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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평생 그리워하여 붙여진 이름

어린 나이에 왕이 억울하게 죽었다.

그러자 변절자인 신하가 후임 왕에게 왕비였던 여인을 자기의 노비로 쓰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런 인물이 바로 변절자의 대명사여서 잘 쉬는 나물이름을 숙주나물이라 불리우게 된 신숙주다.

 

신숙주가 노비로 쓰겠다고 한 여인은 비운의 왕인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다.

그가 묻혀있는 사릉을 찾았다.

 

정순왕후는 단종 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의덕왕대비가 되었다. 그러나 세조3년 단종복위운동 실패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정업원(현재의 청룡사)에서 생활하였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 뒤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중종 16년 82세로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숙종 24년에 정순왕후로 복위될 때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였다 하여 사릉(思陵)이라는 능호를 올렸다.

 

 

정자각 뒷문으로 보이는 정순왕후릉(사릉)
소나무가 멋진 사릉 숲길

사릉 안에는 다른 왕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런 개인의 묘가 3~4군데나 있었다.

어떻게 왕릉 안에 개인의 묘가 있을 수 있을까?

왜냐하면, 정순왕후가 세상을 뜰 때에는 군부인으로 강등된 신분이어서 해주 정씨 집안에서 묘를 조성하고 제사도 지냈다.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시집을 간 집안이 바로 해주 정씨 집안이었다. 

 

꼬리조팝나무
낙숫물이 떨어진 자리가 움푹패어 무늬가 되었다.
단아하게 보이는 재실
묘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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