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이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더숲>중에서....
류시화의 책을 보다가 얼마전 빛이 없는 동굴에서 40일간 살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매장과 파종은 모두 어둠에 묻히는 똑같은 일일텐데, 둘의 의미는 정말 천지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어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고 과연 인간도 파종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을만큼 어둠은 의미가 있을까.
'사회로 부터 매장당하다' 할 때처럼 부정적 의미와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할 때처럼 긍정적 의미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들이 생각났다.
빛과 시간을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직접 이 같은 실험에 참가한 15명의 참가자가 40일간의 실험을 마친 후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지난 25일(현지 시간) 가디언지 등은 프랑스 남서부의 롬브리 동굴에서 40일 동안 햇빛, 시계, 전화 없이 지내는 ‘딥 타임 프로젝트’에 참가한 27세에서 50세 사이의 남성 8명과 여성 7명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인간적응연구소가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는 외부와의 접촉이 시간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 조건과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됐다.
자연광도 비치지 않는 동굴 속은 온도 10도, 상대습도 100%의 조건이었으며, 이들은 휴대폰도 없어 외부 접촉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소식도 알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생체 시계를 따라 기상, 취침, 식사 등을 정했다. 또한 날짜를 시간이 아닌 자신의 수면 주기를 따라 세었다고. 페달 자전거로 직접 동력을 생산하고 45m 지하 암반수를 직접 퍼와 식수를 해결했다.
그 사이 연구팀은 스위스의 연구소와 협력해 센서를 통해 15명 팀원들의 수면 패턴, 사회적 상호작용, 행동 반응을 관찰했다. 40일 후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동굴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시간 감각을 상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팀원은 동굴에 있던 시간을 23일로 추정하기도 했다고.
한 참가자는 “시간이 마치 잠시 멈춘 것 같았다”면서
“어떤 것도 서두르지 않았고, 동굴에 며칠 더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과 함께
당분간 돌아간 생활 속에서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을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은 사람이 극한의 생활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 뇌가 어떻게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지 더 잘 이해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세계일보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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