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와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어 알게 된 저자 박웅현.

이 책은 강창래가 박웅현을 인터뷰하면서 쓴 것으로 공동저자인 셈이다.

 

광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웅현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 말에 공감이 갔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하고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하니 말이다. 그래서 박웅현의

광고에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담겨 있어 사람들에게 때리듯 다가오지 않고 스며들듯 다가온다.

 

박웅현이 중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으로 핀잔이나 무안을 당한 일들은 지금 50대 이상의 나잇때가 흔히 경험한 것들과 비슷해서 안타깝게 다가왔다. 친구들 앞에서 받은 선생님의 핀잔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욕설이 박웅현을 다른 사람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까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는 것에선 맘이 아팠다. 그런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상처로 남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에야 얼마든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그런 교육환경이지만 6,70년대의 학교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교사들은 절대권력자였고, 이유없는 매타작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당연시되었던 시대였다.

 

비쥬얼이 휘황찬란한 광고는 단박에 눈을 끌지만 박웅현의 광고는 뭉툭해서 곱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박웅현이 인문학적 소양 때문일 것이고, 늘 인간을 향해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에 도전한다.

- 현대생활백서

- 사람을 향합니다.

- 생각이 에너지다.

 

많이 들었던 이 문구들은 박웅현이 만든 광고에 쓰인 말들이다.

많은 광고들이 눈으로 들어온다면 박웅현의 광고는 눈과 함께 귀로 들어온다.

박웅현이라는 사람을 몰랐을 때, '어? 저 광고 멋지다'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후에 알고보니 모두 박웅현이 만든 광고였던 것이 참 많다.

 

이런 광고계의 천재적인 소양을 갖춘 박웅현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어서 처음 3년은 왕따에다가 지진아였단다.

아마도 광고라고 하면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눈으로 들어오는 광고가 대부분이었을 때 인문학적인 요소를 생각한 박웅현의 생각이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듯하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 강창래/알마>

 

- "ECD라고 했어요?"

"아 예 좀 묘한 직책이지요? 그게 이런 뜻입니다.

E는 이그제큐티브Executive니까 CD들 가운데 대장쯤 된다 이런 뜻이고요.

CD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입니다."

"한국말로 하면 창의성 감독쯤 되겠네요."

 

- "연애편지를 쓴다고 해 봅시다. 편지 하나에는 '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광고를 만드는 창의력은 이런 겁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에서 출발해서, 정지용의 이 시 같은 말을 찾아내는 겁니다."

 

- 그 사람들은 최고의 예술가들을 고용했어요.

미켈란젤로와 제로나르도, 카라바조, 피에로 델라 프란테스카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나님의 어머니를 처녀라고 하자는 것이었고,

죽음 뒤의 삶이나 부활과 같은, 정말 놀라운 생각들이었지요. 어느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 더 잘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광고회사고, 세계 최고의 광고회사죠. <광고잡지 '아카이브'>

 

- 요금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보면 더 이상 '성에가 끼지 않는다'거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장고'라는 '기능'을 알리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광고 모델들은 얼핏 듣기에는 냉장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을 한다. '냉장고는 사랑입니다.'라거나 '여자는 행복하다'고 한다. 옷 광고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소재나 바느질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브랜드와 디자인을 내세우고, 감성을 자극한다.

 

- 미 상공회의소게서 박웅현에게 강의를 요청했다. 주제는 "한국에서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이었다.

헤드 카피는 '저는 한국말로 말하겠습니다.'였다.

"제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영어로 말하는 순간 제 지적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석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으로서 석사 학위를 가진 지적 수준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말하려 합니다."

 

- 부시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까지도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20대때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해 알 말이 있느냐?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아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유홍준씨는 서구의 유명한 박물관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쟁적으로 그 규모의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한결같이 이국 문화의 포로수용소일 뿐, 낱낱 유물의 생명력은 벌써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혹독한 자기바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 제 아이는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미국 뉴욕에 와서 일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보기에는 영어를 잘하는 아빠가 왜 뉴욕에서 일할 수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광고는 '언어'를 조금 배운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아마 아빠가 미국에서 좋은 광고를 만들 만큼 미국의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이해하려면 20년은 걸려야 할 거다.

 

-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사람의 눈은 '사진기'와 완전 다르게 작동한다.

눈은 뇌와 함께 '그림을 그린다.' 무엇보다 눈을 통해 들어온 영상은 철저하게 분해되었다가 다시 합성되면서 인식된다. 지금까지 뇌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뇌에는 시각정보처리를 위한 32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윤곽만 인식하는 부분이 있고, 사람 얼굴만 특별하게 인식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코와 눈, 입처럼 부분을 볼 수는 있지만 '얼굴 전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 알려졌다. 게다가 눈은 '지식의 영향'을 받는다. 늘 보던 것은 다시 보지 않는다. 아 그거군, 이렇게 인식하는 순간 정보처리는 멈춘다. 이미 저장된 정보로 대치된다.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다니는 길에 무심한 이유와 같다. 그것이 고정관념이다. 그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한지 학자들이 실험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린 사진을 직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슨 사진이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거의 모두가 "엄마가 아기에게 우유 먹이는 사진"이라고 대답했다. 자세히 보라고 하자. 그제야 "어 할아버지네. 난 엄마인 줄 알았지?" 그러더라는 것이다. 눈은 생각만큼 외부의 정보만으로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 외부만큼이나 내부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현실에 고정관념을 버무려서 만든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창의력

 

- 피카소는 그의 친구에게 "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고르기 전까진 내가 캔버스에 무엇을 그리려는지 모른다네. 매번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난 공중으로 도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제대로 착지할 수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네. 내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비교적 정확하게 가늠하는 건 훨씬 뒤에나 가능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 사실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준 사람들도 자신의 창의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크 모리스는 무용으로 말하고, 피카소는 그림으로 말하며, 아인슈타인은 수학으로 말하고, 박웅현은 광고로 말한다.

 

- 딸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여행할 때처럼 생활하고 생활하는 것처럼 여행을 하면 된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안테나를 세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그곳에도 있습니다. 그것을 볼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거지요.

 

- 다중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하워드 가드너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은 일곱 가지쯤으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드너의 이론도 당연히 충분하지 않다. 저마다 모두 다른 50억 인구를 유형화하려는 출발점부터 잘못된 것이다.

 

- 제가 뉴욕에서 공부할 때 가장 크게 감탄햇던 것이 광고들이 가볍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광고를 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기분좋은 느낌으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을 만큼 가볍다는 겁니다.

 

- 미친 사람들에게 바친다.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진 구멍에 막힌 동그란 못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하고 현실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을 칭찬하거나, 반대하거나, 인용할 수 있고 그들을 불신하고,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발명하고, 상상하고, 치유하고, 그들은 탐험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준다. 인류를 진보시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미쳐야만 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빈 캔버스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가? 어떻게 고요함 속에서 한 번도 작곡된 적이 없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실험실의 회전운동 속에서 붉은 행성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쳤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애플사 광고 카피 중에서>

 

- 박웅현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디에선가 써먹을 수 있는 멋진 말들을 많이 들려준다. 지금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생각난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아직 나 있지 않은 길을 가서 길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다. 가끔 절벽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없다. 이런 말도 기억난다. "아무런 위험 부담을 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위험해진다." 추락하고 낼개가 꺾이더라도 날개를 펴서 날아보아야 한다. 날아보지 않으면 평생 날 수 없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 그것이 창의력이다.

 

- 고흐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창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만일 우리의 삶이 그 시대에 붙박여 있다면 고흐는 절대로 창의적인 인물이 될 수 없다.

 

- 음악은 세 번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번스타인이 지휘할 때 태어나고,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음악이 세 번째 태어나는 그 순간,

인켈이 함께합니다.

<박웅현이 처음으로 만든 광고>

 

- 박웅현의 광고는 히까닥하지 않다. 뭉툭하지만 귀에 들리고, 눈에 잡힌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다. 강한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박웅현이 만든 광고는 인문학적인 창의력과 소통이 돋보인다. 가치지향적이다. 상식적이다.

시대와 상황의 맥락 속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그의 광고 속에는 늘 사람이 있다. 어렵지 않고 참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광고에 공감하고 또 감동한다.

 

- 대개 스스로 잘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도 자기처럼 강요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래서 반감을 사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하라는 일만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기도 하는데 박웅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칭찬하고, 배려하고, 그러면서도 일은 잘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 방식이 교과서적이고 상식적인데, 어떻게 그런 방법을 배웠을까?

"글쎄요. 제가 경험하면서 배운 것 같아요. 제가 그렇더라고요. 칭찬해주고, 배려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더 잘해서 보답하고 싶더라고요." 상식적이다. 이 말은 진부하다는 말과 아주 많이 다르다. 진부하다는 말은 단점이라는 느낌이 좀 담겨 있다. 그러나 상식은 힘이 세다.

 

- 박웅현이 세상에 잘 알려진 광고를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1993년 빈폴의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였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성공한 '창의적인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나는 운이 좋았어요'였다고 한다.

 

-'창의성은 가능성이 아니다'라는 말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첫째 아이는 버려졌고, 오늘날에 비교하면 고아원 같은 곳에서 자랐다. 루소는 <에밀>을 통해 교육을 이야기했지만 자기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다. 피카소가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하고 버린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모두 피카소의 창작을 위한 영감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들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에 대한 칭찬에 비하면 피카소가 떠나버린 여자들, 아이슈타인의 결혼 생활, 루소와 자녀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들도 '인간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창작을 향한 열정이 가장 큰 가치였던 것이다.

 

- 광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전쟁터가 된다. 광고주는 광고 제작 책암자와의 관계를 환자와 의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고객과 호텔 지배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 어느 날 보니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날아다니는 저 새와 다르지 않다.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0) 2021.01.28
어느 하녀의 일기  (0) 2020.12.30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0) 2020.12.02
소중한 경험  (0) 2020.11.20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0) 2020.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