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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책꽂이를 정리하며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책이다.

이 책도 우리집에 있었나? 아마도 딸아이가 사서 읽고 두고 간 책일 것이다. 

처음엔 리더라고 해서 선도나 조직의 리더를 뜻하는 leader라고 생각했는데, 부제가 책 읽어주는 사람이고 작은 글씨로 Reader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야기는 남자 주인공 미하엘의 회상으로 진행되었다.

열다섯 살 가을, 미하엘은 간염에 걸려 학교를 쉬고 있었다. 어느날 외출했다가 그만 구토를 하고 우연히 그 모습을 한나가 보고 닦아준다.

그렇게 처음 한나를 만났다.

 

예민하고 신비스럽고 미하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서른 여섯 살 한나는 미하엘의 첫사랑이 된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두 사람이 만나면 메뉴얼처럼 하는 일과이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그들의 의식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어느날 아침 미하엘이 일어나 아침 준비 때문에 잠깐 외출하고 오겠다는 쪽지를 써놓고 나갔다 돌아오니 한나가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지 미하엘도, 책을 읽는 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나중에서야 충격적인 사실. 한나가 글을 읽고 쓸 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글을 모른다는 수치심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나중에 그녀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말게 한다.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이었던 것이다.

 

그 수치심은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전차 회사에서 도망을 치게 만들었다.

차장으로 일할 때 감출 수 있었던 약점이 운전사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중에 TV에서 오래전 영화인 닥터 지바고를 하고 있어, 잠시 다시 보았다.

옆에선 명화이지만 불륜영화 아니야? 하며 조금은 폄하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지. 불륜이고 말고, 오래 전에 보아서 내용이야 짐작을 하지만, 장면 장면 기억에서 잊혀진 장면을 보면서 아하? 저런 장면이 있었지? 하면서 보았다.

 

같은 불륜 소설이라면 불륜 소설인 더 리더로 다시 돌아오면, 미하엘과 한나 와의 관계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하엘은 나이가 들면서 또래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을 즐기게 되고 어쩌면 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한때의 일탈이요 불장난인 것으로 말이다.

 

어느 날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미하엘은 더 이상 한나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미하엘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세월이 흘러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재판정을 실습하러 간곳에서 얄굿은 운명처럼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된다.

나치의 부역자로 재판을 받는 모습에서 미하엘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쓴 수기에서

무자비한 성실성을 보인 것으로 묘사된 한 여자 감시원이 한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더구나 미하엘이 한나에게 붙였던 이라는 별명이 책 속에서도 여자 감시원의 별명을 암말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나오니 말이다.

 

재판정에서 한나가 진술하면 할수록 그녀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

마침내 보고서 작성의 당사자로 지목당한 한나에게 필적 감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한나는 그 자신,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그럴 필요 없다면서 자신이 썼다고 거짓 자백을 하기에 이른다.

얼마나 그 수치심이 큰 것인가 말이다.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 있듯,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이라 생각되었다.

 

그녀의 국선변호인도 그녀에게 별반 도움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재판장에게 이렇게 까지 말을 하기에 이른다.

재판장님~ 당신 같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읽는 내내 단지 수치심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믿기지 않아 한나의 진심이 궁금해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미하엘도 자신이 한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읽는 중간,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 한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형 집행인들은 사형수들에게 어떤 적의나 복수심이 있던 게 아닌, 그들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미하엘이 궁금하듯, 책을 읽는 나도 궁금했다.

미하엘은 한나에게 이용만 당한, 책읽어주는 어린 남자였던가?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용한 나이어린 잠자리 상대였나?

미하엘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그녀는 마하엘을 가스실로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

 

한나는 결국 종신형을 언도 받기에 이른다.

 

한나와의 관계가 앞으로 있을 미하엘의 결혼 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했는데, 결국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미하엘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이혼을 하게 된다.

한나와의 있었던 것들이 그들 결혼 생활에 장애가 된 것이었다. 한나가 떠나갔지만 한나로부터 벗어나진 못했던 것이다.

 

미하엘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 테이프에 녹음을 한 것을 꾸준히 보낸다.

그 사이 글자를 배운 한나는 아주 짧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때 미하엘이 글을 알게 된 한나에게 답장을 보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하엘은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는 여전히 보냈지만 편지를 쓰지 않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연고가 없는 한나가 가석방을 앞두게 되고 한나를 위해 교도소장은 마하엘에게 몇 가지 의뢰를 하며 만나기를 청한다.

과연 한나와 미하엘은 만나서 어떤 감정이고 어떤 행동을 보이고, 어떤 대화가 오갈지 무척 궁금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교도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서, 남자와 여자, 전쟁세대와 전후 세대, 등 우리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차이가 드러난다.

왜 그랬어요? 하는 남자의 물음에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하고 되묻는 여자의 답변에서

한나에게 있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남자인 미하엘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한 묶음으로 묶어 떠나보내려는 마음이 내비쳐졌다. 

한나의 출소를 돕기 위해 그가 거처할 집을 알아보는등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며 보내는 미하엘. 하지만 한나는 출소 전날 목을 매고 만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라는 물음 속에 한나가 느낀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던 것이라 여겨졌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어제 '미성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면서,

거기서 여자는 남들이 보기에 불륜이라는 사랑에도 모든 걸 걸지만, 남자는 들통나면 도망치기에 전전긍긍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


더 리더,

이 책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 전후 세대와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와의 차이, 등의 생각과 갈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전반부의 다소 통속적 3류 소설처럼 느껴졌다면 후반부에는 그런 갈등이 잘 드러난 심리 소설의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고나서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영국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한나 역을 맡았다. 바로 타이타닉에서 레어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상대역인 그 여자였다.

타이타닉을 볼때, 디카프리오에 비해 나이들고 미모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했던 배우였는데, 한나역으로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더 리더에서 그녀는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단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린크 / 김재혁옮김/이레>

 

## < 밑줄 긋기> ##

 

 

- 기나긴 밤 시간 내내 환자와 함께 있어주는 것은 교회 시계탑의 종소리와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부르릉 소리,

사방의 벽과 지붕을 더듬으며 반사되는 전조등 불빛뿐이다. 이때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동경, 회상, 불안,욕망 등이 미로를 만들어 놓는다. 환자는그 미로에서 끊임없이 길을 잃고 또다시 찾았다가 또다시 잃곤 한다.

이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할 것 없이.

 

-그후 나는 그녀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한나와 나 사이의 비밀을 세상에 알렸거나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침묵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면 부인을 하는 건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심사숙고하는 건지, 난처함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건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본인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부인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도태를 앗아가버린다.

 

- 나는 내가 그녀를 배반하고 부정했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서 떠나버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단지 전차 회사에서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봐 두려워 도망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나를 따라다니기를 멈추었다.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처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 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 어디엔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 나는 고등학교의 마지막 몇 해와 대학의 처음 몇 해를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별로 없다. 그 시절은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대학입학자격시험도 엉겁결에 선택한 법학 공부도 힘들지 않았고, 친구를 사귀는 일도 연애를 하는 일도 그리고 헤어지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 어느것도 힘들게 없었다. 모든 것은 쉬웠고 모든 것은 가벼웠다. 어쩌면 그 때문에 기억의 보통이가 그렇게 조그만지도 모르겠다.

 

-한나는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달리 말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다만 그 내용을 좀 더 잘 말하고, 좀 더 잘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애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상황은 점점 불리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에 다시 재판장을 향해 물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그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보다는 차라리 나를 놀라게 하는 쪽을 택했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가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한나의 수치심이 법정과 수용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범죄자임을 자백한다고?

 

-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한테 방해되거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하려고 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그에게는 그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그들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

 

- 나는 그녀가 글 읽는 법을 배워 내게 편지까지 썼을 때 정말로 감탄했고 또 기뻐했었다.

하지만 나의 감탄과 기쁨은 한나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바쳐야 했을 그 엄청난 희생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그녀가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을 알고도 그녀에게 답장을 쓰거나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로 보아

나의 감탄과 기쁨은 얼마나 궁색했던가 하는 사실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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