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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자유로울 것

2017년 우리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냈던 그때 태어난 책이다.

그래서 <자유로울 것>이란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자유'라는 말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시대라는 건, 당시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작가, 예술가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으로도 많은 반감을 갖게 했던 때이기도 했다.

 

읽고나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서 흐믓했고, <솔직함>에 대해 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글쓰는 이는 솔직해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글 속에 표현하려면 상처받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작가 스스로 사전검열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텐데, 그럴때마다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책으로 나온 이후 언급한 사람들의 반응도 신경쓰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를 만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막을 치는 경우도 많단다. 그들과 소원해지더라도 그것 또한, 작가가 감내해야 하는 몫인 것이다.

 

장강명 작가가 정확한 정황 설명을 위해 아내의 어려웠던 과거를 드러낸 부분에서 저자는 놀랐다고 말했는데, 나의 경우 작가의 솔직함에 대해 놀란 경우는 시인 김수영의 솔직함에서다.

 

작가의 외모나 그의 시에서 풍겨지는 이미지 등은 폭력과는 아주 먼 사람으로 여겨졌었는데, 놀랍게도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리낌없이 글로 표현했던 것이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재능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다 읽고나서, 목차의 소제목을 훑어보며 부분 부분 다시 본 책이기도 하다.

 

 

 

 

 

-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책임과 통제, 자기 규율기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험한 대가를 치러야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자유로운 사람으로 남고자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 내가 제아무리 개인의 생할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산다고 해도, 보다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로움이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다 무용지물이었다.

 

- 행복이라는 단어를 낯간지럽게 여겼고 세상에 가득한 행복담론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약한 위로라고 치부했다. 항상 조금은 비관적으로, 조금 권태롭게 세상만사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 얼마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마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없으면 행ㅂ고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매년 정기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릴 때는 건강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가, 검진 결과가 막상 괜찮으면 행복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고 이내 다른 새로운 조건들을 필사적으로 충족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 특정 조건들을 갖추는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의 문제이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흔히 듣는 겸손한 말은 맞지 않다.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둘을 혼동하거나 섞지 말고, 갈라놓은 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하면 된다.

 

- 소설 원고를 붙들고 씨름할 때는 그토록 힘들어하고 외로워했으면서 막상 끝나고 나니 한창 소설을 쓰던 그 시간들을 온몸으로 그리워했다. 고생했던 기억들만이 선별적으로 잊혀져 갔다. 아기를 낳고 나면 출산의 고통을 망각해서 또 다시 아이를 가질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 연애감을 올리기 위해 읽는 소설은 보통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다.

 

- 솔직함. 하면 생각나는 작품들이 몇 있다.

이석원 작가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장강명 작가의 <5년만의 신혼여행>

 

-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가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알랭드 보통,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겁도 없이(?) '까는'것은 어떤 의미에선 통쾌했지만, 아내의 불가피한 성장 배경에서 비롯한 내밀한 태도조차도 정확한 정황 설명을 위해 주저 없이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아내가 대인배이고 작가가 대범하더라도, 가난이 비록 그 누구의 죄도 아니고 부그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한 사람의 상처를 들춰내는 일이 아닐까 싶어 그 넘치도록 당당한 솔직함에 독자로서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 연애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사랑에 빠지면 가장 인간적이고 무방비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은 속수무책으로 약해졌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했다.

 

- 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박한 일에 한없는 기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은 어디로 다 흘러가버렸을까?

 

- 영혼없는 동원형 강연이 끝나고 귀가하노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통장에 찍힌 강연료를 확인하자면 어쩐지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은 것처럼 뒷맛이 썼다. 돈 때문에 실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했다는 비루함.

 

- 나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스스로를 낯선 장소로 몰아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현실을 새기기 위해서라도.

 

- 그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서(난 아무래도 관심없다)나에 대한 통제 욕구를 합리화하려는 말이 아닌가, 라고 내가 도리어 쓴소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 놓기로 했다.

 

- 출판사에서<이제 나이는 프로필에서 빼도 되지 않을까요?> 그때 내 나이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즉 대중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나이임을 생생하게 깨달았다.

 

- 엄마는 왜 남자친구가 없냐고 성화였고(늘 있었는데), 남자 좀 찾아보라고 닦달했다(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늘 있어서)

 

-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 아름다운 것만 보거나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모순이나 고통, 슬픔등을 겪으면서 그것들을 감당해나갈 때, 다양한 감정의 결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과 본질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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