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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작가 자신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대목이 흥미를 끈다.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밝혀서 다른 사람처럼 끈기있게 소설을 써온 사람이 아니고 어느날 야구장에서 한선수가 2루타를 친 날 마치 하늘에서 어떤 기운이 자신에게 내리 덮친것이다. 그것은 부모 모두 국어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글에 관한한 타고난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기운을 그대로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이었기에 가능한, 그 그릇은 타고난 것.

 

정식으로 문학수업을 받고 치열하게 쓰면서 작가의 꿈을 꾸다 마침내 이루었다. 뭐....이런 작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 아등바등 살다가 어느날 우연히 처음 쓴 작품이 수상을 하면서 작가가 된 것이라서 그런지, 주류와는 먼  생각으로 살고 있는 하루키였기에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오리지널에 대한 하루키의 견해를 읽다보니, 유명 작가의 표절 시비가 떠 올라 다시 안타까움이 .......

하루키가 인용한 뇌신경외과의사 올리버색스의 글을 재 인용해보면

"창조성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강고한 아이덴티티와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이 재능에 반영되고 녹아들어 개인적인 몸과 형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이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견해를 타파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면서 마음 속으로 완전한 세계를 수없이 다시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항상 그것을 비판적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창조성에 이해 만들어진 작품들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기 힘들런지는 비틀즈의 경우에도 잘 나타났는데 당시 기성 권력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틀즈의 음악을 불쾌해했고,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은 큰 사회문제로 어른들의 혐오의 대상이었다. 비틀스의 파괴하거나 태우는 시위운동도 각지에서 열성적으로 펼쳐졌다는 건 얼마나 받아들여지기 힘든가 하는 걸 알 수 있다.

 

하루키 자신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는 대목에선 안타까움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당시에 만일 내가 연못에 빠진 할머니를 물에 풍덩 뛰어들어 구했더라도 아마 다들 나쁘게 얘기했을 거라고 -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짜로 - 생각합니다."라는 대목에선 하루키가 받았을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갔다.  하루키가 겪은 문단내의 따돌림은 이른바 주류파 순문학이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는 것에 대한 '문학계' 내부의 불만,울결이라고 쿨하게 이야기 하긴 하지만 그가 입은 상처가 커 일본을 떠나는 계기도 되었지만,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경비는 얼마든지 대줄테니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서 원하는 대로 기행문을 써 달라든가, 프랑스에서 성을 한 채 사들였는데 거기서 일 년쯤 머물면서 느긋하게 소설을 써 보겠느냐는 제안(하루키는 정중히 거절했다지만)은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참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어 부러울 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 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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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바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가 대부분은 - 물론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 잘 알려진 사례지만, 1922년에 파리의 어느 디너 파티에서 마르셀 푸르스트와 제임스 조이스가 동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바로 옆자리에 있었는데도 끝까지 거의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봤지만 완전히 허탕을 쳤습니다. 서로 자부심같은 게 강했던 것이겠지요.

 

- 나만해도 소설을 쓰기 위한 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작정도 딱히 없었고 미친듯이 습작을 써본 적도 없이, 어느날 불현듯 생각이 나서<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소설을 썼ㅇ고 그걸로 문예지의 신인상을 탔습니다.

 

-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니다.

 

- 효율성이 떨어지는, 멀리 에둘러 가는 작업은 소설가말고는 달리 없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듭니다.

 

- 1회말, 다카하시가 제 1구를 던지자 힘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ㅇ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자에 울려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지 모른다'라고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중략) 일종의 계시같은 것이었습니다.

 

- 어떤 일이든 전문이 아닌 쪽에 손을 대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단 달가운 얼굴은 하지 않습니다. 백혈구가 체내의 이물질을 배제하려고 하듯이 접근을 거부하려고 듭니다. 

 

-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 내가 문단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선 첫째로 나한테 '작가가 되자'는 작정이 원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극히 보통으로 살았ㅇ고, 그러다 어느 순간 불현듯 생각이 나서 소설을 한 편썼는데 그게 갑작스럽게 신인상을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문단이 어떤 곳인지, 문학상이 어떤 것인지, 그런 기초적인 지식을 거의 한 조각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따로 '본업'이 있어서 아무튼 하루하루 사는게 바쁘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 서점에 갔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아쿠타가와상을 타지 못했는가>라는 식으로 제목을 붙인 책이 있었ㅇ습니다. 어떤 내용의 책인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 창피해서 본인은 도저히 그런 책 못 사지요-그래도 그런 책이 출판된것 자체가 '진짜 신기한 일이구나'라고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독자입니다. 어떤 문학상도 훈장도 호의적인 서평도 내 책을 자기 돈 들려 사주는 독자에 비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은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부탁받은 적이 없지는 않지만, (중략)자신의 창작을 진지하게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 나름의 객관성을 갖고 신인 작가의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머릿속의 스위치를 능숙하게 전환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 문학상에 대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지금까지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고 해왔습니다.

상을 타지 않고는 작품의 내용과는 많은 경우, 기본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제고 그럼녀서도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자극적인 화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던 대로 우연히 문예지에 실린 아쿠타가와상에 대한 그 작은 컬러을 보고, 이제 슬슬 문학상에 대해 낵 생각하는 바를 한번 얘기해둘 적당한 때인지도 모른다. 라고 문득 마음 먹었습니다. 계속 얘기하지 않고 있으면 오해를 살 가능성도 있ㅇ고, 그걸 어느 정도 올바르게 정정해두지 않으면 그 오해가 '견해'로 정착될 우려도 있으니까.

 

- 고흐의 그림이나 피카소의 그림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그림을 보고 혼란에 바지거나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그림을 보고 혼란에 빠지거나 불쾌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은 그들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거나 전향적인 자극을 받거나 치유되기도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에게는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멍크의 음악을 들으면 동시대으 다른 재즈 뮤지션이 연주하는 음악과는 음색도 구조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멜로디 라인의 음악을 독자적인 스타일로 연주합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기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의 음악은 오랜동안 적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온 결과, 서서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텔로니엇 멍크의 음악은 이제 우리 몸속에 있는 음악 인식 시스템의 자명하느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일부가 됐습니다. 말을 바꾸자면 '고전'이 된 것입니다."

 

- 당시에는 아주 눈에 띄게 참신해서 '와아'하고 감탄하지만 어느샌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도 있었어'라고 언뜻 생각나는 것뿐인 존재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마 지속력이나 자기 혁신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됩니다. 여러 개의 샘플을 펼쳐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표혅의 오리지낼리티가 입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쌓아올려 의미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 물론 개중에는 내 작품을 나름대로 좋게 평가해주는 문예 관계자도 있었지만, 그 수도 적고 목소리도 작았습니다. 업계 전체적으로 보면 '예스'보다는 '노'라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만일 내가 연못에 빠진 할머니를 물에 풍덩 뛰어들어 구했더라도 아마 다들 나쁘게 얘기했을 거라고 -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짜로 - 생각합니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탔을 때, 당시 내가 경영하던 가게에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그 정도의 소설로 괜찮다면 나도 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물론 불끈했지만, 동시에 비교적 솔직하게 '그래, 저 녀석 말도 분명 맞는다.

 

- 나는 그 이른바 '숭숭 뚫린' 바람 잘 통하는 심플한 문체에서부터 시작해 시간을 들여 한 작품 한작품 마다 조금씩 내 나름의 살을 붙여 나갔습니다. 구성을 좀 더 입체적 중층적으로 만들고 골격을 조금씩 키워 좀 더 범위가 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채워 넣을 태세를 정비했습니다. 그에 따라 소설의 규모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 글을 쓰는게 즐거웠고 나 자신이 자유롭다는내츄럴한 감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오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고 번역을 하거나 에세이 등을 쓰기도 합니다.

 

-헤밍웨이라는 사람이 소재에서 힘을 얻어 스토리를 써나가는 유형의 작가였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로서의 잠재력은 얼마간 떨어졌고 문장에서도 이전만큼의 선명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자원해서 전쟁에 참가하고 (1,2차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미국에서 사냥이며 낚시를 하고 투우에 빠져드는 생활을 계속했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외적인 자극이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삶의 방식은 하나의 전설이 되기는 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체험이 부여해주는 다이나미즘은 역시 조금씩 저하합니다.

 

- 자칫 오해하시면 곤란한데, 전쟁이나 투우나 사냥같은 경험에 이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물론 의미는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이내믹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설을 쓸 수 있다, 라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말하련ㄴ 것뿐입니다.

 

-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삼십오 년 전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건 소설이 아니다' '이런건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선행하는 세대에게서 엄격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어쩐지 부답스러워서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일본을 떠나 외국의 잡음 없는 조용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소설을 썼습니다. 

 

- 어떤 시대에도 어떤 세대에도 각각 고유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소설가에게는 스토리에 필요한 소재를 꼼꼼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마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만일 인간을 '개적인 인격'과 '고양이적인 인격'으로 분류한다면 나는 거의 완벽하게 고양이적인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경험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보기에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개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그것을 띠어넘어 단체로 졸졸 목적지까지 끌려가는 '양적인 인격'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 '도망칠 곳이 부족한' 사회가 몰고 온 교육 현장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든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아니, 순서대로 말하자면 그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많나 장소를 우선 어딘가에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 책에 관해서 말하자면 학창 시절 나는 아무튼 실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불타는 가마에 삽으로 푹푹 퍼 넣듯이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읽었습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맛보고 소화해나가는 것만으로도 파루하루가 너무 바빠서 그것 이외의 일에 대해 머리를 굴릴 만한 여유는 거의 없는 상태였ㅇ습니다. 나로서는 그게 오히려 좋았는지도 모른다고 이따금 생각합니다. 내 주위의 상황을 둘러보고 그곳에 있는 부자연스러움이나 모순이나 기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정면으로 따지고 들어갔다면 아마 막다른 곳에 내몰려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로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듭니다.

 

-이따금 독자에게서 아주 재미있는 편지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을 읽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이 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책은 꼭 살거에요.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편지입니다. 솔직히 말하겠는데, 나는 이런 독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거깅는 틀림없는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가 술렁술렁 들떠서 입만 벌렸다 하면 돈 얘기입니다. 차분히 자리를 잡고 시간을 들여 장편소설을 쓸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곳에 있다가는 나까지 자칫 망가져버릴 것 같다.- 그런 기분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좀 더 팽팽하게 긴장된 환경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프론티어를 개척하고 싶다. 나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1980년대 후반에 일본을 떠나 외국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 또 한가지 일본을 떠나게 된 데에는 일본 내에서 내 작품과 나 개인에 대한 비난이 상당히 심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간이 결함 있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남들이 어떻게 말하든 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신경쓰지 않으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아직 젊은 나이라서 그런 비판을 들으면 '이건 너무나 공정성이 떨어지는 얘기 아닌가'라고 느끼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사생활 부분까지 파고들어 가족을 포함해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처럼 써내며 개인적인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말까지 할 수 있나, 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다기보다 오히려)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건 지금 돌아보면 동시대 일본 문학 관계자들(작가, 비평가,편집자 등)이 느꼈던 욕구발만의 발산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주류파 순문학이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는 것에 대한 '문학계' 내부의 불만,울결입니다.

 

- 생각해보면 국내 비평계에서 실컷 두들겨 맞은 것이 해외 진출의 계기가 된 셈이니 오히려 욕을 먹은 게 행운이었다고나 할까요. 어떤 세계에서나 똑같지만, '사람망치는 칭찬 세계'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요.

 

- 외국에서 책을 내면서 가장 흐믓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 (독자와 비평가)이 '무라카미의 작품은 어째 됐든 오리지널이다. 다른 어떤 작가의 소설과도 다르다'고 말해준 것입니다. 작품 자체를 높게 평가해준 것이든 아니든 간에 ' 이 사람은 다른 작가와는 작품이 전혀 다르다'라는 의견이 기본적으로 데세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에서 받은 평가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에 그건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오리지널이라는 것, 나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찬사입니다.

 

- 돌아가는 형세를 계산해가며 자기 좋을 대로 확실한 근거도 없이 발언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항상 일정한 수만큼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밖에.

 

-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베스트 셀러 10위 목록의 절반정도가 내 책으로 채워진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흔들림없이 공고할 것으로 보였던 공산당 독재 시스템이 맥없이 무너지고, 거기에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부드러운 카오스'가 넘실넘실 밀려듭니다. 그렇게 가치관이 급격히 교체되는 상황에서 내가 제공한 스토리가 갑작스럽게 새롭고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 길을 돌아다녀도 눈에 띄지 않고 레스토랑에 가면 대체로 지독한 자리로 안내 해준다. 만일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딱히 주목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 지극히 당연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우선 나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일은 거의 없다.

 

- 소설가인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소설가라는 것에 대해서,다시금 계통적으로 사고하고 나름대로 부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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