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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그물을 드리우고 책을 읽다보니

김난도 교수의 글에서는 건져올리는 것들이 꽤 많다.

 

학교 교수라 젊은 학생들과 접할 기회가 많으니 서로서로 이해의 폭이 넓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작가 자신도 아들로 부터 '아빠 궁상 떨지마세요~'라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는 꼰데 취급을 받는 듯해서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존하며 산다는 것이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게 충고란 무의미한건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성세대인 우리에게 의견을 묻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난도 교수의 전작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젊은이들이 새롭게 기운을 내기도 했지만,

그 책으로 인해 비난을 받았을땐 같은 기성 세대로선 맘이 아팠는데 작가는 오죽했을까.

 

그런 시련을 견뎌서 그런지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이 책은

작가가 우리 함께 이렇게 해보자는 의미로 읽혀지는 청유형의 느낌을 받게 진솔하고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쓴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잘 모르는 독자인, 너희들은 (또는 학생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해~~'하는 식의 강압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아 읽기에 편안했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 김난도 / 오우아 >

 

- 이 책은 내가 웅크리고 있던 시간 동안 연기처럼 자꾸만 갈라지고 흩어지는 삶을 붙들어 내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화를, 우울을, 절망을 달래고 다스리고 이겨내며 사는 것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나만의 꿈을 모색하고 있는 한, 비로한 일상마저 위대한 꿈의 일부임을 잊지 말라. 지금은 자신을 유배시킨 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여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시기에는 지금 침낭 속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꿈꾸기를 중단하지 않고 있으며, 그를 위해 나름의 모색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순간 그대의 가장 큰 적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의 불안이다.

 

- 인생에는 잘 포장된 탄탄대로와 같은 '정답의 길'하나와 그 길을 가지 못한 루저들이 주변을 돌아서 가야하는 여러 개의 샛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저마다의 빛과 그늘을 함께 지니고 있는 사람 수만큼의 오솔길들로 이뤄져 있다.

 

- 나침반이 없던 시절, 뱃사람들은 북극성을 향해 돛을 매달았다. 북극성까지 가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북극성만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잠시 웅크린 채 표류하고 있을지라도 북극성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괜찮다. 서툴더라도 네 방식대로 살아라.

모자라더라도 네 자신이 되어라.

막막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너만의 북극성을 꿈 꾸는 한, 지금 네가 서 있는 바로 거기가 정답이니까,

바로 그 자리가 세상의 한가운데니까.

 

- "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폭풍이 지나갔을 때에만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내 죽음을 애도하거나 아쉬워하지 말라. 나는 여기서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

미국의 어느 흑인 하녀의 묘비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때로 죽음만이 안식으로 느껴지는 좌절의 시간이 있다.

 

-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당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지만, 결국 아무데도 데려다 주지 못한다.

 

- 대한민국은 '정답 사회'다. 누가 법으로 정한것도 아닌데 , '삶의 정답'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돈다.

복수정답이 나오면 안된다. 그러고는 그 답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 인생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 나라에서는 다른 것을 틀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적 강요가 오랜 기간 지속되다보니 사람들이 그 정체불명의 정답을 내면화함으로써 정작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면 몹시 주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기만의 고집대로 살아가기는 쉽지않고, 남의 시선이 내주관을 압도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일단 다들 하라는 대로 할밖에.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 인생에 정답이 단 하나인가?

아니, 그 정답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 우리 사회가 만들어준 정답을 따라야만 하는가?

 

- 어떤 실험에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많은 그룹을 두 그룹으로 나눈뒤,

한 그룹은 그냥 시험을 치르고 다른 한 그룹은 시험 전에 자신의 걱정에 대해 간략히 글을 쓰게 했다.

시험을 치른 결과 사전에 글을 쓴 그룹이 성적이 더 좋았다고 한다.

걱정을 덜고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쓰기에는 어느 정도 걱정을 지우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절대적인' 고통과 맞닥뜨렸을 때는 이런 방법들이 전혀 듣지 않는다.

한번은 너무 괴로워서 결국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몇 달 동안 진료를 받은 적도 있다.

다양한 약들을 처방받아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다.

당황한 의사가 그 약들을 월드컵 리그전 벌이듯 짝을 지어 두 개씩 먹어보라고 권했는데, 그마저도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나를 괴롭히던 상황이 해결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몸은 씻은 듯이 나았다.

몸도 중요하지만 역시 마음의 문제는 마음이 다스려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 행복은 내내 땀범벅으로 등반하다가, 산정상에 올라섰을 때 우리 뺨을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인생에서 행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진정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찰나이다.

행복의 감정은 왜 이렇게도 짧은가?

진화심리학자들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행복했던 기억만 오래 간직한 채 나른하게 지내기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을 유지하며 각성한 상태로 있는 것이 위험한 포식자들 틈에서 살아남는 데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호르몬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행복감은 주로 도파민이 분비될 때 느낄 수 있는데 이 도파민은 '새로운'쾌감에 반응하는 것이어서 익숙해지면 행복감을 계속 느끼기 어렵다.

또 어떤 실험에 의하면 사람은 동일한 금액이라도 이익보다 손실을 약 2.5배 크게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행복보다 고통을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런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늘 행복ㅇ한 상태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행복의 대구를 이루는 상대어는 불행이 아니라 일상이다.

지금 이순간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 힌두교나 불교에서 궁극의 열반은 "지극히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역설적이지만 우리를 진정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경쟁적으로 행복해지려는 투지와 노력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행복에의 초월'인지도 모른다.

 

- 전 세계의 모든 걸출한 무용수들을 길러낸, 세계 최고이 스승이 있다.

누구인지 아는가? 거울이다. 긴 삶의 과정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최선의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다양한 '나'를 지휘할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나를 지켜보는 나'다.

그러므로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거울에 비춰보듯 냉철하게 직시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관객인 연극이니까.

 

- 꿈을 향해 매진하는 청춘의 확신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절대 변하지 않는 확고한 꿈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갈수록 자신의 경험이 변하고 사회도 변하니 꿈도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어릴 때의 꿈을 고수하는 것은 자칫 스스로에게 날개가 아니라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생은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도, 종이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려 자신도 모르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굽이굽이 이어진 등산로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는 것과 같다. 한 계단 한계단 오를 때마다 높이가 바뀌고 아래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나타나며 돌아나가는 계단 말이다. 아득하고 막막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달했는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면서 내가 조금 더 성장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 광이불요 : 빛나되 남을 눈부시게 하지 말것

 

- 윤형방황 : 바퀴처럼 원형으로 방황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눈을 가리고 걸으며 20미터마다 4미터 가량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한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걸으면 큰 원을 그리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맹목적으로 걷다보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윤형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 겸손한 자신감.....

 

- '우리 젊을 때는 훨씬 더 험한 일도 많이 했으니 취직 못한 젊은이들은 눈높이를 낮춰라'는 말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청년의 문제를 바라보려고 하니 정부나 기업에서 내놓는 청년정책 역시 허점 투성이인 것이다.

 

- 갈수록 자녀와 부모가 친밀한 관계를 맺기 힘들어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유독 자녀를 소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여전히 모든 영역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판단을 강요하러 들기 때문에 두 세대 간의 교집합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청년의 삶은 청년의 눈으로 헤아려야 한다는 자명한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내 과거의 젊음으로 현재의 젊음을 재단할 수는 없다.

 

- 우리 삶에서 필연인 권태는 중년에게 더욱 무겁다.

권태는 삶의 생기가 조금씩 사그라지는 틈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감기처럼 찾아온다.

 

- 우리는 '심심해 죽겠는' 상황속에서 비로소 내 자신으 깊은 곳으로 침잠할 수 있다.

그 지루한 침잠에서 '나를 나답게'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다운 일이란 대부분 말초적인 재미를 주는 것들에 밀려나기 십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심심함의 파도에 쓸려나기지 않도록 당당해져야 한다. 이를테면, '심심할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작가나 예술가는 사람을 되도록 적게 만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타인의 비판에 민감하다.

하지만 정치인은 사람을 되도록 많이 만나고 뭐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으며 사람들의 격한 비판이 무반응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황금수갑'이라는 말이 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정량 분석에 탁월한 인재들은 금융 회계 컨설팅 업계에서 높은 보수를 받으며 일을 시작하는데, 막상 매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 자체는 매우 따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소비 수준에 길들여진 탓에 그 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그만 둘 수 없게 될 때, '황금수갑'을 찼다고 표현한단다. 물론 이러한 딜레마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래도 넉넉한 보수나 타인의 인정만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일의 영역이 있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일을 대하는 생각 차이는 하루를 채우는 활동의 내용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생" 하는 것이다.

 

- 내가 스스로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이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내가 진정으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일을 계속하는 것.

설령 그것이 아무리 고독하고 소모적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그뿐이다. 오늘도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백지를 메운다.

 

- 지나치게 만족 지향적인 삶은 공허하고 자칫 무기력함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성취지향적으로만 산다면 인생은 정말이지 각박해질 것이다. 두 삶의 방식에 있어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 젊을수록 성취에, 나이들수록 만족에 집중하는 성향이 필요한데, 지금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보이는 것 같다. 나이든 사람들이 여전히 성취지향적이고, 젊은이들은 너무 일찍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 치열하게 노력하면서도 적당한 지점에서 만족을 아는 중용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우리의 성취욕구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이고 반족은 브레이크다.

엘셀러레이터 없는 차는 움직이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차는 폭주한다.

결국 우리 인생의 여정은 성취와 만족이라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완성된다.

 

-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 아인슈타인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가 서로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는 대화법을 사용한다면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

 

- 절대 실수하지 말라고 그랬니 안그랬니?

정신 똑바로 안차리니까 그모양이지

꼭 한 개씩 틀리잖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근데 너 왜 울어? * 진현정, <백 점 맞기> 중에서

 

- 불행은 자기 자신의 모습 그 이상을 스스로에게 혹은 남에게 '보여주고자' 할 때 시작된다.

자기 이상이 '되기' 위한 노력과 자기 이상을 '보여주기'위한 노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겸손을 부르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은 불안을 부른다.

언제 민낯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불안.

 

- SNS를 통해 인정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허기진 오후 정크푸드로 배를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인공감미료가 잔뜩 들어가 한 번 먹으면 자꾸 손이 가는 이 음식은 높은 열량에 비해 영양가는 별로 없다.

소파에 누워 중독적으로 집어 먹는 감자칩처럼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욕구를 충족 시켜주는 SNS의 인정들은 쉽게 얻어지고 쉽게 소멸된다.

그래서일까 SNS는 시간(S) 낭비(N) 시스템(S)이라는 농담도 있다.

 

- 타인의 삶이 근사해보이는 착시는 소셜미디어 때문에 좀더 확대된 측면이 있다.

SNS는 인생 전체가 아닌 선택된 한 장면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즈는 분석했다.

코넬 대학 상담 소장은 "소셜미디어가 학생들로 하여금 '다른 친구들은 큰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지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주요원인"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와 현실은 대조적일 수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삶은 마냥 멋져 보인다는 것이다.

 

- 제주시의 맛집을 알려줄 온라인 속 친구는 1만명이 넘는데, 현실에서 어깨를 내어주며 당신의 고민을 밤새 들어줄 이가 한 명도 없다면 그 '좋아요'의 의미는 얼마나 무색한 것인가.

 

- 왜 나는 정작 급하고 중요한 일을 코 앞에 두고 엉뚱한 짓을 하는 걸까?

도망갔던 것이다.

덜 중요한 무언가에 몰두한 사이에는 적어도 '정말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다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 공부열심히 하라는 말도 지겹고 또 지겨운 클리셰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하고 다닌다.

학생은 물론, 인생학교에서 평생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부'는 계속해야 할 숙제이므로.

"공부 열심히 해라. 그대가 몇 살이든, 무엇을 꿈꾸든"

 

- 전자매체의 활자들은 읽는 이들을 들뜨게 한다.

언제든지 다른 주제로 달아날 마음을 먹게 한다. 한지만 종이책을 읽는 이를 집중하게 한다.

 

- 청소년용으로 각색된 고전들은 치밀한 묘사, 성적인 부분, 청소년이 이해하기 어려운 갈들 등을 제거하거나 완화시켜 버린다. 고전의 핵심을 거기에 있는데, 그걸 빼고 읽으라는 것은 짜장없이 짜장면을 먹으라는 것과 같다.

 

- 일찍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백의 시간'을 만들어주자. 심심한 시간은 중요한 시간이다.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딱 한가지만 욕심내야 한다면,

나는 좋은 성적보다 독서습관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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