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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경찰서부터 가게 된 파리여행

기장은 파리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고 했지만

공항에 착륙하자 하늘은 파랗고 해가 쨍~~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우리가 내리니 비가 그친게지... ㅎㅎ"

우린 잠시 후 벌어질 일은 꿈에도 생각 하지 못 한 채

공항을 나와 파리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페라광장 앞에서 내린 우린

수많은 인파 속을 헤집으며 호텔을 찾아갔다.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캐리어를 끌고 막 엘리베이터로 가려는데

뭔가 허전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캐리어에 묶어놓은 카메라 가방은 없고, 가방 끈만 달랑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가방 속에는 큰 맘 먹고 산 카메라 2대와 내 시력에 맞춘 썬글라스와 메모리 카드 등등이 들어 있었다.

 

"우악~!!! 어째!!!! 이런 일이!!!"

 

순간적으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서 내가 왔던 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제일 처음 만난 가게로 뛰어들어가서 다짜고짜 내 가방 못 보았는지를 물었다.

주인 남자는 낯선 사람이 모르는 말을 씨부리자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그곳을 빠져나와 버스를 내린 오페라 광장으로 뛰어갔다.

 

광장 앞에서는 큰 노래 소리도 들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어 물려다니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와~~합창하듯 환호소리도 터져나왔다. 활기는 그들만의 것이었다.

 

잠시후 내 뒤를 따라 아내도 뛰어왔다.

"쓰러질 것 같애." (나중에 본인이 쓰러질 것 같다고 한게 아니고 내가 쓰러질 거 같다고 한 거라고)

 

우린 터벅터벅 인파 속을 뚫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달리 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곤 아무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에 파리의 모습들을... 그림들을... 담아보리라. 생각했는데....

 

얼마나 흘렀을까?

그대로 잠이 들면 낼 아침엔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우리 나가자. 나가서 좀 돌아다니는게 나을 것 같아. 야경이라도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매일 가려고 잡은 숙소라 불과 3~4분 거리인 루브르광장으로 걸어갔다.

낮에 내린 비로 인해 바닥은 젖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컴컴한 광장에서 컴컴한 남자들이 철사줄에 에펠탑을 꿰어들고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들어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순간 발 밑을 시커먼것이 휙 ~ 지나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보니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큰 쥐 한 마리가 하수도 속으로 쏙~ 들어가고 있었다.

약간 비린내가 나는 듯도 했다.

파리의 첫인상은 정말 더럽고, 짜증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바로 '파리 증후군'이 나에게 나타난 것이다.

 

우린 잘 도착했느냐고 묻는 아이들의 문자에 잘 도착했다고 답을 보냈다.

덧붙여서 귀에 입이 걸린 환하게 웃는, 영혼없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억지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우린 경찰서나 한번 찾아가 보고 잊기로 했다.

카메라 못 찾으면 대신 눈에 많이 넣어가라고 그런가보다. 하고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휴대폰 카메라도 있고 오래된 똑딱이 카메라도 있으니

그냥 경찰서 찾아가는 일이 오늘의 미션이다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경찰서의 위치를 대강 호텔 직원에게 묻고 나섰지만 생각보다 경찰서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폴리스 오피스를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 모르겠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

일본인인걸로 지레짐작하고는 동료중에 영어를 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오는 사람 등등...

 

그러다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두 남녀에게 물으니,

뒤에 탔던 여자가 두 블록 지나 광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알아보라고 또박또박 영어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경찰서는 누구나 쉽게 보고 찾을 수 있는 광장에 있는 게 아니라 광장의 뒷길에 있었다.

서울의 파출소보다는 좀 큰데 건물 사이에 특색 없이 박혀 있었다.

그러니 여기 사는 사람들도 알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들어서니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과 사복을 입은 노랑머리 한사람, 이렇게 세 명의 여자 경찰이 앉아 있었다.

그때 이층에서 세 명의 남자 경찰이 내려오더니 세 명의 여경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도 야간 근무를 하고 세 명의 낮 근무 여경찰들과 교대하는 듯 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쪽쪽소리를 내며 양 볼을 서로 대는 인사를 하였다.

 

남자 세 사람과 여자 세 사람이 양쪽 볼에 쪽쪽 소리를 내며 인사를 했으니 9번이다.

게다가 양 볼에 했으니 우리들은 쪽쪽거리는 소리를 18번 들어야했다.

어쩌면 한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18번을 다 하는지 그것 때문에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우리의 용무는 그들에겐 저 뒷전의 일이고 볼뽀뽀가 우선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과의 저런 접촉을 통해 풍부한 감성이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러니 향수도 많이 필요하겠지?'

 

우린 세 명의 경찰 중 가장 연장자이며 높은 사람인듯한 노랑머리 여자에게 어렵사리 우리 사정을 이야기 했다.

노랑머리는 좀 전에 쪽쪽거릴 때와는 다른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얼굴로 종이 3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일본말과 불어가 혼합된 범죄 피해 서류였다.

우린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다시 한국어와 불어로 된 서류를 주고 쓰라는 손짓을 하였다.

 

국적, 주소, 이름,출생지, 잃어버린 것, 장소 등등... 그리고 범인 1,2,3의 인상착의 까지 항목도 여러가지였다.

우린 범인을 보지 못했으니 범인의 인상착의를 제외하곤 영어 주관식 시험지 작성하듯 작성해서 건네 주었다.

서류를 넘겨보다가 범인 인상착의를 하나도 안 쓴 것을 보고는 피식~ 웃는 것이었다.

참 어리버리한 사람들이네~~’ 하는 듯했다.

그는 우리가 쓴 서류를 컴퓨터에 한참동안 입력하고 나서는 한 장을 출력해서 내밀었다.

 

'이걸로 끝인가?'

우린 단지 여기에 잃어버린 우리의 가방이 있는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때 우린 급한 경우 영사콜센터로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비행기 안에서 본 생각이 났다.

우린 그 번호로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 하고 노랑머리에게 우리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노랑머리는 영어를 못한다며 다시 우리에게 휴대폰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영사직원은 우리에게 혹시 불어를 할 줄 아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겠느냐고 해서 우린 그러마고 했다.

자원봉사자의 전화를 받은 무표정한 노랑머리는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불어를 들은 소통의 기쁨이거나, 불어에 대한 자부심이거나, 아마 둘 다 해당될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우리의 의사가 전달이 되자, 노랑머리는 분실물센터 전화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파리외곽 지역이었다. '그래~~ 나중에 그 근처 갈 기회 있으면 가보지 뭐~~'

 

경찰서를 나서려는데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로 잘 생긴 한 백인청년이 경찰서로 끌려 들어왔다.

'저런 사람이 어쩌다가? 쯧쯧~~' 우린 백인청년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여자 경찰들도 아까 남자 경찰들에게 하듯

우리에게 볼 뽀뽀를 하자고 볼을 내밀지도 않아서 그냥 경찰서를 나섰다.

나서는데 백인청년의 압수한 소지품을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경찰이 바닥에 와르르~ 소지품들을 떨어뜨렸다.

주워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돕고 싶지도 않았다.

 

우린 오늘의 미션을 마친 것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찌뿌둥했던 몸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한겨울의 파리는 우리의 가을과 같은 선선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비가 내렸지만 먼지를 쓸어버린듯해서 걷기엔 그만이었다.

어제는 어제였고, 오늘은 오늘이었다.

 

며칠 뒤에 파리 외곽쪽에 있는 분실물보관서 주소를 보고 찾아갔다.

수많은 분실물들이 종류별로 보관되어 있었다.

나같은 어리버리한 사람들이 참 많기도 많은 것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물었다.

그러고는 컴퓨터로 확인해보더니 그런 가방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린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묻지않고 나왔다.

쉽진 않겠지만 빨리 잊기로 했다.

 

간혹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우린 보름동안 하루 12시간 이상을 걸어서 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유럽여행의 시발이 된 그 첫번째 파리 여행에서의 신고식....<사랑해, 파리> 책을 읽으며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았다.

 

 

 

힘들게 찾아간 파리경찰서(다른 카메라는 도난당하고 유일하게 남은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 하지만 이 똑딱이도 훗날 독일에서 도난당했다.)

 

당시 읽었던 책중 하나인<사랑해, 파리>를 다시 읽었다.

 

- 여행은 자기 자신을 만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파리를 온몸으로 만났다.

 

-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그때그때 얼굴이 달라지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비가 내리면 비가 내려서, 햇살이 비추면 햇살이 비춰서 달라진다.

파리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도,, 가장 지저분하고 거친 곳도 이곳 같다.

 

-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는 파리 18구는 아랍계 이민자와 동뷰럽 난민들이 유독 많은 우범지대로 통한다.

 

- 현장에서 직접 손님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들이 1등급이라면, 풍경화나 추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들은 2등급이다. 남들 앞에서 붓을 잡지 않고 작품을 진열해 놓고 팔기만 하는 군이 3등급쯤 된다는 말이다.

 

- 낭만이라구요? 그건 것 없어요. 몽마르트는 경쟁심과 질투심만 이글거리는 곳이죠.

실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손님들도 금세 알아보고 외면해요. 살기 위해 기를 써야 해요.

낭만은 그들의 일상을, 공연 작품 보듯이 구경하는 우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 터키군과의 전투에서 이긴 폴란드 군인이 터키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빵, 크루아상

 

- 파리에서 살아본 외국인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파리에 살아도 늘 서두르고 마음에 여유가 없지만,

프랑스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어디에 가도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 나는 체질적으로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의 휘발성이 강하다.

 

- 개선문에서 콩크르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

여기에 들어온 상점들은 옷 한 벌이나 가방 한 개 파는 것보다

"우리도 샹젤리제에 와 있소"하고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

 

- 샹젤리제에 사무실이 있지도 않으면서 있는 척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이렇게 '샹젤리제 프리미엄'을 노린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도 있다.

명함에 적힌 샹젤리제 주소로 배달된 우편물을 처리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 있지도 않은 '유령 사무실' 관리업인 셈이다.

 

- 수영복을 파는 프랑스 휴양지 상점에서 윗도리 없이 아랫도리만 색깔별로 늘어놓은 이유를 이제 알 것도 같다.

실내 체육관에서도 가슴을 내놓고 선탠하는데 바닷가까지 가서 굳이 미키니 윗도리를 입을 필요가 없는게 아닌가.

 

- 몸을 드러내며 사는 게 생활화되어 있다보니 몸을 가꾸는 걸까.

아니면 몸을 필사적으로 가꾸고 나니 그렇게 가꾼 몸을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걸까.

하여튼 '마음 튼튼, 몸 튼튼'이 아니라 '몸 튼튼, 마음 튼튼'이 파리에서는 통한다.

 

- 여성은 남성과 달라 재미삼아 불장난으로 그치지 않고 조절불능 상태로 흐르는 비율이 높단다.

 

- 프랑스 친구들에 따르면 같은 유럽 여성 중에서도 북유럽 여성들의 '휴양지 외도'가 더 심하단다.

북유럽 여성은 활발하다 못해 들세다는 평을 얻을 만큼, 튼튼한 외모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름나 있다.

 

- 누가 내게 "프랑스에서 가장 프랑스적인 것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바게트? 에펠탑? 아니다.

'그랑제콜' 이라고 답하겠다. 학교를 뜻하는 에콜 앞에 '대단한' '큰'이란 뜻의 형용사가 붙은 이말, 대체 무엇일까?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그랑제콜 출신의 힘과 영향력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다.

 

- 고등학생은 고교 졸업 자격증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 대학에 진학한다.

그런데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는 사람은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 다시 고등학교에 있는

'그랑제콜 준비반'에 들어가 2년여의 준비과정을 밟아야 한다.

 

- 영화 <다빈치 코드>의 촬영지가 파리로 결정되자, 시라크는 잔뜩 고무되어 기뻐했다.

영화가 개봉된 뒤 전년도에 비해 관광객 수가 25%나 늘었다고 한다.

 

- 미국은 프랑스의 역사가 탐나고, 프랑스는 미국의 경제가 부럽다.

미국인은 프랑스 음식과 프랑스어를 좋아하고, 프랑스인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한다.

파리에 살다보면 '안티 미국'과 '안티 영국'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생활 속의 사소한 것에서도 미국과 영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 1770년경 미국이 영국을상대로 독립 운동을 일으킬 때였다.

프랑스는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 의용군까지 보내 미국을 돕지 않았나.

그것은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영국이 미워서였다.

 

- "프랑스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다." 1992년 프랑스 상하원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이런 항목을 헌법에 추가했다.

 

- 프랑스의 언어 정책은 국가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어는 언어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국가도 바뀌고 달라져야 살아남을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거리 상점이나 공공기관에서

영어를 쓰려는 사람, 쓸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라만큼 중요한 국어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고집했다가는 변화하는 세상, 살기 피곤해진다는 걸 깨달아서인가보다.

 

- 프랑스인은 미국산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으로서도 싫어하고, 마음으로도 미워한다. 자기 문화에 대한 침입으로까지 받아들인다.

몇 년 전인가, 반세계화 운동을 펴는 농민 모임에 속한 이들이 지방에 있는 한 맥도널드 상점을 습격한 적도 있다.

 

- 900만 마리가 넘는 고양이와 800만 마리 넘는 개가 프랑스인과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니 "파리에는 어린아이보다 애완동물이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 흔히 베네치아를 놓고 옆에 있는 사람 그 누구와도 곧바로 사랑에 빠질만큼 낭만적인 도시라고 한다.

그럼 파리는 어떨까. 배우자없이 혼자 사는 25세 이상의 싱글이, 프랑스에는 9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히 독신자 1000만명 시대다. 특히나 파리는 한 집 건너 싱글이어서 자유롭고,

싱글이어서 외로운 이들이 파리에 대거 둥지를 틀고 있다.

 

-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가지 중 한 가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며 살아간다고 한다.

아파트, 직장, 그리고 인생의 반쪽 말이다.

 

-프랑스 공공 기관에서 서류 작성을 할 때보면 '결혼'관련 항목이 참 많다.

결혼, 이혼,사별 동거 별거 미혼 중 한개를 골라 표시해야 한다.

 

<사랑해, 파리/황성혜/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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