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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무소유

 가끔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거닐다 보면, 손 때가 잔뜩 묻은 책을 보게 된다.

그런 책들을 보면 저 책 내가 읽은 책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안 읽은 책이면 빌리고, 읽은 책이면 다시 그 책 생각을 해 본다.

이번에도 낡은 책이 눈에 띄었는데 똑같은 책이 두 권이나 꽂혀져 있었고 두 권 다 많이 낡아있었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으려고 넓은 테이프를 두르고 있는 책 무소유.

 

아주 오래된 책을 다시 읽는다. 고전이라 불러도 무방할 책을....

한 단락의 글이 끝나는 부분에는 법정 스님이 글을 쓴 연대가 나타나있는데 무려 지금부터 50여년이 지난 글들이 많았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읽어도 그 가르침에 관한한 전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를 흘러도 손색이 없는 글이면 고전 목록에 오를 자격이 있다.

 

내가 쓰고 나서 우쭐한 느낌이 들었던 글들도 불과 몇 년 뒤에 읽어보면 낯 간지러운 글들이 허다한 걸 보면,

어떤 글이 명문인지 하는 걸 느낄 수가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명상과 숙고를 통해서 우러낸 글맛이 나는 책이다.

 

다만, 연탄 가스 이야기라든가, 한남대교가 아닌 제3한강교로 표현한 부분이라든가,

다음과 같은 글에서 그 세월을 짐작하고 쓰여진 연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요즘의 식량난은 심상치 않은 일 같다. 그것이 세계적인 현상이고, 그 전망은 결코 밝을 수 없다고들 한다.

그 까닭을 늘어나는 인구에다만 돌려버릴 성질의 것은 아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많은 분들이 육류를 섭취할 것을 권유했는데, 마다하고 입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와 절에 다니는 큰 누이가 엊그제 이야기 한 고기와 술 먹는 스님이야기가 머릿 속에서 겹쳐졌다.

 

읽고 나니, 참 큰 어른 한 명을 우리가 떠나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과 삶의 한 귀퉁이를 말끔하게 정돈했다는 생각에 개운했다.

어설픈 내 삶의 논리에 주춧돌을 놓게 된 듯도 하다.

하지만 나같은 범속한 사람이 책 내용대로 실천하며 산다는 건 참으로 지난하고 지난한 일이다.

 

 


 

-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물건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어진다.

 

-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다.

 

-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우리는 하나의 색맹에 불과한 존재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색맹이 또 다른 색맹을 향해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 하여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 인간의 일상 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여기에는 자기 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부침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일상인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히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하게 마련이다.

    

-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없다.

너그러울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화나는 그 불꽃 속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의 접촉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그보다는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 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니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1971

 

-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이나 나무그들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 이 시대와 사회에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러한 연대감을 갖게 한다.

   

- 내가 키운 장미꽃에는 내 손길과 마음이 배어 있다.

생 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 종교와 미신의 분수령에는 여러 가지 푯말이 박혀 있겠지만, 그중에는 정과 사도 있을 법하다.

구하는 바가 청정하고 바른 것이냐. 아니면 사특하고 굽은 것이냐에 따라 그 길은 갈라질 것이다.

 

-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는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건 자체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 관념 때문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 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 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 대개의 경우 어떤 종교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갖지 않은 일반인들에 비해 대인관계에 있어 너그럽다고 한다.

그러나 그 대인관계가 이교도를 향하게 될 때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수가 더러 있다.

너그러웠던 아량이 갑자기 움츠러들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돋우는 것이다.

 

- 간디의 표현을 빌리면, 종교란 가지가 많은 무성한 한그루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똑같은 히말라야를 가지고 동쪽에서 보면 이렇고, 서쪽에서 보면 저렇고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하나에 이르는 개별적인 길이다. 같은 목적에 이르는 길이라면 따로따로 길을 간다고 해서 조금도 허물될 것은 없다.

사실 종교는 인간의 수만큼 많을 수도 있다. 왜나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특유한 사고와 취미와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들은 진정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시장이나 전장에서 통용됨직한,비리고 살벌한 말뿐이다.

맹목적이고 범속한 추종은 있어도 자기 신념이 없기 때문일까.

이렇게 해서 현대인들은 서로가 닮아간다. 동작뿐아니라 사고까지도 범속하게 동질화되고 있다.

다스리는 쪽에서보면 참 편리할 것이다. 적당한 물감만 풀어 놓으면 우르르 몰려들어 허우적 거리는 무리를 보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무소유 / 법정 /범우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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