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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난 감정이란, 마음이란 그릇에 담겨 있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대동소이하지만 저자는 무대 위에 올라온 아이들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이 울적하면 무대 위에 우울이란 아이가 올라와 공연을 펼치는 것이니, 잠시 기다리고 억지로 몰아내지 말라고 이른다. 그러면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와 공연을 펼칠 테니 말이다.

 

지난 7월에 예약을 내가 했음에도 워낙 여러달이 지나서, 내가 이 책을 왜 신청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브런치북 관련 검색을 하다가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상적인 내용은 법륜 스님도 그러신것처럼

우린 삶을 뭐가 특별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저 먹고, 자고, 싸고, 그런것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매번 이런 종류의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는 사실.

모두들 다 다른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1장 - 마음을 데리고 사는 게 왜 이리 힘든가요.

2장 - 마음의 운전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친절부터 내려놓아요.

3장 - 판단하지 않을 때 안전해지는 마음 : 잘못된 감정은 없어요.

4장 - 뺄수록 건강해지는 마음

5장 - 연약한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내는 법 : 기꺼이 이상한 사람으로 살아갈 용기

 

이 책은 처음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마음챙김의 태도를 일상에 활용하는 방법을 담았고,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으며 그때 마음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싣고 있다.

 

무엇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내가 나의 주인인데, 왜 내 맘대로 안돼?

이런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때때로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닐 수도 있음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억지를 부릴 땐 조용히 물러나길 기다려야 함을.....그리하여 흘러가는 느낌에 끌려가지 않도록....

 

내마음을 돌보는시간/김혜령>

 

- 많은 사람이 타인의 안부를 묻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기 마음의 안부를 묻는 데는 서투르고 낯설어합니다.

 

- 이따금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고 연약한지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때서야 비로소 사는 게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많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확신 하던 게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우리의 삶을 유연하게 만들어주죠.

 

-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 있을 때 우리는 덜 괴롭습니다. 생각에 매달리지 않을수록 생각의 흐름을 허용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우울증을 겪지 않는 사람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차이점 중 하나는 복잡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걸 흘러가게 하는지, 아닌지에 있습니다. 마음이 건강할 때에는 특정한 생각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 오래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켰던 기능(의심하는 태도)이

현재 나를 괴롭히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인간은 유일하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동물입니다.

 

-원시인들은 항상 주변을 살핌으로써 위험으로부터 목숨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기민하게 주변을 살피던 경향이 오늘날에는 주의산만함으로 남아서 우리에게 핸드폰 중독을 선사하고 말았지만요.

 

-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면 기쁨과 행복감을 더 자주 느낄 수 있을 텐데, 태생적으로 인간은 부정적인 데 주의를 더 많이 기울이게끔 되어 있습니다.

 

- 주의산만함, 불안감(두려움), 부정적인 경향성,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를 생존시키고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장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죠. 계속해서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고, 게임이나 핸드폰에 주의를 빼앗기고, 부정적인 일에 초점을 맞춘 채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방향이 인간의 행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평온한 마음' 즉, 행복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 무엇보다 '내 마음은 애당초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녀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그 자체로 이미 통제력을 어느 정도 획득한 셈입니다. 생각을 통제하려고 할 때보다 생각을 가만히 놓아둘 때 원치 않는 생각을 흘려보낼 수 있거든요.

 

-나쁜 소식은, 당신이 당신의 마음이라는 정글에서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소식은, 당신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역설적으로 참된 권력을 쥐는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로버트 라이트>

 

- 뇌 속의 신경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은 무언가를 갈구하는 행동을 촉진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맛있는 음식, 갖고 싶은 옷, 가방과 같은 물건을 획득하면 도파민 수준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다가 도파민 수준이 다시 떨어지면 실망과 불만족 같은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죠. 그러면 우리는 도파민을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무언가를 갈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파민은 끊임없이 계속 순환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기대할 때에는 실제로 얻게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합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즐거움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즐거움과 쾌락이 일시적일 뿐이라는 겁니다. 쾌락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일시적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더 큰 쾌락을 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 뇌가 가진 특성 때문이지요.

 

-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불만족'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이 곧 괴로움입니다. 다음과 같은 식이지요.

 

A. 갈망하는 게 있음 → 안달남 → 괴로움

B. 갈망하는 걸 얻지 못함 얻음 → 괴로움

C. 갈망하는 걸 얻음 →언젠가 끝남 -→ 괴로움

D. 갈망하는 걸 얻었으나 기대에는 부족함 → 괴로움

 

-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좋은 느낌'을 계속해서 느끼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고통이나 쾌락, 두려움, 걱정, 사랑, 욕정 같은 무수한 감정들 중에서 오로지 쾌락만 느끼고 싶어하는 거죠. 그런 오해로 인해, 즐겁지 않은 느낌이 들 때에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황홀경을 끊임없이 맛보려 들기도 합니다. 과연 그 상태를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 무기력감에서 회복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행동을 하거나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 느낌은 그냥 느낌일 뿐 끌려가지 말자. 흘러가는 느낌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요. 내 마음을 잠깐 스쳐가는 손님 정도로 생각해보세요.

 

-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질문자가 어떤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틀 속에서 대부분이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괴로움을 유발하는 대상을 '가해자'로 설정하고 있었죠.

 

- '아, 다들 자기 세상 속에 살고 있구나. 어쩜 우리는 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상대방을 물을표의 상태로 둔다는 건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그 상대에 대해 더 호기심을 갖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무리 상대방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어도 여전히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며 사는 겁니다. 나의 세계 속에서 그 사람을 닫아버린 상태로 두는 게 아니라 입체적이고 변화할 수 있도록 열어두겠다는 거죠. 그러면 관계는 멈추지 않고 변화해갈 것입니다.

 

- 우리가 무엇을 보든 그건 진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반영일 이라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언제든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 마음의 운전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실천하기

1. 의도적으로 덜 보고 덜 듣기(자극 줄이기)

2. 생각을 바라보기 - 생각을 그저 바라보세요. 관대한 마음으로 그저 가만히 그 생각을 바라보세요.

마치 모니터 속의 영상을 바라보듯 어느 것도 붙잡지 않아야 합니다.

3. 나의 뇌가 야생에 길들여져 있음을 기억하기 - 진화되기는 했지만 석기시대의 뇌를 여전히 우리는 가지고 있는 셈

 

-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고통을 통제나 제거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데에서부터 마음을 치료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괴롭지 않은 상태를 정ㅅ아으로 보는 게 아니라 괴로운 상태를 정상으로 보는 거죠. 이를 '고통의 정상성'이라고 표현해요. 심지어 고통을 받아들이는 게 괴로움을 겪지 않을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내야 할 것은 '거대한 삶'이 아닙니다. 그저 오늘 하루, 아니 지금 이 순간, 오직 찰나를 살면 되죠.

그러니 조금 가볍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는 괴로움 없이 편하게 살거야'라는 생각은 삶을 더 괴롭고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삶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구불구불하고, 비탈길과 내리막길이 섞여 있다고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그래서 어떤 길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하는 겁니다. 높은 파도를 만나도 당황하거나 허우적 대지 않고 스릴 있게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말이죠.

 

- 내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은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아이들인 겁니다. 내 다섯 손가락이 모두 소중한 것처럼 감정도 각기 모두 소중한 존재인 거죠. 그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내 마음이란 무대에 오른 것일 뿐입니다. 화가 날 때는 '그렇게 기분나쁠 일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타박할 게 아니라 '아, 분노란 녀석이 무대 위에 올라왔구나!'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무대 위의 분노는 더 크게 난동을 부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내려갈 겁니다. 관심을 받았으니 목적을 달성한 셈이거든요. 그뿐입니다.

 

-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유전자를 탓해야 하는 걸까요.? 희망적인 소식은 이 취약한 영역이 충분히 보완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연습을 통해서 분명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신경가소성'이라는 뇌의 특징 때문이에요.

 

- 우울에 취약한 사람을 예로 들면, 그런 사람은 자기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이 원래부터 있을 거예요. 자기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자동적으로 비판하고 폄하하는 거죠. 하지만 그 자동적인 과정도 의식적으로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 쉽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 마음에 대한 자책을 멈추고 그저 관찰하세요.

 

- 우울증을 해결하는 입증된 방법은 광합성과 달리기입니다.

 

-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의 이완'이 언제나 첫번째라는 걸 기억하세요.

그것은 마음을 위한 필살기 같은 겁니다.

 

- 때로 우리는 '행복'을 마치 엄청난 기쁨이나 희열로 착각합니다.

 

- 실제로 외부에서 자신이 직접 비난받는 일은 10%도 되지 않을 거예요. 결국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 판단하기 않을 때 내 마음은 안전해집니다.

 

- 자신을 날카롭게 평가하고 걸러내는 과정에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익명의 기분이 존재합니다. 알 수 없는 존재의 시선이죠.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 자신의 특질 중에서 어두운 면을 부정하고 거부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의 다른 곳에 그 어두움이 저장되고 축적된다. 이제 나중에는 우울한 기분, 육체적 심리적 질변, 혹은 무의적으로 고무된 사건이나 사고로 나타날 수 있다.

<로버트 존슨>

 

- 많은 경우 어른들은 아이들의 감정적인 반응에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남자답지 않게 왜 울고 그래,", "뭘 그렇게 겁먹어"와 같은 피드백을 주기 마련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격렬한 감정에 대해 일단 혼나고 시작하는 거죠. 나의 감정이 존중받는 게 아니라 감정 자체가 부정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감정이 부적절하구나.'하고 이애하게 됩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배우기보다는 무조건 감정은 차단해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거죠.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생각 기능과 마음 기능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서로를 배려하고 온기를 난루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살아가는 데에 엄청난 힘이 됩니다.

 

- 우리는 생각 공장을 돌려서 상황을 과장하고 왜곡하며 때로는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기도 하죠.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사건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의 일이기에 종결된 사건이지만, 마음속에서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진행형의 일처럼 느껴지죠. 그 문제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는 한 내 마음에 계속 영향을 주는 겁니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영향이고요.

 

- 우리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행위에서 안전해지고 평화로워집니다. 모든 게 과해진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자녀 양육이나 교육도 과해서 생기는 문제가 넘쳐나고요. 못 먹어서 생기는 문제는 드물어도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과 위장장애는 빈번합니다. 교통체증과 주차전쟁도 자동차가 너무 많은 탓이고, 심지어 사랑이 지나쳐서 폭력이 되는 시대죠.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인 건 이유가 있는 거겠죠. 웬만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적절히 필터링하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삶이 필요해요.

엄청난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면서 우리의 주의력은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산만함이 기본적으로 장착된 인간이, 문명의 발달 때문에 점점 더 주의력이 약해지고 있어요. 그럴수록 마음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요.

 

-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나를 만든다.

 

- 마음을 위한 미움 다이어트

 

- 어느 날 괴물을 발견한 뒤 미움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문에 비친 괴물을 똑똑히 보았거든요. 그건 저였죠. 저의 경우, 괴물과 영영 작별을 하게 해주었던 큰 깨달음은 이것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계속 저렇게 살겠지. 하지만 그게 내 몫은 아니지.'

 

- 캐나다의 소셜미디어 전문가 베일라 파넬은 소셜미디어가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그중 하나를 '하이라이트 모음집'으로 설명합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개인 온라인 공간은 결국 그 사람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모아둔 일종의 하이라이트 모음집이라는 건데요. 문제는 타인의 하이라이트 모음집과 자신의 일상을 비교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결국엔 타인의 '편집된' 삶입니다. 의도적으로 좋은 부분만 올리지는 않더라도, 어쨌거나 인위적으로 엮어진 것만은 사실이죠. 즉, 걸러진 모습들입니다. 그렇게 상대방의 편집된 삶을, 나만이 아는 내 소박한 삶과 비교한다는 게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죠. 하지만 연약한 인간은 그로인해 우울해집니다.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에요.

 

-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건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입니다. 매끄럽게 편집된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먹고 싸고 잠드는 것 같은 매일의 사소함 속에 삶이 있죠. 그렇기에 서툴고 어설프고 추레한 일상의 모습이 '나'라는 전체에서 제외도어선 안 됩니다. 소중한 내 모습이니까요. 화려하고 멋진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두가 각자의 흐름을 가지고 있기 대문에 타인과 나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순간도 오고, 부끄러워 숨고 싶은 순간도 옵니다. 누구에게도 인생이 녹록치 않죠. 그럼에도 누구나 행복할 자격이 있잖아요.

 

-비교하는 행위 자체는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삶은 지금 밥 먹고 똥누는 여기에 있어요. 삶이 밥 먹고 똥싸는 저 너머 어떤 새로운 곳에 있다고 믿는 것은 망상입니다. 인생은 밥먹고 똥싸며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투며 살아가는 것일 뿐, 특별한 게 없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삶이 뭔가 특별해야 한다는 망상 때문입니다.<법륜스님>

 

- 과거에 물건은 '도구'로서 기능했지만, 현대의 물건은 우리를 도구로 만들어버립니다.

 

-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지만, 그 자체로 좋음도 나쁨도 아니라는 것, 다만 우리가 보는 시각에 따라 생을 입혀왔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라도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 유독 겁이 많았던 저는 스스로 제 정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상대가 저를 이상한 쪽으로 오해할 것 같으면 열심히 해명했습니다.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침묵하기도 하고 나를 평균적인 모습으로 바꾸려고도 했죠. 이 노력을 20대 후반까지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동안 자란 키만큼 자아가 조금 더 성장했나 봅니다. 그렇게 자라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수많은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도대체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이지?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이지?'에서부터 '이 세상은 과연 제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는 곳인가?'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입고 있을 뿐, 제각기 자신의 별난 모습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또 저마다의 안경을 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다른 안경을 통해 나를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오해'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나를 해명해도 결국에 '진짜 나'를 투명하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상해 보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나를 가두고 살았던 저는 어느 순간 '이상하면 안 돼?'라는

질문으로 나아갔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타인은 결국 나를 오해하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타인을 제 방식으로 오해할 것이고요. 각자 방식으로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딱 그 사람 마음 크기만한 관대함으로 나를 보려 할 겁니다.

 

- 모두가 진짜 네 모습을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난하도록 내버려두라

<파울로 코엘료>

 

- 가치와 목표는 다릅니다. 목표는 '시험에 합격하기','취업하기', '내 집 마련하기'등과 같이 마침표가 있습니다.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죠. 그렇지만 가치는 단지 방향이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가치의 자리에 목표를 두는 사람은 그 지점에 도달하고 나면 허무해지기가 쉽습니다. 가까스로 시험에 합격하거나 내 집 마련에 성공하고 난 후 그다음이 없기 때문이죠. 큰 방향성 없이 목표 지점만을 향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달릴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치열했던 만큼 더욱 공허할 뿐이에요.

 

- 안다고 생하는 오만함에서 발생하는 흔한 실수가 바로 타인의 문제에 쉽게 침범하는 겁니다.

 

-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너도 나를 위해 살려고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우연히 서로 일치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심리학자 프리츠 펄스>

 

- 산다는 것은 결국 끝없는 불안 속을 헤쳐나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앞날을 내다볼 수는 없으니까요. 미래, 그 '알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 불확실성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바로 불안이며 삶입니다. 그럼에도 정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상황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연인, 부부 관계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과도하게 주도하고 상대를 구속하려고 하죠. 겉으로 무척 강해 보이지만 내면은 그 반대입니다. 의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의 마음보다 훨씬 취약해요.

 

-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의 대다수는 검증되지 않은 거짓 생각이라서 쉽게 나를 감정의 덫에 걸리게 할 수 있다.

<수전 데이비드>

 

- 어떤 감정이든 우리를 옭아매지 않고 흘러갈 수 있어야 합니다.

 

- 두 번 사는 게 아닌 이상 매일매일 낯선 길인데, 미지의 세계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인간이 불안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불안은 존재의 핵심이 맞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왕 함께 해야 한다면 불안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불안에 중독된 삶이 아니라, 지혜롭게 동행할 수 있는 삶으로 말이죠.

 

<내마음을 돌보는 시간 / 김혜령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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