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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버닝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인데도 몰입감은 높았던 영화 버닝.

소설가이자, 국어 교사이기도 했던 이창동감독 영화.

장관 시절 손수 지프를 운전하고 출근해서 인상적이었던 전직 문화관광부 장관.


영화 '베테랑'에서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번들거리는 머리에 뺀질거리는 도시 이미지가 어울렸던 유아인이

그와 전혀 다른 찌질하고 어리숙한 젊은이를 연기하였다. 

도회적 이미지를 좋아했던 유아인의 팬들 중엔 실망한 사람도 많았을 듯하다.

아마 일부러 그런 유아인을 캐스팅 하지 않았을까?

한데 쥐어박고 싶은 인물 속에서 찌질함을 꺼내보려고.


소설가를 꿈꾸며 알바를 하는 종수(유아인)는 우연히 어릴적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가 판토마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며 고양이를 돌봐 달라고 했는데 막상 고양이는 보지를 못하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일러준다.


하루 한번 짬깐만 햇빛이 들어오는 해미의 방은 별로 앞날이 밝아보이지 않는 두 사람과 닮았고 그리하여 화면 속은 어둡다.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이야기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배가 고픈 리틀 헝거인지. 인생의 의미를 찾지못한 그레이트 헝거인지를 관객에게 묻는 것 같았다.


종수의 엄마는 도망가고 아버지마저 폭력 행위로 구속된 상황에서 아버지가 키우던 송아지를 돌볼 겸 고향으로 간다.

고향집 벽에 나란히 걸린 사진을 통해 아버지가 어떤 인물임을 보여준다.

중동에서, 월남전에서....

그리고 금고 속에 진열된 칼들....그 칼로 나중 벤을 살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집 안에 들어갈 때, 트럭에 올라탈 때도 카메라는 종수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미리 집안에 있거나, 트럭 안에 들어와 있어 관객이 어두운 상황에서 종수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인물이 된 듯 감정이입이 되게 만들었다.


자기집에선 송아지를 돌보고, 해미의 집에 가서 고양이를 먹이를 꺼내 주지만 역시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해미를 공항으로 마중나가려고 낡은 트럭을 몰고 나간 종수. 

그 앞에 낯선 남자 벤(스티브 연)과 함께 온 해미.

그 남자의 포르셰와 대비되는 종수의 낡은 트럭이 보여주는 함께 하기 힘든 이질감.

벤과 종수가 만날 때마다 그 이질감은 계속 이어진다.

종수의 어두운 미래와 찌질함과 대비되는 벤의 부유함과 여유 그리고 냉소적이며 시크한.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하필 내가 싫어하는 곱창이 먹고 싶다니~~ㅎㅎ


" 해질무렵 노을이 지는거야. 나도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아예 없었던것처럼....."

해미의 말에 어쩌면 해미가 불행한 결말을 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에 집중할 때 혼자 하품을 하는 벤의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준다.

한번도 눈물을 흘리고 울어본 적이 없다는 벤은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 패스같다.

이따금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 취미인.....벤.


해미의 행방불명이 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종수는  벤을 뒤쫓는 한편, 

벤이 비닐 하우스를 불태울거라고 예고를 한지라 근처 비닐 하우스를 하나하나 찾아 뛰어다닌다. 

그런 종수를 쫓는 카메라는 불안한 듯 흔들려 보는 나도 함께 불안해 진다.

비닐 하우스에 불이나면 괜히 의심받으면 어쩌려고.....하는 생각에

이때 등장하는 음악, 유럽 거리 공연에서 이따금 본 적이 있는 핸드팬(handpan) 같은 소리가 난다.

몽환적이고, 주술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벤과 같이 부유한 자들은 걸리적 거리는 루저들을 태워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벤은 루저인 종수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잔인하다기보다는 종수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찌질함을 털고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종수 아버지의 재판정에서 의례적으로 책을 읽듯 사무적인 판사와 변호사의 언행들 속에서 종수와 종수 아버지가 루저임을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에서의 계급의 차이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물론 버닝이 기생충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지만......

포르셰를 타고 올라간 벤의 뒤를 쫓으려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는 종수의 이미지는 

기생충에서 계단으로 표현된 계층간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마지막 장면은

해미의 방에서 자판기를 두드리며 소설을 쓰는 종수의 모습을 창 밖에서 잡은 앵글이 서서히 물러나는것으로 끝난다.

그리하여 영화 내용 전체가 종수가 쓴 소설일 수도 있음을.....

이 글이 액자 소설? 액자 영화?




영화 포스터 속의 3인

영화를 보고 나니 세 인물의 표정에서 스토리가 다시 오롯하게 생각났다.



약간의 경멸을 담은 벤의 비웃는듯한 표정



해질무렵, 석양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세 사람의 뒤로 노을이 비추고 있다.

" 해질무렵 노을이 지는거야. 나도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아예 없었던것처럼....." 해미의 이 대사처럼

해미는 행방불명되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은 다음영화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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