트의 일갈은 지금도 유효하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나치스의 유대인 하갈은 어느 특정한 악한 개인이 저지른 게 아니라 주어진 명령을 아무 생각도 없, 의문도 없이 충실하게 수행한 평범한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었다.

 

-아렌트는 당시 '악의 타켓'을 찾아 응징하고 자신들은 면죄부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런가? 자신도 모르게 체제 내에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포장하려는 현상이 지나칠 정도다.

 

-정치의 역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매스미디어는 정치를희화화하고 쇼로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하지 못해 안달하는 정황이 작금의 상황이다.

 

-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상가는 종종 속전속결로 독자나 청중의 공감을 얻기 휘해 귓전에 맴도는 말을 사용하여 '알기 쉬운' 결론으로 확 잡아당기려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알기 쉬움'이란 단순하게 '명확한 답'만 주어지면 만족하여,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생각할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정치사상가가 독자나 청중을 '대신하여' 생각해주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특정한 정당이나 운동단체가 주장하는 것의 정당성을 정치사상가가 독자나 청중을 휘해 '증명'해주기도 한다. 그런 것을 결국 어떤 사상가나 어떤 사상가가 지지하는 집단의 정치적 가치관에 귀으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철학'이라기보다는 '종교'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사상'에 관심을 지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 '알기 쉬움'을 간ㅍ나으로 내세우는 '정치사상'은 그럴듯해 보이고 위세가 대단하다. 그래서 '정치'를 스포츠나 게임처럼, 적과 자기편이 싸워서 이기고 지는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응이 쏠쏠하다. 내용이 '알기쉬운'사상일수록 거기에 근거해 '알기쉬운'슬로건을 내결고 '자기편'을 많이 결집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잇을 거 같기 때문이다.

 

- 국민 전체가 참가하는 현대 '정치'는 사람들의 이해, 관심, 의견을 집약하기 위해 각종 미디어를 이용하여 정보를 조작하고 가공한다. 한마디로 '알기 쉽게'만ㄷ르어버리는것이다. 왜냐하면 정보를 조작하고 가공하여 모두의 생각을 '알기 쉬운'현태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우리'대다수는 '정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치'를 둘러싼 '알기 쉬움'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우리' 대다수는 '정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치'를 둘러싼 '알기쉬움'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사고가 점차 단순해져 복잡한 사태를 복잡한 상태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 '우리 편이 하는 말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동조하고 만다 한마디로 사고정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그렇나 사고정지 상태에 의한 '동조'가 '정치'를 그 뿌리부터 무너뜨리고, 나치즘이나 구소련의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한다고 경종을 울려왔다.

 

- 한나 아렌트의 분석에 따르면 근대 시민사회에서는 물질적 이해를 둘러싼 헤어날 길 없는 대립과 경쟁때문에 피곤해진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를 뚝딱 해결해낼 '대답'을 턱하니 던져줄 영웅 같은 인물을 몹시 바라게 된다. '세계관정당'의 힘이 점점 불어나는 까닭은 든든하게 앞에서 끌어주는 '누군가'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말하면 '생각하는 주체'라는 자각적 존재를 내던지고 자기들 대신 생각해줄 '지도자'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칭호였던 총통은 독일어 원뜻으로 '지도자'또는 '끌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 한나 아렌트와 그의 스승인 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애 관계를 그들 사상의 본질적 문제로 진지하게 다루는 책조차 나와 있을 정도다.

 

- '전체주의'라는 말을 주창한 것은 192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즘 운동 이론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탈개인주의적이고 국민 전체를 통합하여 이끄는 국가의 특징을 가리켜 긍정적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체주의는 주로 영미권에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스탈린주의 같은 비서구의 근대적익 집단주의적인 체제를 형용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다.

 

- 근대 이전에 일반 민중은 자신이 살고 있는 토지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종속될 따름이었고, 자기 자신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동일성)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초반과 중반에 걸쳐 유럽 각지의 민중 사이에 '국민'의식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이에 불을 붙인 것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 일찍부터 중앙집권국가를 형성하며 혁명을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나라를 만들고 나폴레옹 시대에 강력한 '국민'의 군대를 성립시킨 프랑스는 전쟁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면서 이웃나라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그들 나라의 민중에게 자신은 프랑스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인의 지배를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대항의식이 싹튼다. 이렇게 별개의 '국민'이라는 감정과 의식이 유럽의 내셔널리즘이 발생한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셔널리즘을 가진 사람들은 각 '국민'마다 하나로 통합된 독립 '국가'를 세우고 외부의 적을 배제하려 한다.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면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같은 독일 안의 여라나라가 뭉친 연합군이 패하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것을 계기로 하여 '국민'의 연대와 통일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인 철학자 피히테는 프랑스에 점령당한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강연을 했다. 그는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각 영방이 독일어와 독일분화 교육을 강화하고 국민의식을 함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강력한 적이 출현함으로써 그때까지 뚜렷한 동료의식이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 강한 연대감이 생겨나는 것은 비단 '국민국가'의 형성같은 거시적 차원뿐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우리'라는 의식을 확인하는 것도 사회의 다양한 차원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흔한 예를 들어보면,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촌스러운 사람을 촌뜨기 취급하는 일도 그렇고, 특정한 취미를 공유하는 마니아 집단이 자기들이 보기에 최소한의 지식도 없는 사람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그렇다. 자기들의 '표준'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면, 눈에 보이는 차이를 통해 자신들의 '표준'을 사후적으로 확인하기 쉬워진다. 배제를 통해 '우리'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자기들 입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선호하기 쉽다.

 

- '적'이 있어야 싹트는 '동료'의식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적'을 필요로 한다.

 

- 에리히 프롬은 아무런 제약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이 전체주의적 권위에 몸을 기대고자 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를 계획적으로 조직화하려는 근대의 설계주의적 발상 때문에 나치즘이나 사회주의 같은 전체주의체제를 추구하게 된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참고로 에리히 프롬은 한나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유대계 독일인이다.

 

-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에리히 프롬은 사회민주주의적 연대를, 하이에크는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철저한 자유주의를 내걸었던 반면, 한나 아렌트는 대안적 사고를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인간'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자신의 세계관 가치관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의 세계관 가치관을 전면에 내놓지 않는 모습은 이후 그녀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기본자세다.

 

- 식민지로 보내진 사람들은 외모도 전혀 다르고 풍습도 이질적일 뿐 아니라 언어를 거의 이해할 수 없는 현지 사람들(=타자)과 만남으로써 자신의 '동일성'을 새삼 확인하기에 이른다. 거기에는 당연히 자신이 '국민국가'의 일원이라는 의식뿐 아니라 '우리=백인'은 이성적인 문명인이고 '그들=백인이 아닌자'는 미개한 야만인이라는 우월감과 차별의식도 덧붙여진다. 식민지의 지배자라는 자리에 서서 지배를 당할 만한 존재인 '그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우월감과 차별의식은 점점 더 증폭괸다.

 

-나치스나 소련공산당은 대중이 보고 싶은 대로 현실을 보게 해주는 이야기를 제공하여 대중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는 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자신을 뒷받침해준 대중의 반유대적 상상력을 계속 이용했다. 나치스라는 운동체가 채용한 서사적 세계관을 그대로 국가의 지도원리에 응용하여, 하나의 특수한 세계관으로 통일된 전체주의적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 나카마사 마사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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