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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그들만이 사는 세상

#1

오래전 한 방송사에서 초등학교에 아이들 인터뷰를 하러 나왔다.

목적은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보다 많아서 여자 짝이 없는 아이들의 불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취재차 나온 것이다. 그리고 남녀 성비가 맞지를 않아 생기는 문제에 대한 보도용이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의도한 바와는 아이들의 반응은 달라서 인터뷰 나온 이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남자가 많아서 남자 와 짝이 된 남자 아이에게

"여자 짝이 아니어서 재미가 없어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 짝이었으면 좋겠어요"....등등

 

뭐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여자 짝이 아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가하면,

여자가 짝인 남자 아이들 중에는

"저도 여자 짝이 싫고 남자 친구와 짝하고 싶어요."

이런 대답이 더 많았던 것이었다.

 

여자 친구가 꼬집고 때려서 싫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방영이 안되고 방송국 의도에 맞게 편집되어 나갔다.

보여주려는 것만 보여준 것이다.

 

#2

얼마전 <삼시세끼>란 프로에서 이서진이 '에이~저 지미집 치워~' 하는 말이 나왔다.

지미집이란 크레인 같은 끝에 카메라를 달아 멀리서도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한 촬영도구이다.

방송국 사람들이나 출연 연예인들은 항상 카메라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익숙한 도구이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당시에 그 카메라를 시청자들도 볼 수 있게 비춰주어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저게 무슨 소리야? 했을 것이다. 이처럼 출연자를 비롯한 방송 당사자들과 시청자들이 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3

오래전에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 잘 만든 드라마라고 방송 관계자들은 극찬을 했지만 시청률은 한자릿수로 형편없었다.

방송국과 관계되는 사람들만 박수를 친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인기있는 배우, 잘 나가는 작가의 작품인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그것이 방송국 내부에 관한 내용이라 방송 관계자들은 잘 아는 내용이지만 일반 시청자들에겐 낯선 용어, 낯선 환경이었던 것이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국 사람들도 심사숙고하고 머리를 맞대 기획한 것임에도 예상 못했던 것이다.

자기들의 시선으로만 본, 그들만의 언어로 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4 그리하여....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이 되었고, 방송도 보여주고 싶은 것만 내보내는 것은 아닌지.

또 언론은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또 어느 것은 전혀 모르리라 예상하고, 어느 것은 다 알리라 착각하는......자기들만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치부하고 재단해 버린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들끼리만 사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서로 주장하는 바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환호하고 다른 주장하는 자들은 적들이 된다.

여당은 여당만이 사는 세상, 야당은 야당만이 사는 세상, 갑들은 갑들만이 사는 세상, 을들은 을들만이 사는 세상,

누구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고 어중간한 회색지대, 중간지대 또한 존재하기 어렵다.

 

자기 주장을 다룬 유튜브들도 배설물의 공간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강요조로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하고,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내 이야기에 환호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게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극단으로 치닫다가 이카루스의 추락처럼 추락할 무렵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걸 철썩같이 믿는지 추락하면서도 배설은 멈추지 않는다. 종종 나도 그런 면에 일조하는 건 아닌지......

선과 악, 피아를 구분하기 힘든 혼돈의 시대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처럼 혼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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