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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다정한 구원

 우리 내외가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와 끝내는

한 달간의 포루투칼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발생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더욱 더 그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가져온 임경선의 책 3권 중 하나가 리스본 여행을 하며 적은 책이어서 반가웠다.

오호~ 리스본~~!!

당연히 리스본 여행기인 <다정한 구원>을 가장 먼저 펼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자 신기하게 저자의 친필 싸인이 들어 있었다.

 

아빠를 엄마 곁으로 보낸 작가가 상실의 슬픔과 지친 상태에서 부모님과 셋이 일 년간 보낸 리스본에 당시 작가 자신의 나이와 같은 열 살의 딸을 데리고 찾아가는 리스본 여행이다.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다시 찾아가는 여행은 '주둔군 이론'과는 배치되는, 그 어떤 심리상태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정한 구원>이란 제목도 그런 의미로 붙여진 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읽어 나갔다.

작가가 부모님과 가장 농축된 기억이 어려 있는 그곳으로....내 기억 속의 리스본을 버무려 들어간다.

 

작가가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취소하기를 반복하며 18개의 호텔을 취소한 이유를 적은 앞부분도 재미가 있다.

그 중 예약한 호텔을 취소한 이유가 미소를 머금게 했는데 소개하자면, <김연수 작가님의 여행 산문에서 '천국'이라는 표현을 보고 호기심에 예약했건만, 그건 그분이 '천사'같은 품성을 지니신 분이라 그런 것 같았다.>

 

이야기는 가볍게 흘러가다가 리스본에서 엄마, 아빠와 셋이 보낸 일 년을 회상하던 중 입양되어간 아빠의 어린시절에서부터 무거운 울림으로 돌아보며 엄마, 아빠를 추억한다. 당시 부모의 속을 어떤 감정과 생각이 훑고 갔는지......자식은 진실을 알고 싶어도, 부모는 그 진실로 인해 자식이 상처입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테니..... 지금에서야 미루어 짐작을 할뿐.

 

오래전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내가 찾아가는 듯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빠르게 읽어나갔다.

 

시점은 때때로 변해서 작가의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오가면 나도 그대로 따라 옮겨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점으로도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 덕분일 것이다.

해서....나도 오래전 여행지를 다시 찾아가는 생각을 그려보며,

새로운 곳을 가는 것보다 찾아갔던 곳을 다시 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나이니만치?.....ㅎ

 

문장도 '서점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가 아니라 '서점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다.'라고 작가 자신의 시점이 아닌 제3자의 관찰자 시점으로 씌어 있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인간이 가진 아름답지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자신이 변화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다정한 구원>이다.

 

작가 자신도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보는 나 자신도 작가의 시점과 관찰자의 시점과 부모의 시점등으로 자유롭게 오가며 감정이입을 하게 씌어 있었다.

 

36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동료는 물론, 일상에서 마주했던 소박하고 천성이 고운 리스본의 사람들, 짧은 만남 속에서 보여주었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일일이 적어 놓았다. 내가 다시 포루투칼을 가고 싶은 이유를 들자면 바로 그런 천성 고운 사람들은 보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다정한 말, 눈빛, 움직임 그 모든 것들이 작가를 구원한 것이고, 아버지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 속에서 아버지와의 작별 의식을 치른 것이다.

 

에세이임에도 소설과 닮았다.

잔잔하고 가볍던 글이 중간 이후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는 다소 묵직한 느낌을 주면서 일렁거리게 하였다.

그러다 클라이맥스의 일렁임이 잦아들면서 밝고 가벼운 이야기로 마무리 하였다. 처음 길게 취소한 호텔 목록을 늘어놓았듯 뒷 부분엔 리스본에서 만난 따스하고 정이 많은 리스본 사람들의 목록이 에필로그처럼.....

 

PS: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읽어보라고 주자 다 읽더니만,

'잘 썼네~~아~포루투칼 다시 가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 딸하고 여행가고 싶다~!!'

 

 

<다정한 구원>

 

-리스본에는 이렇게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짊어진

한때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이제는 여러가지 이유로 조심스럽게 방치된 장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모든 풍경들이 조금씩 슬퍼보인다.

 

- 포루투칼의 파두가 취약한 마음을 토로하는 체념의 정서를 띤다면

플라멩코는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열정적으로 돌진하겠노라고 선언한다.

 

- 그가 여행이나 여행기를 상상력의 부재라며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진심이라기보다는 좌절된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반발로 읽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애초에 효율이나 세련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 웨이터들은 역사 속에 그대로 박제된 이들이 잠시 살아 돌아온 듯하다. 팁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이 장소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손님들을 향해 미소를 남발하지도, 말을 많이 건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까다롭거나 도도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한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나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쩐지 늘 속수무책으로 호감을 느껴 버린다.

 

- 북적거림을 피하려다 을씨년스러움을 만난 꼴이었다.

 

- 갓 마흔 살 전후의 젊었던 엄마와 아빠는 리스본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교육문제나 노부모의 부양 문제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자유와 젊음의 유예기간을 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지만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을 그 시절 엄마 아빠의 그러한 용서받지 못할 마음을, 인간적인 연민으로 나는 감히 이해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기켜봐줄 수가 없다.

 

- 괜한 감상에 빠진 생각의 고리를 나지막이 끊어준 것은 파비오였다.

 

-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이득과 손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 것만 같다. 누구는 그런 성질을 두고 어눌하다 하겠지만 나는 지금 그런 다정한 너그러움을 그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었다.

 

- 나에게 얼마간의 낙천성이라는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모두 리스본의 햇살과 바다에게 신세진 것이겠다.

 

- 너는 뒤통수가 짱구니까 어울릴 것이다,라는 주장에 따른 결정이었는데 엄마는 그저 보수적인 당신으로선 하기 어려운 시도를 나를 통해 모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러한 정서적 방관 덕분에 나는 자립심, 책임감, 적응력, 추진력 생활력을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갖추게 되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탓에 물이 새는 항아리에 끝없이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커버리고 말았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하는 동질감의 확인, 어른에게 의지하는 방법을 모르는 어린이, 어른보다 더 어른의 감정을 빨리 알아내는 어린이, 어른을 귀찮게 하거나 상처주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어린이,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어린이, 그게 잘 안되면 혼자 숨어서 무너지는 어린이, 그러고는 꾸역꾸역 소화시켜 어떻게든 추수리는 어린이, 말을 하지 않는 어린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어주는 그 무언가를 만난 일은 내게 고요한 위안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 환상을 안겨주는 것은 언제나 '일상'의 장소들이었다. 여행을 가면 더더욱 그랬다. 현지의 주택가나 공원, 동네 서점에서 머물다 보면 그 이전까지의 과거는 다 삭제된 채, 오래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고 그 장소들이 내 삶의 일부였다는 착각에 빠진다. 나는 내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 낯설음 속의 감미로움을 즐긴다. 그와 반대로 관광 명소에 가면 내가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실감만 더 강하게 느낄 뿐이다. 어쩌면 떠나온 곳에 그대로 벗어두고 오고 싶었던 그런 본래의 모습 말이다.

 

- 그 무렵 그는 갓 마흔살, 자식 둘과 연로하신 부모님을 고국에 두고 왔다고 해도, 어찌 되었든 당시 그의 신분은 엄연한 '유학생'

 

- 나는 리스본에 있었을 때만큼 '풀어져 있던' 엄마의 모습을 전후로 본 적이 없다. 리스본의 한 시절은 어쩌면 부모님의 인생에서 허락받은 유일한 안식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제 생각은 이래요. 현정권과 정치인들이 보수 우익 성향이어서 전통파이자 국가주의 성향인 페소아를 정책적으로 밀고 있는 거라고 봐요. 사라마구가 좌파인 건 알고 있죠?

 

- 벼룩시장. 정혛화되지 않은, 각자의 이야기가 서린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

 

-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새어머니에게 아빠의 타탄체크 머플러 하나만 내 앞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드렸지만 도저히 찾으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세 식구가 유럽 여행을 다닐 때 아빠는 베니스에서 엄마에게 그 타원형 가죽끈 시계를 선물했다. 지극한 사랑의 징표를 받은 엄마의 눈빛을 여전히 기억한다. 나도 곁에서 더불어 설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엄마는 그 시계를 몸의 일부처럼 20년 넘게 차고 다녔다. 그 사이 두어 번 가죽끈을 교체해야만 했다. 암투병 중에 엄마가 그 시계를 풀어 내게 몰래 남겨주었을 때, 나는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마쳤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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