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을 걷다가 잠시 운동기구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저만치 벤치에 앉아 있는 어르신이 얼굴이 많이 낯이 익었다.
누구시더라?
그분은 다른 일행과 이야기를 하며 물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힐끔힐끔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친척 중에 누구시던가? 우리 이웃? 성당에서 본 분? 탁구 같이 치던 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다가
앗!! 생각이 났다. 바로<슬기로운 감빵생활>이란 드라마에서
무기수 노인 역할을 한 탈렌트였고, 극중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준 역을 한 분이었다.
극중 무기수 노인의 사연이 너무 절절해서 길지않게 등장했지만 기억에 남았었다.
나는 아는 척 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어쩌면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으로 착각을 해서 맞닥드렸다면
무심결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TV를 많이 상대하다보니 화면 속의 인물이 더욱 친숙한 사람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비대면 시대이다 보니 직접 만나는 지인들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와 일면식도 없는 화면 속의 인물이 더 친숙해졌다.
이러다가는 만나지 못하는 친인척보다 화면 속의 연예인들이 더 친숙해지는 건 아닌지.
그리하여 화면에 얼굴이 많이 나와 익숙해지면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말처럼
그래서 정치인들은 끝없이 화면에 기를 쓰고 많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잠시 후 그 분은 일행과 함께 멀어져갔고 나는 나의 길을 갔다.
오래전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란 책에서
흡사한 상황을 묘사한 대목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는 횡단보도에서 만나서 단지 화면 속에서 만나 직접 알지는 못하는 사람인걸
순간적으로 깨닫고 인사하려다가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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