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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눈사람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아침에 갑자기 눈이 쏟아져내렸다.

집을 나서니 먼산에도 눈이 쌓여 보기 좋았다.

그 사이 누군가 눈동물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내가 사진을 찍자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도 가다가 되돌아와서는

'그냥 가는 건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가끔 눈사람을 발로차고 망가트리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학교에 근무할 때도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런 아이는 다시금 눈여겨보게 된다.

'뭐가 저 아이를 저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만든 사람의 예의까지 생각하지는 못할지언정

만들어진 것들은 생명체를 형상화한 것인데, 그것을 함부로 하는 것은

생명체를 가진 것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넷 상의 누리꾼들은 눈사람에 '부수지 말라'는 팻말을 써붙이거나

눈사람이 안 망가지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눈사람 목에 "잠깐! 저는 어차피 녹아 없어질 몸! 폭력으로 저를 없애지 말아주세요 제발"이라는

내용이 담긴 팻말을 걸어둔 이도 있었다.

 가수 이적도  자신의 SNS에 "A씨는 폭설이 내린 다음날 길가에 놓인 눈사람을 걷어차며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어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소름끼쳤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심도 들었다"고 적었는데 공감이 되었다.

 

눈사람을 망가트리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나와 다르다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열등감과 우울감으로 버무려진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말 텐데!

인간의 생명은 좀더 길뿐. 결국 눈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의 숙명과 다를 바 없다.

눈사람 창조자가 되는 동안 인간은 혹시 그 엄혹한 사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걸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눈사람이 분명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족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을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정이현 '우리가 녹는 온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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