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같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같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도 있다.
전체주의자들은 같다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반면에 세상을 입체적으로보고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인간을 개별자로 판단하더라도 지향하는 방향이 평면적이라면, 360도로 향한 360가지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사람이라면 입체적으로 생각해서 평면의 360도 뿐 아니라, 지면에서 기울어진 정도까지 고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점에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과의사는 더더욱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해서 10가지, 100가지, 1000가지 정도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 다른 존재로 파악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정신과 책을 다 버리고 인문, 소설책으로 채워넣었다는 것은 마치 바둑에서 '정석을 알고는 잊어버려라'는 격언과 일맥 상통한다고 여겨졌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자신의 자각과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다.
정신과 의사는 다른 의사와는 전혀 다른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보기로,
슬픔이 닥쳤을 때 어떤 이는 바로 슬픈 감정을 표출하고 울음을 터트리지만, 어떤 사람은 며칠동안 울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울음이 터져나와 몇 시간동안 우는 경우도 있단다. 이때 울음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이코 패스인가? 왜 이 순간 전혀 슬프지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거야? 내가 비정상인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린 가끔 메뉴얼대로만 하면 된다고 여기지만 직접 마주친 현장에선 그게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공부, 그중에서 사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를 잃고 제 정신이 아닌 엄마가 "제가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아니, 아이의 생사도 모르는데 미치지 않는 부모가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하는 말에 "그렇죠? 내가 미친게 아닌거죠?" 하며 당사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 미치다시피한 사람들에게 수백가지의 상담 질문지가 무슨 소용있었으랴.
이렇게 힘든 사람들을 돕는 시민운동가들, 자원종사자들,종교인들 이들도, 사람인지라 아플 때가 있을때 이들을 잠시 떨어져 자신을 추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저자 자신도 개인적인 시간을 언제든지 놓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부터 확보하고 그걸 일순위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숙소에 정수기도 들여놓고, 전동칫솔도 놓고 하는 것들말이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한 사람의 삶과 사회적인 연대를 하는 공익적 삶 사이의 갈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건강한 갈등이라고 하는 말에도 충분히 공감이 갔다.
내 자신을 먼저 돌보아서 내가 건강해야 남도 돌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공익적 삶으로만 살아간다면 그 공익적 삶은 길지 않을테니..
< 정혜신 / 창비>
- 저 자신이 정신과 전문의로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최근 십년 동안 진료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부에대해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유가 절박하게 필요한 순간, 참혹한 고통의 현장에서는 막상 전문가와 그들의 자격증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순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죠. 보통 때는 잘 들던 의사의 메스가 사람이 쓰러져가는 순간마다 제대로 들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을 치료의 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내가 해온 공부에 근본적으로 결여된 것이,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는 건 아닐까요?
- '내가 엄만데, 내 자식 생사도 모르는데 나 편하자고 상담을 받아?' 스스로 용납이 안도는 거예요. 그래서 팽목항에 있던 수많은 심리상담부스들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죠.
- 상담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 자기 고통에 집중하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갖는 깊고 집요한 감정은 다름아닌 죄의식입니다. 내가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힘있는 부모였더라면, 내가 안산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 당시 유가족들, 생존 학생들은 집중력이 오분 이상 지속되기가 어려운 상태였어요. 수백개의 상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은 설문지를 들이밀었다.
- 당시 유가족들은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안전사고를 당하거나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집중을 못하고 딴 생각을 하다가 변을 당한 거죠.
-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뭔지 아시나요?"선생님, 제가 미친년 아닌가요?"라는 말이에요.
-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인간에게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 한 마을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 250명을 한꺼번에 잃었어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부모들이 그곳에 살고 있어요. 그 부모들을 품는 공간이 마을 안에 있는 마을회관 같은 곳이면 더 낫지 않겠어요? 사람에 형식을 맞춰야지 형식에 사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겨난 곳이 '치유공간 이웃'
- "선생님 고마워요. 뜨개질이 없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어요." 그러더라고요. 이분에게 뜨개질 선생님은 탁월한 치유자이셨던 거예요. 예상하고 의도한 바가 아니라도요.
- 세월호 희생학생의 오빠가 죽을 만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 아이가 전철을 타고 가던 중에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학생을 봤대요.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다 잊은 건 아니구나.'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그때부터 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 한 사회의 품격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진짜 공부가 하고 싶다면 너무 고생스럽게 학위를 따는 건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의미없다는게 아니고 자격증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를 봐왔습니다.
- 어려움을 겪은 주위 사람을 돕는 것을 특수 전문가에게만 맡기는 것은 과도한 '일상의 외주화'가 아닐까요?
- 학위나 자격증이 주는 안정감에 끌려서 시작하는 공부는 외형으로서의 공부입니다. 그런 공부에 몰두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품이 잔뜩 낀 전문가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영화를 보여주는데 한 집단은 영화를 끝까지 다 보여주고 다른 한 집단은 결말 부분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수개월 뒤에 이 두 집단에게 그때봤던 영화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본 집단은 처음부터 다 보았기 때문에 완성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은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결말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어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많은 분들이 저를 우리 사회 현안이나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 보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사회정치적 이슈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그 맥락 속데 던져진 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복잡하고 뜨거운 마음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지금은 한 개인을 구하는 일이 가장 공익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 아무리 탁월하고 근본적인 이론이라 해도 어느 한 학자의 개념과 틀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틀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얼마나 많고 깊은데요. 사람을 깊이 접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 한 분야를 좁고 깊게 아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 진짜 전문가라고 보는 시각, 이런 이상화가 심해지면 우리 삶, 우리 일상이 대우받지 못합니다. 우리 일상은 비전문적 분야. 덜 중요한 분야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미적분을 푸는 재능은 필요하지 않지만 배려하고 사랑하고 돕고 서로 협력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내 삶이 힘들 때 상담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세부적 분야의 고도의 전문가를 우러르기 전에 정상적인 허기처럼 찾아오는 내 삶의 문제들을 병이나 질환으로 인식하고 전문가에게 맡겨버리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일상의 주도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실의 시대 (0) | 2020.09.11 |
---|---|
당신이 옳다 (0) | 2020.08.06 |
당신으로 충분하다 (0) | 2020.06.25 |
아무도 하지 못한 말 (0) | 2020.06.07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0) | 202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