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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보아왔던 책이다.

베스트셀로 목록에도 오랫동안 올라 있었서 뒤적거리기도 했던 책이지만 선뜻 읽으려 하지는 않았다.

일단 대화를 위한 책이라니....그것도 얕은 지식이라니....지적 허영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대화를 위한 다이제스트 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문제집이나 책을 사러 책방에 가면, 5급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일반상식이란 책과 비슷한 책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책은 도끼다를 읽고, ‘그래 더 깊은 책을 위한 안내서라 생각하고 읽기로 했다.


읽으면서 너무 중언부언 같은 내용이 반복이 되고 나중에 정리까지 3번을 반복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널려있던 지식들이 줄에 꿰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쉬운 비유를 적절하게 들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서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인 채사장은 백종원과의 대화에서 첫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나니 다음 책을 쓰기가 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백종원이 답하길....그냥 내려놓으면 된다고, 그렇다. 다들 알고 있는 맞는 말이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  밑줄 긋기 ##############################

    

- 현대 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고 절대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이라고 한다.

 

- 시간에 대한 커다란 두 입장이 있다.

시간이 직선적이라는 입장과 시간이 원형적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물론 제 3의 입장도 가능하다. 시간은 순환하는 동시에 앞으로 전진한다는 절충적인 입장이 그것이다 용수철 모양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은 실제로 동양과 서양의 시간관을 형성했다.

직선적 시간관은 서양의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고, 원형적 시간관은 동양의 문화와 중교의 밑바탕이 되었다.

 

- 직선적 시간관은 진보적 역사관을 낳았고, 원형적 시간관은 순환적 역사관을 낳았다.


- 서구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배경은 크게 두가지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그것이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적 사조이고, 반면 헤즈라이즘은 그리스도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흐름이다.

 

-쉽게 비유하면 로마는 일본, 이스라엘은 식민지 조선, 본디오 빌라도는 이토 히루부미 정도 되겠다.

 

- 사실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중세 회화의 영향이 큰데,

중세 회화에서 예수가 북부 유럽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유럽 지역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유대인이 예수보다 바라바를 선택해서 살려주고자 한 것은 어쩌면 적절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바라바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치하는 로마에 저항해서 폭동을 주도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에게 바라바는 독립운동가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정체가 불분명한 예수보다는 현실적으로 민족을 대변하는 바라바가 더 필요했을 것으로 보였다.

 

-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지하 무덤이면서 동굴인 카타콤에서 비밀스럽게 예배를 이어갔다.

 

-로마의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박해의대상이었던 그리스도교를 사실상 로마의 국교로 정립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마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서는 식민지 민족의 종교인 무속신앙을 일본의 국교로 인정한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 영주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상 실질적인 권력은 영주에게 속했다.

그래서 영주들간에는 끊임없이 권력 싸움이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권력을 위해서는 서로의 영토가 필요했고, 게다가 이런 분쟁을 조율해 줄 절대적 권력이 존재하지 못했다.

이렇게 영주들간에 전쟁이 빈번해지자, 영주들은 자신의 장원을 방어하기 위해 높고 단단한 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 시대를 거친 사회는 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에 성이 있는 것은 그들이 중세를 거쳤기 때문이다.

반면 영주들에 의해 지방으로 권력이 분산되지 않고 국왕 중심의 집권적 체제를 유지했던 한반도에는 거대한 성이 없다.

 

- 국왕의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해주었고, 그 대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 견고했던 중세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상업의 발달과 공장의 발생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여 돈을 벌게 된 새로운 권력자가 생겨난 것이다. 부르주아의 뜻 자체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기본의 장원을 소유한 자의 구 권력과 새롭게 생산수단을 소유한 신권력이 충돌하게 되었다.

 

- 부르주아가 왕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왕의 권위를 정당화 해주는 신부터 극복해야 했다.

다시 말해, 신의 역할을 대신해 줄 만한 무엇이가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르주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이성은 신이 독점했던 두가지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다. 우선 이성은 현실의 물음에 답을 준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여기에 왔으며, 다른 생물종들과 다르지 않은 생물학적인 존재다.

우리가 땅에 발 딛고 사는 것은 중력이라는 힘 때문이고, 이는 만유인력 때문인데, 이는 우주 전체의 작동 원리이다.

이렇게 이성은 신을 배제하고도 현실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또한 이성은 사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 세계는 경험적 근거가 없는 비과학적인 태도이고, 종교의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부르주아는 왕을 정당화하는 신을 대신해 자신들을 정당화해주는 이성을 성공적으로 세계에 입성 시켰다.

같은 맥락에서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으로 사회가 자신들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사회계약설을 지지했다.

이는 신의 냄새가 남아 있는 왕권신수설을 대체하는, 신없이 사회를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 구권력과 신권력의 충돌의 대표적인 것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 왕이라는 존재의 지배를 받아왔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갖지 못한 채 인류는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문제라는 것, 따라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표출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인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 등장했다.

왕이 있는 세계에서 자유인이란 왕 혼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 근대 자본주의 시대는 대략 18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200년 정도의 기간이다.

 

-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 자국의 면직물을 인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아편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한 대가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어쨌거나 인도는 영국의 면직물 산업에 종속되면서, 많은 자원과 부를 영국에 빼앗겼다.

면직물로 인해 국가 전체가 영국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영국산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옷을 스스로 제작해서 입자는 운동을 펼쳤다.

우리가 간디 하면 물레를 감고 있는 모습을 떠 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레는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거부이며, 궁극적으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 이처럼 산업화된 국가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시대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한다.

 

- 황태자의 암살보다 독일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뒤늦은 산업화로 인해 독일은 식민지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분이 없던 차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분제를 해소한다.

 

- 대공황 해결 방안

미국 : 뉴딜정책 자본주의 수정

러시아 : 공산주의 자본주의 폐기

독일 : 군국화 자본주의 유지

 

- 히틀러라는 악마가 독일을 전쟁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독일의 민중이 히틀러라는 영웅을 요구한 것이다.

히틀러가 없었다 하더라도 독일인들은 전쟁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냈을 것이다.

 

- 우리는 보통 역사를 영웅사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영웅사관이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재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역사관이 민중사관이다. 민중사관의 입장에서는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

우리가 세계대전을 영웅사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은 히틀러가 된다.

반면 세계대전을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계대전의 원인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의 의지가 딘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은 어느 것은 옳고 다른 것은그르다기보다는, 역사 해석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사 사유의 두 시각이라고 하겠다.

 

- 경제 위기를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얻으려는 국가와 식민지를 지키려는 국가 간의전쟁이 제 2차 세계대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 냉전시대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소련이 해체된 시기까지의 기간이다.

 

-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 스스로가 생산수단을 공유하면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이다.

 

-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두가지다. 생산수단과 공급과징, 이 두 개념이 역사를 움직여왔다.

생산수단과 공급과잉은 공통점이 있다. 두 개념 모두 경제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핵심이 경제인 것이다.

실제로 경제는 하나의 학문 분과라기보다는 사회, 정치, 문화, 역사 등의 다양한 사건들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중심 토대라고 할 수 있다.

 

- 자본주의는 생산수단, 잉여생산물 모두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지만, 잉여생산물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는 공산주의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악마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사회적 소외계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배부르고 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수정자본주의의 등장은 시대,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초기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인간의 얼굴을 한 수정 자본주의는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경직된 노동 시장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불황과 경기침체를가져왔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기 자본주의처럼 정부의 개입이 없어도 문제이고, 수정 자본주의처럼 정부의 개입이 있어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초가 되면 정부 개입의 상징인 소련이 붕괴한다.

공산주의는 국가에 의한계획경제라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주장하는 체제다.

이러한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고, 동시에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차라리 정부의 개입이 없었던 초기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며 초기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다.

 

-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는 신들이 정당하게 모은 재산을 강탈하고 자신들을 없애려는 악마처럼 보였다.

자본가들은 구가가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주길 기대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갈등을 선과 악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형성해갔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소호하는 선이고, 반대로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악이라고 국민들을 교육하고 설득했다.

이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가기 위해 신을 요청했던 것곽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 공산주의의 붕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인간 본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두 번째는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가지는 문제점이다.

세 번째 원인은 정부 주도 계획 경제의 실패에 있다.

복잡하고 예민한 시장의 상황을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초래한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자본주의의 방해를 들 수 있다.

 

- 사회주의가 조금 더 온건한 방식으로 시회를 개혁하려 한다면,

공산주의는 더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회혁명을 꿈꾼다는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면 되겠다.

 

- 한국 사회에서 사회 민주주의는 낯설다.

북유럽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가 선택하고 있는 체제인데도 말이다.

어쩐 일인지 한국인들에게 경제 체제는 두 가지 밖에 없어 보인다.

양극단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라 할 때 그것이 암묵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고,

공산주의라 할 때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북한의 왜곡된 파시즘 체제다.

경제 체제는 종교가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용과 이익 문제인 것이다.

 

-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 체제는 이념과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 체제를 비판하거나 다른 체제의 가능성을 말하는 이가 이단이 되어 종교재판을 받는 것은 합리적인 현대인들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 성장중심(신자유주의)- 장점 :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 단점 : 사회적 약자 도울수 없음.

 

분배중심(후기자본주의)- 장점 ; 사회적 약자 도울수 있음 단점 : 기업, 국가 경쟁력 약화

 

-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로서의 경제는 단순하게 두 가지의 입장 대립으로 구분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입장과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시장의 자유는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복지도 줄어든다.

반면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면 세금이 인상되고 규제가 강화되며 이에 따라 복지가 향상된다.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태동하던 초기에 발생한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시장에는 자기 조절 능력이 있어서 별다른 개입은 필요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을 거치며 자유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자유 시장은 위험천만해 보였다.

결국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서 시장의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수정자본주의가 탄생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정부의 고도한 개입으로 인한 장기 불황은 세계적인 불만을 일으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부개입을 대표하던 소련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세계는 차라리 시장의 자유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오늘날 세계를 다시 장악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 오늘날 논쟁의 중심에 선 경제체제는 수정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다.

어떤 사람들은 각 체제의 장단점을 고려할 때, 그나마 복지를 통한 분배를 강조하는 수정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세금 인하를 통한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현시점에 필요한 체제라고 여긴다.

 

-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편협한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으 보는 방식이며, 개인의 세계관의 표현이다.

자신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말은 자신은 어떠한 세계관도 갖지 않는다는 말처럼 불가능한 이야기다.

 

- 논의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우리는 이를 정치적 보수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우리는 이를 정치적 진보라고 부른다.

 

-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일일이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체제와 연계해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막연한 개념도 아니다.

 

- 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타인이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한다.

세상이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게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안정적인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니, 그 문제는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이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개인이라도 그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각은 존재하지만, 틀린 시각이란 없다.

 

- 신 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유를중시하는 체제다.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최선의 체제이므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현재의 사회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수혹은 우파라고 한다.

보수란 안정 지향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운 것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보수에 속한다고 하겠다.

혁신적인 인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잡스는 아무리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할지라도 정치적 입장에서는 보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우주의를 비판하고 저항한 게 아니라 현재의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활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진보혹은 좌파라고 한다.

 

-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이 의도적으로 은폐된 면이 없지 않다.

자신의 재산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집단은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인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후기 자본주의와 함께 묶음으로써

대중들이 후기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 신자유주의는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 정치적인 보수와 진보 비교

보수 장점 : 노동, 투자의욕 증진으로 성장 단점 빈부격차, 사회갈등 심화

진보 장점 : 빈주격차 감소, 사회갈등 완화 단점 : 노동, 투자의욕 감소로 경기 침체

 

- 초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너무 극단적인 까닭에 오늘날 주요하게 논쟁되지는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논쟁이 된 체제는 그 사이에 있는 신자유주의와 수정자본주의 그리고 사회 민주주의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GDP대비 대략 20%, 40%, 60%대의 세율을 갖는다.

전세계의 세율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세법이 복잡함을 고려할 때 오해의 소지가 높다.

다만 대략적으로 알아보면,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미국, 일본의 경우 대략 25% 내외의 세율을 유지한다.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는 대략 40%,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50~60%내외의 세율을 유지한다.

 

- 욕먹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 민주주의 초기에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자 존 스투어트 밀은

보통선거권을 두려워해서 자본가는 4, 노동자는 1표의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 의해 사회가 필연적으로 공산화되리라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11투표제가 시행되는 한국은 공산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오랜 시간을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본다며 밀은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대중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무관심해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귀찮아한다.

미디어는 그 틈으로 파고들어 대중이 봐야 할 곳을 친절하고 세련되게 가르쳐준다.

 

-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데 신중하지 않은 대중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토대로 선호 정당을 결정한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정치인의 외모, 편집된 말, 전문가의 평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 비정치적 성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계관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20세기에 흐르크하이머를 주축으로 결성된 프랑크푸트트학파의 비판 이론은 대중매체의 오락적 기능이 갖는 부정적 측면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비판 이론에 따르면 미디어의 오락적 기능은 대중들에게 사회 체제의 압박을 숨기고 도피하게 기능한다.

 

- 실제로 오늘날의 기업은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고 있는 까닭에

일반 노동자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에서 자유롭게 기업의 주식을 살 수 있고, 한 주를 사더라도 그 회사의 주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즉 노동자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회사의 주주로서 자본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너도 자동차를 가졌고 나도 자동차를 가졌으니 우리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 양적인 차이를 의도적으로 소거함으로써

양적 차이가 있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날에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대립으로써 사회를 분석하는 시각은 타당하며, 실용적이다.

 

- 궁극적인 측면에서 노사의 협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가 협력했다고 할 때, 그것의 실제의미는 노조와 사측중 누군가는 이익이 되었고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혹시나 노조와 사측이 이익의 절충안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기적이고 불안한 적과의 동침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보수, 진보 구분의 본질이다.

 

- 전세계의 군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군이 진보적 성향을 갖는다면, 다시 말해서 현재의 체제를 거부하고 변화시키려 한다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고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다.

사회 안정을 위한 군의 보수화는 필요하다.

 

- 진보적 종교 운동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극우에 배치한 것은,

아직까지는 진보적 종교운동은 소수일 뿐만 아니라 그 근본 교리의 특성상 보수적 성향을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남미의 가톨릭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해방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경제, 정치, 사회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의 신념은 로마 교황청이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 문건을 발표하면서 현재는 위축된 상태다.

 

- 종교와 군이 공유하는 공통분모는 그들이 보수적 성향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기득권과 자본가의 재산을 보호하고 해당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군은 이해를 같이 한다.

 

- 우리가 보수정당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대리자 한 명을 뽑아준 것이 아니라

경제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 시장 자유확대, 세금 인하, 복지축소, 지본가와 기업가의 이익, 국가 전체의 성장, 치열한 경쟁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진보정당에 투표한다면, 그것은 진보 정치인 한 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수정 자본주의, 정부 개입 확대, 세금 인상 복지 확대,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최소 수혜자의 삶의 질 향상, 경쟁 지양 및 협력적 분위기 형성을 선택한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만을 고려할 때 거의 필연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형식적 측면과 동시에 내용적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형식적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의 수렴 과정과 절차가 보장되고, 각 구성원이 소수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관용적 태도가 전제되어야만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를 제시했다.

 

- 현대인들은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다양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하나의 진리를 찾으려 했다.

진리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철학에서는 절대주의로, 정치에서는 엘리트주의로 나타난다.

철학에서의 절대주의나 정치에서의 엘리트주의는 유사해서,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주의가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파행적으로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근거가 되었다.

이후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 폭민정치라 불러 그 한계를 명확히 했다.

이렇게 파행적인 민주주의의 대한으로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 체제는 철인정치였다.

철인정치는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형태다.

 

-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는 지금의 국가와는 차이가 있는 윤리적 집단 공동체여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가능할지 모르나 지금은 독재나 소수 엘리트에 의한 정치는 허구에 가까워 보인다.


- 한국의 보수 성향의 원인

1. 역사적 경험 북한의 존재와 전쟁

2. 교육의 문제 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기득권

3. 대중의 비합리적 선택

 

- 초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수정 자본주의 사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우리나라가 선택 가능 범위는 맨 좌우에 있는 것만 제외하면 됨.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극단화되었을 때 부정적인 측면을 일으킨다.

개인주의가 극단화되면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극단화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 아무리 평범하고 선한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기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경제를 살리겠다는 인물이 있으면,

그가 전권을 맡는 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건, 외국과 전쟁을 벌이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를 잡아가건, 노동조합을 탄압하건, 대중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건 내가 한게 아니라 독재자가 한 것이고, 경제회복을 위해서 전체가 함께 동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없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절하하고, 집단과 전체의 가치를 앞 세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게 좋아보이지 않지만,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개인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을 반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절하되어 있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지메의 원리와 동일하다.

전체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때 내가 거기에 가담할 수 있는 것은, 그 비윤리적 행위의 직접적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나중에 선생님한테 걸려서 교장실로 불려간 다음 학부모와 선생님이 모인 자리에서 크게 혼나게 된다면,

이지메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같이 있기는 했지만 여기서 큰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따라다녔을 뿐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라고 말이다.

전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행동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개인이 전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 말에 대한 탐구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의미론이고, 다른 하나가 화용론이다. 의미론은 내가 내뱉은 말 자체의 내용과 의미를 탐구한다.

반면 화용론은 내가 내뱉은 말이 왜 하필 그 시간, 그 공간, 그 주체와 대상 가운데서 말해졌는가를 파악하려 한다.

 

- 미디어는 편집과 보도 순서의 배열을 고려하는 등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을 활용해서,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맥락을 통해 주관적 사고와 이념을 전달한다.

 

-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언어철학자인 동시에 사회 정치적 실천가인 노암 촘스키는

신문과 방공이 광고주인 사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사기업들은 광고로 언론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잘못된 이익의 먹이사슬이 형성됐다.”

라고 말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미디어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 경제적 측면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측면에서의 보수주의가 기업의 이익에 대한 대변이 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미디어는 끊임없이 보수화되고,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

 

- 언어학적 관점에서보면,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의 미디어는 의미론적 측면에서는 문제를 일으키기 어렵다.

그들은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하며, 대중의 감시 속에 사실을 전달한다.

다만 화용론적 측면에서 객관성을 상실되고, 보수의 이념과 사고가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재벌그룹의 불법과 탈세는 1면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는 연예인에 대한 말초적인 가십거리와 스프츠의 열기로 채워진다.

보수적 정부에 의한 부유층의 세금 축소 논쟁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듯 아나운서의 짧은 멘트와 함께 사실로 규정되고,

그 자리는 북한의 도발과 사건 사고의 충격적 이미지가 대신한다.

 

- 미디어가 재벌기업과 스포츠 스타를 칭찬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서, 그 열광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고등학생 자녀가 자기 반에 전교 1등이 있다고 나에게 자랑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 근현대의 폭력을 경험한 현대인은 개인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연권을 찾았다.

자연권은 생명, 재산, 자유의 절대적 보호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자연권은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와 충돌할 가능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다수결 방식에 따라 다수의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자본가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에서 사회는 공산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미디어 역할이다.

 

- 대중은 정교하고 매끄러운 미디어의 영향아래 놓이며, 자신의 신념과 번거로움을 포기하고, 모든 평가와 판단을 미디어에 양도한다.

 

- 다만 이렇게 미디어에 자신의 판단을 양도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여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계밖의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고, 인생의 깊이를 얻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 속에서 빛날 수는 없을 것이다.

 

- 학문마다 탐구하는 명제가 다르다. 사실명제를 탐구하는 영역은 과학이고,당위명제를 탐구하는 영역은 윤리이다.

 

- 도덕은 실천적인 느낌이 강하고 윤리는 이론적인 느낌이 강하다.

 

- 윤리에서 의무론은 의무나 도덕 법칙을 준수하는 행위를 윤리로 보고, 목적론은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윤리로 본다.

예를 들면 의무론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람은 종교인이다.

종교인들은 이미 주어진 도덕적 명령으로서의 신의 말씀을 규범으로 생각하고 평생 준수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옳은 일은 신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잘못된 일은 신의 말씀에 거역하며 사는 것이다.

반면 목적론의 윤리관의 대표적 인물은 안중근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야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의 윤리관은 좋은 결과를 고려한 행위이므로 목적론적 윤리관에 따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 현재의 행위를 할 때 과거로부터 주어진 의무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의무론자가 되는 것이고,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목적론자가 되는 것이다.

결과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을 결과주의라고 부르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무론을 결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 현재의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인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론자들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행위를 할 때. 이 행위가 나의 미래에 이익이 될 것인가를 고려해서 행동한다.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판단의 몫은 당신에게 있다.

 

- 의무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칸트다.

칸트는 학문에 있어서 중간보스 정도 되는 사람이다.

문학, 철학, 예술등 인문학의 어떤 분과든 깊이 있게 파고들면 결국 만나게 되는 인물이 칸트다.

그리고 어렵게 중간 보스를 물리치고 올라가보면 마지막에 끝판왕 삼형제가 기다리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들이다.

 

칸트는 18세기 사람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년 전에 활동했다.

세 편의 책으로 유명해졌는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 그것이다.

이 비판 시리즈에서의 비판은 무엇인가를 비난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계를 밝힌다는 뜻이다.

 

- 벤덤의 공리주의를 양적 공리주의라고 해서, 밀의 질적 공리주의와 구분하기도 한다.

벤담과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행복에 대한 관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벤담은 행복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밀은 행복의 질적인 측면도 고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벤담식의 공리주의는 단순하고 명쾌한 반면, 윤리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설명인 듯 해서 윤리라고 하기에 민망하다.

     이렇게 단순 무식한 공리주의를 세련되게 만들어준 인물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통해 쾌락과 행복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 자신이 빌게이츠인지 노숙자인지 모를 때에는 빌게이츠일 때 얻는 이익보다 노숙자일 때 처할 어려움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대한 사유실험은 우리가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벗어 났을 때,

사회전체가 합리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분배 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최소수혜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사회가 사실은 구성원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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