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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둬라~

 머리를 자르고 염색도 했다며 어떠냐고 묻는다.

젊어 보인다고 했다.

갑자기 염색을 한데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작용했을 것이다.

 

얼마전 휴대폰 유심칩을 바꿔끼기 위해 대리점에 갔다.

대리점 직원은 유심칩을 집게가 달린 펀치처럼 생긴 사각형틀에 집어 넣더니,

사각형 손잡이를 꽉 잡자 유심칩의 가장자리가 잘려나가면서 조금 작아졌다.

전자기기를 무식한(?)물리적인 방법으로 유심칩을 잘라낸다는게 신기했다.

대리점 직원은 유심칩을 끼워넣고는 휴대폰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얼마냐고 하는 우리에게 괜찮다고 하며 덧붙이는 말이

"앱이나 다른 거 옮기는 건 아드님이나 따님에게 부탁하세요~"하고 말하였다.

 

대리점을 나서는데 옆에서 코웃음을 친다.

"치~그건 나도 할 줄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 취급하는 것 같이 들렸던 것이다.

"염색을 안해서 할머니라 생각했겠지 뭐~"

기계치에 전형적인 문과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전자기기에 어느 정도 자신있는 이과생인지라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나보다.

 

오래전 유명 인류학자가 '이제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이든 세대가 배워야 하는 시대'라고 했던 말이 실감이 난다.

배우기는 커녕 과거의 경험에 비춰 현재를 마음대로 판단하며 가르치려들면 꼰대소리 듣기 딱 알맞은 시대가 된 것이다.

 

꼰대란 은어로 '늙은이'를 지칭하거나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어느 작가가 말하길, 요즘엔 특정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어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 충고하는 걸,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를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고 하였다.

 

'시대의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촌철살인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는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라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경험이 이젠 판단의 기초 혹은 가르침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덧붙이기를 "젊은 너희들이 까딱하면 모두 저 노인들 꼴되니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봐주면 안된다."라고 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충격을 주기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한 면도 있겠지만 40 여 년 남을 가르치기만 해온 내가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폐기 처분된 지식이나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야겠다.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게 직업병처럼 가르치려 드는 걸 경계해야 할 것이다.

 

*채현국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 피디로 입사했으나 방송을 선전도구로 이용한 군사정권의 부당한 제작 지시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고 아버지인 채기엽이 운영하던 흥국탄광을 맡아 소득세 납부실적 전국 2위에 오를 정도로 거부가 됐지만,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의 앞잡이가 돼야 하는 상황이 올까 우려해 이듬해 모두 사업을 접고 재산을 처분해 동업하던 친구들, 광부들에게 나눠줬다.

 

 

벌써 60번이 훨씬 넘는 횟수의 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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