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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수레바퀴 아래서

이 어린 아이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처음 읽었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 읽었다면 나이들어 읽으니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보게된다.

그리고 전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기관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100여년 전 헤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세계적으로 읽혔어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과연 교육이, 교회가 변했나?

 

여전히 개개인의 삶을 옭죄는 수레바퀴 구실을 여전히 교묘하게 행사는 건 여전한거 아닌가?

 

자전적 소설이지만 사실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주인공 한스는 어머니가 없었으나 헤세는 인자한 어머니를 가졌고, 한스는 자살을 꿈꾸지만 헤세는 그러지 않았다.

무리한 공부에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뜻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에 출간되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런 공부의 희생양에서 벗어나 있나? 생각해 보니 인간이 어찌하기 힘든 요원한 문제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마을 유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시험을 치르러 떠나는 어린 한스가 느끼는 부담감이 내게도 느껴졌다.

36명 선발에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아이들 118명이 지원을 한 것이다.

 

3일간의 시험을 치르고 나서,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체 2등으로 합격하였다.

한스에게 이제 탄탄대로의 희망 속에 미래가 열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름날 - 한가로이 목욕하고 고기를 낚고 몽상하면서 지내는 나날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유혹하는 듯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직 하나 일등이 되지 못한 것이 그는 분하고 안타깝게 느끼는 한스를 보면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오래전 독일에서도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동안 그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선생들, 목사, 아버지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까지 그를 격려하였다. 하지만 그건 격려가 아닌 억누름이었다.

 

어린 나이에 주변의 기대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은 공명심과 우월감은 자꾸만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고 초조하게 하였고 마침내 좋지않은 결말로 나아가는 것 같아 읽으면서도 불안했고 한스가 안쓰러웠다.

 

교육이란 것을 통해 인간 내면의 거칠고 난잡하고 야만적인 면을 분쇄해야 하다고 믿은 당시의 분위기도 안타깝기 그지없었고, 스스로 자기 통제를 하며, 들판을 돌아다니고, 낚시를 하는 등 하고 싶은 걸 억누르는 어린 한스를 보면 삶이 도데체 무언가까지 되묻게 된다. 어린 시절엔 그런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며 노는 것이 무엇보다 훌륭한 교육일텐데. 제도와 전통과 관습에 의해 본성을 억누르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려버린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한스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아이인 하일러를 만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 본성을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성향의 아이가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하는 것 같았다. 동성애 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지만, 하일러와 한스는 그런 관계이다. 헤세는 아마도 본성을 지배하는 수레바퀴를 말하려고 동성애를 등장 시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을 왜 자신들이 재단하려드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전형적인 이성애자이지만 동성애자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태어난 삶은데......

 

하일너와 가깝게 지내는 한스가 잘못된 물이 들까 걱정한 교장도 한스를 불러서 하일너와 멀어질 것을 간곡하게 이야기 하지만, 한스는 하일너와의 우정 이상의 것을 놓치지 못하고 둘은 다른 친구들로 부터 고립된다. 그런 따돌림으로 인해 한스는 친구들과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다.

 

하일너의 일탈은 퇴교 처분을 받기에 이르렀고 하일러의 일을 한스는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한 선생들은 한스를 완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따돌리게 되었다. 한스가 미소라도 지으면 울어야 할 놈이 웃고 있느냐는 조롱을 받기까지 하였으니, 선생들의 투명인간 취급에 어린 한스가 느꼈을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일너의 뒤를 이어 한스도 버티지 못하고 신학교에서 신경병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와 함께 귀향조치를 받게 된다. 명목상은 병으로 인한 휴가를 받은 셈이지만 교장도 한스가 돌아오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한스가 삶을 마감하기 까지의 부분 중 담담하게 목을 맬 튼튼한 나무와 밧줄을 준비하는 과정은 완벽하게 짜여진 비극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했다.

마침내 밝고 맑은 영혼의 한 아이가 일그러진 교육과 교회와 어른들에 의해 짓눌려서 삶을 마감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두려움과 호기심과 야릇하고 뭉클한 모든 것이 뒤얽힌 고향으로 돌아와서 무위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생을 정리하는 듯한 회상 장면은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삶의 목표가 있을리 만무한 삶이니 의사의 이러저러한 권유가 먹혀들리 없었다.

더구나 지금같은 가을이었으니, 우울함으로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실적인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야! 너 기계공이 되어 볼래, 그렇지 않으면 서기가 되어보든지?"하며 권한다. 그러던 중 엠마라는 여자 아이를 만나 청춘과 환희의 파도를 경험하지만 엠마는 떠난다.

결국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 위한 수련에 들게 되는데 또래 녀석들에게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 누구보다 마을에서 잘 나가고 기대받던 아이가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이나 뒤늦은 기계공 견습생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며 겪게 되는 일인 것이다. 견습공으로 어울리며 그 또래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으나, 어울린 술자리 끝에 술에 취해 넘어지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한 인간의 삶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재단하려드는 기성세대와 종교, 한스가 죽은 100년 후의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비록 여러 제도는 보완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사고도 변했을까?

'이게 정답이야~~'하면서, 삶을 일정한 틀로 규정하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자기 확신이 강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일정한 틀에 묶어두려는 사람들은 참 불편하다. 나도 또한 '라때는~'이라는 언어를 경계하여 남의 삶을 재단하려 들지 말아야겠다.

 

한스처럼 구속을 싫어했을, 저자 헤세 자신도 42세인 1919년 이후 홀로 외로이 고독자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예로부터의 비판과 창조, 과학과 예술, 이 양자간의 승부 없는 싸움이었다. 그 싸움에서는 항상 전자가 정당했으나 그것은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후자는 끊임없이 신앙과 사랑과 위안과 미와 불멸감의 씨를 뿌려 언제나 좋은 지반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삶은 죽음보다도 강하고 신앙은 의문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 누가 복음 강의는 그의 자유의 즐거운 창공에 나타난 가벼운 구름처럼 생각되었으나, 그는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 헤세의 이 책은 156판에 달하여 그의 어느 작품도 이를 따를 수 없었다. 이는 오직 만인에게 가장 다정스러운 소년 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절실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 항상 자기를 '고독자', '혼자 가는 사람'이라고 일컬은 헤세는 1919년에 독일을 떠나 스위스 남단 아름다운 루가노 호반 몬타뇨라로 옮겨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혼자 사색하고 혼자 창작에 몰두하다가 1962년에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제1차 대전에 임하여 그는, 인간과 생활의 가치를 지키며 그것이 생존할 가치가 있다고 제시하는 것만이 문학자의 사명이라 믿고, 순수한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을 펜과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주장했다. 제 2차대전 기간에도 그의 이러한 평화적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이 사이 10년간에 대작 <유리알 유희>를 완성함으로써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표제는 "아주 지쳐버리지 않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테니까"라고 작품 속에서 신학교장이 한 말로서, 무리한 공부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 그(한스 아버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온갖 뛰어난 힘과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시기와 모든 비범한 것, 자유로운 것, 세련된 것, 정신적인 것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는 본능적인 적의이며, 이와 같은 것도 역시 기 고을 사람들과 공통된 점이었다.

 

-슈바벤의 땅에서는 재주가 있는 아이라 해도 양친이 부자가 아닌 한, 오직 하나의 좁은 길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주의 시험을 치러서 신학교에 들어가고, 다음에는 튀빙겐 대학에 진학하여 거기에서 목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한스가 열 시애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이미 머리와 팔다리가 알맞게 피로하여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졸음이 몰려왔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름날 - 한가로이 목욕하고 고기를 낚고 몽상하면서 지내는 나날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유혹하는 듯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직 하나 일등이 되지 못한 것이 그는 분하고 안타까웠다.

 

- 3년 동안 그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선생들, 목사, 아버지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까지 그를 격려하였고 숨도 쉬지 못하도록 공부를 시켜왔던 것이다. 매년 계속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등이었다. 차츰 그는 자기한테서 수석 자리를 빼앗고 어깨를 겨누는 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게 되었다.

 

- 어린 기벤라트는 아주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거리를 배회하거나 장난치는 일은 자기 스스로 그만 두었다. 학업중에 넋없이 웃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흙장난이나 토끼 기르기, 그렇게 즐겨하던 낚시질까지도 어느 틈엔가 그만 두었다.

 

-수학에서는 가령 답이 모두 맞았다고 해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수학 공부는 평탄한 국도를 걷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매일 전날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하여도 갑자기 넓은 경치가 열리는 산에 올라간다고 하는 일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 아버지들은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감정과 아름다운 희망으로 그들의 가슴은 부풀어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 아들을 금전의 이익과 바꾸어 나라에 팔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때로는 격정적이고 분망하고 난폭하였으나 그것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으며 다시 자기 껍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그가 조용한 관찰자인지 음험한 위선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 루치우스는 대단히 영리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인 모든 소유물에는 상대적인 가치밖에는 없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소년들은 모두가 노력해서 어른다운 기분이 되려고 하였고 선생들이 '당신'이라는 귀에 설은 호칭을 하는 것을 학문적인 엄숙성과 우아한 태도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인정하려 하였다.

 

- 한스는 어머니가 없는 엄격한 소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애착이라는 성질이 위축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표면적으로 열정적인 것에 대하여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소년다운 자부심과 마침내는 가련한 공명심이 보태져 있었다.

 

- 가장 조합되지 않은 결합은 헤르만 하일너와 한스 기벤라트였다. 이들은 경솔한 사람과 조심성 있는 사람, 그리고 시인과 노력가와의 결합이었다. 둘은 가장 영리하고 재주가 뛰어난 소년으로 손꼽혔으나 하일너는 천재라고 하는 반조롱적인 평판을 받고 있는 반면 한스는 모범 소년이라는 명성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은 두 아이에게 그다지 구애되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교우 관계에 바빴고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 한스는 모든 일이 그의 친구들에게는 자기와는 다르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하일너에게는 추상적인 것은 존재 하지 않았다. 그가 마음속에 그려서 공상의 색채로써 그려낼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되지 않은 경우에는 무엇이든지 싫증을 내고 내팽개쳐버렸다. 수학은 그에게 있어 믿을 수 없는 수수께끼를 짊어진 스핑크스였다.

 

-선량한 기벤라트는 그의 친구들에게는 귀여운 노리갯감이라기보다는 집에서 기르는 일종의 고양이에 지나지 않은 존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스 자신도 때때로 그렇게 느꼈다.

 

- 선생들은 이제까지 모범적인 학생이던 기벤라트가 의문의 인간으로 변하고 주위 인물 하일너의 나쁜 감화에 물든 것을 보고 놀랐다.

 

- 학교의 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급에 한사람의 천재를 갖는니보다는 확실성이 보장되는 열 명의 바보를 갖는 것을 좋아한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교사의 임무는 상규를 벗어난 인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를 잘하고 계산에 능하고 성실한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학교에서의 한스는 더욱 나빠졌다. 선생들은 언짢은 얼굴을 하고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게 되었고 교장 역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급생들도 오래전부터 기벤라트가 일등을 포기한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 풍자시가 붙은 다음날 아침에는 입구 전체가 응수와 찬성과 새로운 공격의 경구와 풍자시가 나붙었다. 그러나 그 소동의 장본인은 두번 다시 여기에 가담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불씨를 곡창에 던지는 목적은 이미 달성했기에 그는 기쁨에 잠겨 손을 비비고 있었다. 거의 모든 생도들이 수일 동안 이 풍자시 전쟁에 가담하였다. 누구나가 이행시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걸어다녔다.

 

-하일너의 아버지는 탈주한 하일너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을 때 수도원의 흥분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하일너는 높이 머리를 쳐들고서 천재적인 짧은 여행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그에게 사죄를 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또한 교원 회의의 비밀재판에서도 그는 조금도 겁을 먹거나 공손한 뜻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를 붙들어 놓으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나 그가 지나쳤다. 드디어 그는 퇴교 처분을 당하고, 저녁 나절 아버지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먼 여행을 떠났다. 그의 벗인 기벤라트와는 잠시 악수를 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 없이 이별하였다.

 

- 정열적인 소년 하일너는 후에 더욱 여러 가지로 천재적인 업적과 방황을 거듭한 끝에 인생의 고뇌에 의해서 엄격하게 단련되어 큰 인물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의젓하고 당당한 훌륭한 인간이 되었다. 뒤에 남은 한스는 하일너의 탈주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들의 호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 교장도 이제 그에게서 손을 떼고 마치 바리새인의 위선자가 세리를 보는 것처럼 경멸에 가득 찬 동정을 가지고 옆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기벤라트는 이미 생도의 수에 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나병 환자에 속해 있었다.

 

- 그는 선생들 사이에서 자기의 좋은 평판이 점점 떨어져 내려가 우에서 양으로, 양에서 가로, 드디어는 영으로 내려가는 것을 태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 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는 이해성 있는 인간이라면 감히 쓸 수 없는 격려와 도덕적인 분노의 틀에 박힌 문구를 빠짐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 내용은 애절한 울먹임이 젖어 있었기 대문에 그것이 자식의 마음을 울려 쓰리게 하였던 것이다.

 

- 왜 그에게서 기르는 토끼를 빼앗아 가버렸던가. 왜 라틴어 학교에서 고의로 친구를 멀리 격리 시켜버렸던가. 왜 낚시질을 하거나 빈들빈들 노는 것을 못하게 했던가. 왜 심신을 깎고 닳게 하는 하잘것없는 명예심의 공허하고 저급한 이상을 불어넣어주었던가.

 

- 마침내 그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조용하고 외딴 장소를 발견하였다. 결국 그곳을 그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결정하였다. 언젠가는 여기에 죽어 있는 자신은 발견될 것이라고 상상하며 묘한 기쁨을 의식하였다. 밧줄을 맬 나뭇가지도 정하고 그 강도도 시험하였다.

 

- 나무는 그 머리를 잘라버리면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움이 돋아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창 꽃이 필 무렵 병이 들어 파멸해버린 영혼도 그 당초와 꿈 많은 어린 날의 봄 같은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 흔히 있다. 마치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 이을 것만 같이 뿌리에서 나온 새싹은 급속히 무럭무럭 뻗어나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외관에 지나지 앟고 그것이 다시 나무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 지금 소년 한스의 생각과 꿈은 이미 오랫동안 동떨어져 있던 이 세계 속에서 움직였다. 커다란 환멸과 절망으로부터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행복한 시절로 다시 도망쳐 돌아온 것이다. 그 무렵에는 그도 많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고, 매우 커다란 마술의 숲과도 같은 세계가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 온갖 것은 이상스럽게 변하여 그의 마음을 끌었다. 찌꺼기로 살이 찐 가을 참새들은 소란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었으나 하늘이 이토록 높고 아름답고 그립게 그렇게도 푸르렀던 적은 이제껏 한번도 없었다. 냇물이 이처럼 깨끗한 청록색으로 웃는 거울을 갖고 있던 예도 없었다. 둑이 이렇게 눈부시도록 하얗게 거품이 일던 적도 없었다. 어느 것이나 모두가 깨끗한, 방금 그린 그림처럼 환하게 비치는 새로운 유리판 뒤에 서 있는 듯이 보였다. 모든 것이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가슴속에도 신기하게 대담한 감정과 이상하고 황홀한 희망이 가슴을 조이는 듯이 강렬하고 불안하게 그러나 달콤하게 파도 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것은 꿈에 지나지 않고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의아스러운 불안이 따르고 있었다.

 

- 한스야! 너 기계공이 되어 볼래, 그렇지 않으면 서기가 되어보든지?

 

- 수개월 이래 멀리하고 있던 매일매일의 활발하고 생기 있는 생활이 뜻밖에도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유혹하는 듯한 얼굴과 위협하는 듯한 얼굴을 갖고 무엇인가를 약속하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기계공도 서기도 되고 싶지 않았다.

 

- 그는 뱃사공이 급류를 향하는 기분으로 만나자는 장소로 달음질 쳤다.

 

- 그토록 애썼던 공부도 고생도 땀도, 그토록 몸을 바쳤던 자질구레한 기쁨도 자랑도 공명심도, 희망에 날뛰던 몽상도 그 모든 것이 이제 허사가 되었다. 결국 그는 모든 친구들보다 뒤떨어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소를 받으며 이제 겨우 맨 꼴지의 견습공이 되어 일터로 들어가게 된 결말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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