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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공자 VS 장자

 바둑을 배울 때 '정석을 알고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정석에 얽매어서 다양한 가능성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자를 알고는 잊어버려야하는건 아니었을까? 물론 공자의 가르침이 끼친 좋은 영향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랜 기간 공자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것에 따른 폐단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현실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꾀하면서 설파한 내용들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는 임금 입장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함이요, 집안에선 가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을지. 그래서 그런지 장자를 읽으면서 종종 장자가 공자를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면 흥미가 당긴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 ~ 기원전 479)와 장자(莊子기원전 369출생~ 기원전 289 사망)는 활동시기가 다르고 장자가 태어나 활동한 시기엔 이미 공자는 무덤 속에 있었다. 장자의 공자를 향한 일방적인 공격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무덤 속의 공자로선 답답할 것 같기도 하다.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엔 왕태, 신도가, 숙산무지는 후천적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을 등장 시키는 이유는 외형적으로 불 때 불구라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내적으로 성숙한 자유인의 삶을 말하기 위함이다. 

 

장자가 공자를 비판한 것중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다리 하나가 없는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하자

"저는 힘써 배울줄도 모르고 경솔하게 처신해서 이렇게 발을 잃었습니다. 지금 제가 온 것은 말보다 귀한 것이 남아 있고 그것을 온전하게 하고 싶어서 입니다. 땅은 실어주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하늘이나 땅같이 마음이 넓은 분이라고 여겨 찾아왔는데 선생님이 이런 분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공자가 태도를 바꿔 " 내 생각이 짧았소. 안으로 들어오시오. 내가 들은 바를 말해 주리라"하고 불러들였지만 무지는 들은 체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 깨달음의 영감을 얻고 싶어 기대를 안고 찾아갔는데 공자가 그저 '배운것'과 '들은 것'을 전달하고 소비하는 '지식의 전달자'로서의 모습만 보여 주는데 실망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자자한 공자의 명성은 배우고 들은 대로 실천하는 '지식의 수행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 장자는 전국시대의 혼란스런 삶 속에서도 자유를 꿈꾸고 자유를 노래하고 자유를 사유한 철학자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절대 조건은 자유다.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자유라면, 행복은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장자철학에서 도출되는 자유 개념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로부터의 자유'고, 다른 하나는 '~에로의 자유'다 전자는 일반적인 개념이고, 후자는 장자철학에서 발견되는 절대 자유라는 독특한 개념이다.

 

-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다. 디지털 세계의 특성은 숫자를 숭상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데이터화해서 통계를 재고, 그 수치로 등급화하거나 서열을 매긴다. 사람들은 그가 지닌 숫자(성적, 토익점수, 연봉, 부동산 가격, 입고 걸친 옷이나 가방등의 브랜드 가치 등등)로 가치를 평가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실질적인 가치보다 투자 가치에 골몰하게 된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 이런 소유론전 태도는 숫자 숭상 문화가 가져온 허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 평가의 중요 지표는 숫자였다. 그러나 소비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차 '철학, 도덕성, 가치관 윤리의식, 신뢰, 생태, 생명, 공존 등등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 우리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의 위협 앞에서 숫자가 우리의 생존을 실질적으로 지켜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잇다. 하늘 높이 떠서 전체를 조망하고 통찰하는 대붕의 시각으로 보자면 숫자에만 의존하던 시대를 이제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게 분명하다.

 

- 지금까지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AI일자리를 빼앗기게 될까봐 걱정했지, 그것이 인류 자체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와 인류를 바꾼다는 것은 인간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기술의 부림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인공지능에게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위기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면 전체적 맥락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방법의 하나가 장자철학에 담긴 아날로그적 감성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대붕처럼 아스라이 하늘 높이 떠서 전체를 조망하고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지나가는 과정의 하나인 부분적 상황에 함몰되지 않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종종 빠져드는 고통이 진짜 힘든 이유는 그것이 잠시 스쳐가는 상황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아날로그 방식은 세계를 하나의 연속선 상에서 이해하는데, 디지털 방식은 하나하나 쪼개 부분만 보는 불연속적인 스스템이기 때문에 관계적 맥락을 보지 못한다. 디지털 문화가 지닌 이런 맹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점점 기계에 의존하게 만든다. 자연의 운행 법칙을 기반으로 형성된 도가철학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초로 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추구하는 디지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장자의 우언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고 허황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휴대폰 혹은 인터넷망의 유실은 세상과의 관계망이 하루 아침에 붕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디지털 문화의 편리에 길들어 그 속에 담긴 비정함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장자로 읽는 행복/박혜순/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