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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책으로만 만나고 이런 저런 언론에 모습을 잘 내비치지 않는 류시화 시인은,

언젠가 어떤 작가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류시화 시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소제목이기도 한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무슨 제목이 이렇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맞닥드리는 수많은 일들을 대하면서 일희일비하곤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전하면서 그런 삶에서 마주하는 일들에 대해 제목처럼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의 일들이 오히려 지나고 나서는 가장 많은 이야깃 거리가 되고, 길게 보니 그저 불행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적도 있다.

 

 굴곡진 삶에서 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우리는 마침표를 찍듯 끝내려 하지 말라는 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지금의 고난이 나중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흔한 말인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않은가? 젊지 않다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아니던가?

 

열악하고 궁핍하기 짝이 없었던 작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결코 그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었음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일상에서의 사소한 문제들을 영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습관을 멈추라고 이야기를 한다. 바깥에서 있었던 사소한 문제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밖에 걸어두듯 마음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부단한 연습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주제로 한 책으로 시인이 쓴 산문집은 읽을 때 언어를 잘 다듬은 듯해서 좋다. 작가들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방법에 대해 읽으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적용해도 어려운 순간을 조금은 여유있게 넘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이를테면 힘든 순간도 내게 중요한 경험의 순간이라 여긴다면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으리란 생각. 책 한권을 끝내면 어김없이 인도 여행을 떠난다는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하고 인도로 갔다. 지금은 코로나로 가장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 인도, 정신적인 영험함으로 이겨내려나. 

 

 

 

 

-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말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거나 시간에 맞춰 어딘가에 도착하기보다 무늬를 그리며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

 

-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노랑 앵무새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눈을 감자마자 노랑 앵무새를 떠올릴 것이다. 

 

-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 '축복(blessing)'은 프랑스어 '상처입다(blesser)'와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 아메리카 원주민 중 라코타 수우족은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아플 때 에고의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그 사람에게 자신들을 대신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곤 했다. 

 

-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가 아닐까? 상처 없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스스로 고난이 필요한 시기를 아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상처보다 크다는 것도.

 

-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단순한 생활과 음식이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나를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게 했다. 그 삶은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영혼에 관한 일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과 만남들이 줄어들면서 기쁨은 늘어났다. 사치가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지만, 소박함은 정신을 창조한다. 

 

- <기억, 꿈, 회상>에서 융은 말한다.  "사람들은 점점 커져가는 부족감, 불만족, 불안 심리에 떠밀려 새로운 것을 향해 충동적으로 돌진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가 약속해 주는 것들에 의지해 살아간다. 모든 좋은 것이 더 나쁜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시인 마야 안젤루>

 

-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그리고 릴케는 "모든 사람 안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숨어 있다."고 썼다.

 

- 우리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장소에는 우리 영혼의 일부가 남는다고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썼다.

 

- 융이 어느 날 진료실에서 정신 장애 환자와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성시한 투구 풍뎅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환자가 꿈에서 누군가로부터 투구 풍뎅이 모양의 보석을 선물 받은 것이다. 환자가 꿈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무엇인가가 등 뒤의 창문을 두드렸고,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니 황금색 곤충이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융이 창문을 열어 주자 풍뎅이 한 마리가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잡아서 살펴보니 환자가 말한 투구풍뎅이와 비슷하게 생긴 그 지방의 토종 풍뎅이였다. 융은 이 우연한 사건을 '동시성'이라 명명하고 연구를 계속해, 이런 동시적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또 다른 현실에서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느 명상 센터에서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가능한 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만약 내가 이 순간에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친절하기를. 만약 내가 친절할 수 없다면 판단하지 않기를. 만약 내가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면 해를 끼치지 않기를. 그리고 만약 내가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해를 끼치기를.'

 

- 두 사람이 있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게 된다. 60억의 사람이 있으면 60억 개의 세상이 있다.

 

- 우리는 종종 사람들과 자신의 영혼을 모두 황폐하게 만든다. 그것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기 삶의 방식에서 상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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