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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 책이 일 년도 안된 기간 동안 23쇄를 찍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제목처럼 나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회나 부모나 기성세대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눈치보며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고

그런 자신이 싫고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뜻일게다.

 

이시형 박사가 <배짱으로 삽시다>를 펴낸 게 아주 오래 전인데도,

아직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자기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난 엄마(또는 아빠) 처럼 살지 않을거야~' 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얽혀있는 사회와 조직과 사람들 속에서 그걸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속에 얼마나 많은지 깊은 늪을 헤쳐나가야 하는 느낌일 것이다.

그럼으로, 나대로, 내 배짱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는 책이라고 누군가 말해서 보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처세 술을 다룬 책들의 상당수가

개인적인 체험에서 얻은 것들을 일반화 시킬 수 있는 양 적어놓은 책들이 많았다.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자기계발서류의 자기 과시용 책들,

어쩌다, 어쩌다 운이 좋아 성공한 것을 자기 능력과 땀과 고생으로 이루었다는 책들,

이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온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부분에선 젊은 이의 고백록처럼 읽혀진다.

재기발랄하고 통통튀는 상큼한 문체가 읽는 맛을 느끼게 해서 속도감있게 읽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되지 않으려는 그런 노력도 보이고......

 

저자가 그린 삽화의 모습은 순종적인 순한 여성으로 여겨졌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경쾌하게 펀치를 날려 주머니 속 쿠크다스처럼 부서진 여린 마음들을 위로한다.

내가 읽어도 통쾌한데 젊은이들은 보기싫은 누군가를 향해 하이힐 뒤꿈치로 한 대 가격하는 통쾌함도 느끼지 않았을까?

 

20대 중반에 부모님께 나한테는 기대를 버리고 하숙생이라고 생각하시라고 말해 쌍욕을 먹었다는 대목은

이 땅의 부모와 자식간에 일어나는 충돌의 한 장면을 대표하는 장면이 아닐런지.

 

나로 살기로 결심한 많은 사람들이 부디 '나의 길'을 찾아 갔으면 좋겠다. 상처를 조금만 받고.......

 

 

 

 

-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날 문득 내 자신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애매한 나이에 애매한 경력과 애매한 실력,

나는 제대로 갖춘 것도 보장된 것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애매한 어른으로 자라버렸을까.

 

-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때 겪었던 고통이 아니라

고문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 했다.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상을 끼치는 건,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했던 자기 자신인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는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질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 미디어는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 있게 하고, 옛날 같았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들의 완벽해보이는 삶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과연 그 호기심은 무료일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란 책에서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내 삶과 비교하는 것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이야기했다.

 

우리 역시 약간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구경하고, 그 대가로 비참함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충족된 호기심으론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그 에너지와 호기심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삶을 돌보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 타인의 삶에 기꺼이 친구는 되어주되 관객은 되지 말자.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 그들의 삶보다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하다.

부디 비참해지려 애쓰지 말자.

 

- 부러워서 진 게 아니라 네가 가진걸 잊어서 진거야.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데 있다.

 

- 세상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부가 있듯이 떳떳한 가난이 있다.

 

- 숫자라는 건 언제나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세모와 동그라미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1과 2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숫자의 삶이란 쉴 새 없이 비교되며 서열이 매겨지는 삶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낮은 값어치가 매겨질까 안절부절못하고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을 보장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 누군가 당신에 대해 비난이 포함된 판단을 내린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은

첫째, 그건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 그 사람이 솔로몬이나 프로이트는 아니라는 것.

둘째, 그것이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면 해야 할 일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게 아니라 비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 비난이 진실이라면 안 좋은 점을 고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그저 상대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짓이라면 그냥 개가 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셋째 만약 개가 계속 짓으면? 가민히 듣곡 있지 말고, 마땅히 그 책임을 물으시라. 죄명은?명예훼손뵈? 아니. 소음공해죄.

 

- 자신에 대한 수치심, 무가치함은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감정을 숨기고자 냉소로 무장하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변명 뒤에서 자신을 보호한다.

 

-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며 타인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우리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도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가졌으며, 손상되지 않은 삶은 없다.

 

-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이상을 떠나보내는 지점 어른의 사춘기는 그 지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 내 삶에는 많은 제약이 있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에도 허락된 많은 것들이 있다.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 알랭 드 보통은 어른이 된다는 건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의미라 했다. 살아보니 세상은 동화같지 않다. 갑질에 분개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만큼 차별은 일상에 만연하고 속물의 조건적 관심에 의연한 척하며 무시하려 해도 마음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쿠크다스처럼 부서진다.

 

심리학자 제임스 마샤는 자아정체성의 성취 정도에 따라 정체성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 4가지 유형은 성취, 탐색, 폐쇄, 혼미 정체성인데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다수가 낮은 정체성 지위인 폐쇄지위(74.4%)에 놓여있었다.

폐쇄지위란 기존의 사회 가치 체계를 그대로 순응하고 전념한 유형인데, 이론에 따르면 이 이 지위가 낮은 정체성에 있는 이유는 위기의 부재에 있다. 인생에 위기가 없었다니, 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위기란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소개팅녀 앞에서 카드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 아니라, 목표, 가치, 신념에 대하여 자문하며 투쟁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 혜민 스님도 한비야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경험과 탐색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들에 매몰되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온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 높은 기준의 단일화된 정답을 이야기하며 정답에 대한 병적인 찬사와 오답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 6.25 심성 :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라는 책에서 6.25 전쟁 시절을 살듯이 '죽느냐 사느냐'식의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전쟁하듯 세상을 살고 있는 한국인 의식 심연에 자리 잡은 그 무엇을 6.25 심성이라고 표현 했다.

 

- 획일화된 경험은 스스로를 오해하게 하고, 경험은 스스로를 이해하게 한다.

- 제갈공명이 옆방에 살지라도 우리의 결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 취향의 차이는 우열의 증거가 아니며, 강요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닌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이다.

- 사람들은 날 서있고, 또라이는 넘쳐나며, 가습기 살균제가 '살균'이 아니라 '살인'을 하더라

 

- 그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면들만 '나'라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친구를 욕하며 나는 이기적인 면이 없는 완전한 사람처럼 굴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의 다른 면들이 드러날 땐 못 본 척, 모른 척 지나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면들은 내가 아닌 척 위장했던 거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오만했는가.

 

- 자본주의 최대의 비극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재능은 무가치해지는데 있다.

 

-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까지 염려하며 완벽한 안전을 얻고자 하는 건 멸균 공간에서 냉장되어 살아가길 바라는 것과 같다. 삶의 안정감은 불확실을 완벽하게 제거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불확실과 맞서며 얻어진다.

 

- 뭘 잘했다고 울어...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건 나쁜 거라 배웠는지도 몰라요.

 

-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기에,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뭐라도 하고 거기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 이방인에겐 달동네도 낭만이고 여행자에겐 빈민촌도 경험이고 제3자에겐 누군가의 비극도 가십거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정없는 호기심을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우리는 허락할 것인가? 우리에겐 타인의 사생활을 알 권리가 없다.

내 인생이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싫다면 타인의 삶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타인의 삶은 지켜주지 않은 채 나의 삶만 배타적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는 것이고,

나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 타인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 우리는 편협한 이들에게 이해 받으려 사는 게 아니며,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 과도한 타인 의식은 마음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라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긴장하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신드롬에 가깝게 팔렸다는 건,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반증이자 집단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의 피로도를 보여준 것이다.

 

- 우정의 기초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져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성적을 위해 경쟁적 대인관계를 독려받았다. 그건 타인을 신뢰하는 대상이 아닌 경쟁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고 ,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말살시키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초집단주의 사회임에도 OECD의 '공동체 지수'도, '사회 관계'도 모두 꼴찌를 차지했다.

개인주의가 뿌린내린 서구사회보다도 공동체가 훨씬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지만, 그 시선에 어떤 신뢰나 유대는 없다는 뜻이다. 관계 속에서 질식할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낱개의 개인들만 남은 것. 그 사실이 우리를 힘겹게 한다.

 

- 누구도 당신의 행복을 훔쳐간 적 없어요.

- Best friend 만을 기대하며 Good friend의 가치를 잊지 말 것.

 

-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며 어려운 길로 돌아가지 말고, 많은 사람 중 나와 주파수가 같은 누군가를 발견하라.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 해서 식음을 전폐할 필요가 없듯이, 또라이를 만나 힘들었다 해서 모든 관계를 끊어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상한 음식을 골라내는 후각이고, 진심 없는 인간들은 곁에 두지 않는 안목일 뿐.

 

- 나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내며 개인적인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인 위로들이 우리가 맞닿은 문제의 표면만을 표류하며 사회적 담론에 닿는 것을 흐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위로만 받으려 하는 집단 퇴행 속에선 누구도 돌부리를 치우려 하지않고 그저 방관할 뿐이다. 위트있는 비유로 가볍게, 혹은 냉소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나 역시 이왕이면 덜 심각한 편이 좋다. 하지만 때론 어렵고 , 복잡하며 재미없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 탯줄을 끊는 순간 돈줄이 연결된다는 말처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양육비를 쓴다.

 

- 회사의 주인이 된 마음으로 일해주게 (하지만 주인은 날세)

나는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네(하지만 내일 아침에 보고해주게)

나중에 다 보상받을 걸세(하지만 우리 회사에선 아닐세)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지만 곧 퇴사하겠습니다.)

 

- 겉보기에 조용한 것이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평화였다.

 

- 안전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듯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한다.

핵심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감과 도덕성에 의존하는

사회 시스템의 후진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논의에는 닿지 못한 채

개인을 비난하는 것에 머무르거나

문제의 본질이 아닌 진보, 보수를 나누는 독선적인 편가르기로 담론을 뒤바꾸곤 한다.

그런 논쟁으로 문제의 해결에 다가서지 못하는 데 말이다.

 

-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맨날 싸워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함에 있다.

 

- 상하 관계 예의는 엄격하게 따지면서도

상호관계 에티켓은 개나 줘버린 이들을 꼰대라 한다.

 

- 김현철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우리나라의 공통점으로 '방황이 허락되지 않은 사회'를 이야기 했다.

 

-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날 문득 내 자신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애매한 나이에 애매한 경력과 애매한 실력,

나는 제대로 갖춘 것도 보장된 것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애매한 어른으로 자라버렸을까.

 

-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때 겪었던 고통이 아니라

고문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 했다.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상을 끼치는 건,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했던 자기 자신인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는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질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 미디어는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 있게 하고, 옛날 같았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들의 완벽해보이는 삶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과연 그 호기심은 무료일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란 책에서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내 삶과 비교하는 것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이야기했다.

 

우리 역시 약간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구경하고, 그 대가로 비참함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충족된 호기심으론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그 에너지와 호기심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삶을 돌보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 타인의 삶에 기꺼이 친구는 되어주되 관객은 되지 말자.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 그들의 삶보다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하다.

부디 비참해지려 애쓰지 말자.

 

- 부러워서 진 게 아니라 네가 가진걸 잊어서 진거야.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데 있다.

 

- 세상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부가 있듯이 떳떳한 가난이 있다.

 

- 숫자라는 건 언제나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세모와 동그라미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1과 2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숫자의 삶이란 쉴 새 없이 비교되며 서열이 매겨지는 삶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낮은 값어치가 매겨질까 안절부절못하고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을 보장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 누군가 당신에 대해 비난이 포함된 판단을 내린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은

첫째, 그건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 그 사람이 솔로몬이나 프로이트는 아니라는 것.

둘째, 그것이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면 해야 할 일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게 아니라 비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 비난이 진실이라면 안 좋은 점을 고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그저 상대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짓이라면 그냥 개가 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셋째 만약 개가 계속 짓으면? 가민히 듣곡 있지 말고, 마땅히 그 책임을 물으시라. 죄명은?명예훼손뵈? 아니. 소음공해죄.

 

- 자신에 대한 수치심, 무가치함은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감정을 숨기고자 냉소로 무장하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변명 뒤에서 자신을 보호한다.

 

-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며 타인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우리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도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가졌으며, 손상되지 않은 삶은 없다.

 

-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이상을 떠나보내는 지점 어른의 사춘기는 그 지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 내 삶에는 많은 제약이 있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에도 허락된 많은 것들이 있다.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 알랭 드 보통은 어른이 된다는 건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의미라 했다. 살아보니 세상은 동화같지 않다. 갑질에 분개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만큼 차별은 일상에 만연하고 속물의 조건적 관심에 의연한 척하며 무시하려 해도 마음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쿠크다스처럼 부서진다.

 

심리학자 제임스 마샤는 자아정체성의 성취 정도에 따라 정체성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 4가지 유형은 성취, 탐색, 폐쇄, 혼미 정체성인데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다수가 낮은 정체성 지위인 폐쇄지위(74.4%)에 놓여있었다.

폐쇄지위란 기존의 사회 가치 체계를 그대로 순응하고 전념한 유형인데, 이론에 따르면 이 이 지위가 낮은 정체성에 있는 이유는 위기의 부재에 있다. 인생에 위기가 없었다니, 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위기란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소개팅녀 앞에서 카드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 아니라, 목표, 가치, 신념에 대하여 자문하며 투쟁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 혜민 스님도 한비야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경험과 탐색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들에 매몰되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온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 높은 기준의 단일화된 정답을 이야기하며 정답에 대한 병적인 찬사와 오답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 6.25 심성 :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라는 책에서 6.25 전쟁 시절을 살듯이 '죽느냐 사느냐'식의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전쟁하듯 세상을 살고 있는 한국인 의식 심연에 자리 잡은 그 무엇을 6.25 심성이라고 표현 했다.

 

- 획일화된 경험은 스스로를 오해하게 하고, 경험은 스스로를 이해하게 한다.

- 제갈공명이 옆방에 살지라도 우리의 결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 취향의 차이는 우열의 증거가 아니며, 강요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닌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이다.

- 사람들은 날 서있고, 또라이는 넘쳐나며, 가습기 살균제가 '살균'이 아니라 '살인'을 하더라

 

- 그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면들만 '나'라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친구를 욕하며 나는 이기적인 면이 없는 완전한 사람처럼 굴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의 다른 면들이 드러날 땐 못 본 척, 모른 척 지나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면들은 내가 아닌 척 위장했던 거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오만했는가.

 

- 자본주의 최대의 비극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재능은 무가치해지는데 있다.

 

-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까지 염려하며 완벽한 안전을 얻고자 하는 건 멸균 공간에서 냉장되어 살아가길 바라는 것과 같다. 삶의 안정감은 불확실을 완벽하게 제거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불확실과 맞서며 얻어진다.

 

- 뭘 잘했다고 울어...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건 나쁜 거라 배웠는지도 몰라요.

 

-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기에,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뭐라도 하고 거기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 이방인에겐 달동네도 낭만이고 여행자에겐 빈민촌도 경험이고 제3자에겐 누군가의 비극도 가십거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정없는 호기심을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우리는 허락할 것인가? 우리에겐 타인의 사생활을 알 권리가 없다.

내 인생이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싫다면 타인의 삶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타인의 삶은 지켜주지 않은 채 나의 삶만 배타적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는 것이고,

나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 타인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 우리는 편협한 이들에게 이해 받으려 사는 게 아니며,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 과도한 타인 의식은 마음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라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긴장하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신드롬에 가깝게 팔렸다는 건,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반증이자 집단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의 피로도를 보여준 것이다.

 

- 우정의 기초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져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성적을 위해 경쟁적 대인관계를 독려받았다. 그건 타인을 신뢰하는 대상이 아닌 경쟁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고 ,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말살시키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초집단주의 사회임에도 OECD의 '공동체 지수'도, '사회 관계'도 모두 꼴찌를 차지했다.

개인주의가 뿌린내린 서구사회보다도 공동체가 훨씬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지만, 그 시선에 어떤 신뢰나 유대는 없다는 뜻이다. 관계 속에서 질식할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낱개의 개인들만 남은 것. 그 사실이 우리를 힘겹게 한다.

 

- 누구도 당신의 행복을 훔쳐간 적 없어요.

- Best friend 만을 기대하며 Good friend의 가치를 잊지 말 것.

 

-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며 어려운 길로 돌아가지 말고, 많은 사람 중 나와 주파수가 같은 누군가를 발견하라.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 해서 식음을 전폐할 필요가 없듯이, 또라이를 만나 힘들었다 해서 모든 관계를 끊어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상한 음식을 골라내는 후각이고, 진심 없는 인간들은 곁에 두지 않는 안목일 뿐.

 

- 나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내며 개인적인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인 위로들이 우리가 맞닿은 문제의 표면만을 표류하며 사회적 담론에 닿는 것을 흐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위로만 받으려 하는 집단 퇴행 속에선 누구도 돌부리를 치우려 하지않고 그저 방관할 뿐이다. 위트있는 비유로 가볍게, 혹은 냉소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나 역시 이왕이면 덜 심각한 편이 좋다. 하지만 때론 어렵고 , 복잡하며 재미없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 탯줄을 끊는 순간 돈줄이 연결된다는 말처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양육비를 쓴다.

 

- 회사의 주인이 된 마음으로 일해주게 (하지만 주인은 날세)

나는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네(하지만 내일 아침에 보고해주게)

나중에 다 보상받을 걸세(하지만 우리 회사에선 아닐세)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지만 곧 퇴사하겠습니다.)

 

- 겉보기에 조용한 것이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평화였다.

 

- 안전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듯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한다.

핵심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감과 도덕성에 의존하는

사회 시스템의 후진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논의에는 닿지 못한 채

개인을 비난하는 것에 머무르거나

문제의 본질이 아닌 진보, 보수를 나누는 독선적인 편가르기로 담론을 뒤바꾸곤 한다.

그런 논쟁으로 문제의 해결에 다가서지 못하는 데 말이다.

 

-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맨날 싸워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함에 있다.

 

- 상하 관계 예의는 엄격하게 따지면서도

상호관계 에티켓은 개나 줘버린 이들을 꼰대라 한다.

 

- 김현철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우리나라의 공통점으로 '방황이 허락되지 않은 사회'를 이야기 했다.

 

<책 목차>

 

part 1. 나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기 위한 to do list

 

-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

- 비참해지려 애쓰지 않을 것

- 떳떳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것

-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 인생에서 숫자를 지울 것

-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

- 모욕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

-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을 것

-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음을 기억할 것

- 보통의 존재로 충분히 행복할 것

- 나를 평가할 자격을 주지 않을 것

- 주눅 들 만큼 겸손하지 말 것

- 나의 삶을 존중할 권리를 말할 것

 

part 2.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to do list

 

- 단단한 자존감을 다질 것

- 나다운 삶을 찾을 것

- 더 이상 삶의 질문을 유예하지 않을 것

- 당연했던 것에 질문할 것

- 누구의 기대를 위해서도 살지 않을 것

- 나 외엔 무엇도 되지 않을 것

-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을 것

- 안목을 기를 것

- 스스로 선택할 것

- 개인의 취향을 대면할 것

-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갈 것

 

part 3. 불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한 to do list

 

- 삶이라는 모호함을 견딜 것

-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

- 자신만의 문제라고 착각하지 말 것

- 미래에 대한 엉터리 각본을 쓰지 않을 것

- 진짜 해결책을 찾을 것

- 충분히 슬퍼할 것

- 힘이 들 땐 힘이 든다고 말할 것

- 불안하다고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 것

 

part 4. 함께 살아가기 위한 to do list

 

-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일 것

- 모든 이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을 것

- 서로의 경계를 지켜줄 것

- 너그러운 개인주의자가 될 것

- 일상에서 승패를 나누지 않을 것

- 미움받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말 것

-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

-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욕심내지 말 것

- 생활 기스와 완전 파손을 분류할 것

- 지금의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

- 그린라이트가 켜졌다면 직진할 것

-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 할 것

 

par 5. 더 나은 세상을 위한 to do list

 

- 때론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것

-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 것

- 나의 몫을 외면하지 않을 것

- 필요하다면 버틸 것

- 조바심을 버릴 것

- 잘 싸우는 법을 배울 것

- 희망의 근거를 만들 것

- 기꺼이 세상에 호의를 베풀 것

-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이 될 것

- 헝거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

-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

 

Part 6 . 좋은 삶,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to do list

 

- 행복을 삶의 목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

- 가볍게 살아갈 것

- 삶의 경우의 수를 늘릴 것

- 메마르지 않으려 노력할 것

- 다들 알아서 행복할 것

- 얻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것

- 지나간 과거와 작별할 것

- 인생에 여백과 바보비용을 둘 것

- 그대로 당신은 당신을 이해할 것

- 나의 행복에 관심을 가질 것

- 완벽하지 않음을 사랑할 것

-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것

- 어른으로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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