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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죽고 싶지만 떡뽂이는 먹고 싶어

가벼운 우울증이 지속되는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를 의사 앞에서 꺼내는 것으로 글은 시작된다.

18평 아파트에 다섯식구가 모여살았고,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폭력 가장이었다.

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은,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젊은 직장인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 것은 글 속의 부분 부분에서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내 이야기와 같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 아닐까?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가 날선듯한 모습을 보니는 속에서 보드라운 생각을 가진이들이 상처 받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저자와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동안 보았던 정신과의사들의 책들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내담자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 밑바닥까지 까보여주면서 쓴 책이라서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들이 다져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의 의사들의 책이 이론편이라면, 이 책은 실전편인 셈이다.

그리고 제목이 주는 상큼 발랄함이 이책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이유도 될 것 같았다.

어떻게 죽음과 떡뽂이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았을까? 한 문장 속에.....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보라는 내용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듯, 공감이 같다.

우린 이분법적으로 사람들을 판단해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데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분단국가에서 살다보니 어느 쪽이든 서야 했고, 어느 쪽인지를 끊임없이 물어왔을 것이다.

그런 생사여탈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것들이 쌓인 결과다.

지금의 좌파냐? 우파냐? 묻는 물음에 답하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람이란?

나 자신조차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어느 한사람이 좋은지 나쁜지 묻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어느 사람이 싫다고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 어느 사람이 좋다고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저자를 상담하는 의사의 말도 자세하게 실려 있지만 의사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렇더라고 하더라도 상담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내담자 못지않게 의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 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저자는 우울증에서 벗어났을까?

책이 잘 팔려 소위 대박이 났는데?

 

 

<태풍이 지나가면서 감이 다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렇게 달려 있는 것들이 기특했다>

 

##############  밑줄 긋기 #############

 

- 감정의 양끝은 이어져 있기에 의존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예를 들어 애인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애인에게서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여요.

 

- 일탈이 필요해요.

우울과 좌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아요.

 

- : 제가 했던 일들이 지나고나면 다 보잘것없이 느껴져요.

선생님 : 내가 하는 일의 상당수는 실제 내가 원했던 일이라기 보다는 내가 만들어 놓은 의무감 때문에 해왔던 걸 수도 있어요.

 

선생님 : 일상의 만족도 가 떨어지면 가장 원시적인 퇴행으로 돌아가요. 먹고 자는 본능적인 거로요.

만족감의 중추를 가장 편한 곳에서 찾는 거죠. 하지만 먹는건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아요.

운동이나 프로젝트 같은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장기적인 목표를 통해 극복하는게 좋겠지요.

 

- 극과 극은 오히려 통한다고 하죠.

굉장히 자존심이 세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요.

자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우러러보게끔 하려고 하죠.

 

- 서로의 친밀감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 상태를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한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기 싫었다. 의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이는 상태,

 

- 머리로는 정답을 알고 있는데 행동은 늘 어렵다.

 

- 어떤 조건이 좋다는 건, 가기 전까지만 좋은 거예요.

직업이든 학교든 마찬가지죠. 합격하는 순간까지만 좋고, 가고 나면 불만이 시작돼요.

 처음부터 끝까지 난 여기가 너무 좋아!“하는게 가능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할지 몰라도 정작 나는 아닐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왜 즐겁지 못한거야하며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어요.

 

- 누군가가 좋은 나라에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연습일 필요할까. 늘 날씨가, 몸이, 마음이, 정신이 어두울 때만 글을 쓴다.

좋은 생각을 하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묵직하고 어둡고 과잉 범벅인 게 싫다. 어쨌든 좋은 생각을 해보기로....

 

- 감정상태를 좋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좋게보다는 과도하지 않게? 극단적이지 않게 바꾸는게 중요하죠.

 

- 누굴 만나든 절대적인 선은 없거든요. 불만도 있을 수 있고요,

늘 부분과 전체를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이 사람 전체가 다 마음에 들고,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전체가 싫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좀 다르게 생각하는 시도를 하면 좋겠어요.

 

- 감정에도 통로가 있어서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자꾸 닫아두고 억제하면 긍정적인 감정까지 나오지 못하게 된다.

 

- 때론 나를 지키기 위해 합리화도 필요하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오랜 시간 가슴에 칼을 대왔다.

내가 지금부터 연습할건 이렇게 해야 한다의 공식 안에 갇히지 않고 주관적인 개인을 인정할 것.

 

자기 합리화는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예요.

자신의 상처나 결정에 대해 이유를 찾는 거니까.

과도해지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얼마든지 좋게 바라볼 수도 있어요.

 

- 사람을 다면적으로 보게되면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 아기들이 읽는 동화책은 평면적이잖아요.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딱 나누어져 있죠.

하지만 성인된 후에 읽는 책 속 인물들은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기준으로만 말할 수 없잖아요.

사람을 종합적으로 보고 나서 판단하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요.

 

-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언제나 힘들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땐 더더욱, 뭐라고 해야할까.

쓰레기를 밝고 있는 걸 아는데도 굳이 손으로 집어올려서까지 확인하려 한다.

 

- 예를 들어 세희씨가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했어도, 그 사람을 실제로 보고 실망스럽다면 바로 돌아설 거 같아요.

헐 맞아요. 그건 그 사람의 일부분일 뿐인데.

이 문제를 상대를 평가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 잣대가 그대로 되돌아온다는게 큰 문제예요.

만취한 다음 날에 괴로워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죠.

제가 허물어지는 어떤 모습을 보이면, 그 부분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저를 싫어하고 떠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알고 있어요.

못난 부분, 멋진 부분, 소심한 부분 등등....부정적인 부분이 있어도 그냥 그 사람이기에 좋아해요.

그러면서도 저 자신은 아주 작고 부분적인 측면으로도 금세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요.

결국 자존감 때문이겠죠. 자존감이 높고 내 취향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걸 비판하든 비난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다양성이 있는데도 그걸 옳다 그르다는 시선으로만 보게된 것 같아요.

 

- 우리는 다 여러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전부다.

그걸 가지고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거나 그만두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머리로는 잘 아는데 마음은 잘 섞이거나 녹아들지 않는다.

불행은 불행대로 기름처럼 우위를 차지하고 행복은 밑으로 꺼진다.

그대로 이것들이 모두 담긴 통이 삶이라는 건 큰 위안이고 기쁜이다.

슬프지만 어쨌든 난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그게 위안이자 기쁨이다.

 

- 정좌불능이란 착석 불능이라는 뜻으로, 가만히 앉은채로 있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서거나 낮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며, 정신안정제 사용 중에 종종 볼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한다.

 

-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죽고 나보다 열등한 사람들을 만나면 당당해지고 편안해지는 내가 너무 싫다.

 

- 모든 원인을 나한테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그냥 재수없어 해도 되죠.

 

- 낯선 환경에서 온전한 고독을 느껴보는 것도 좋아요.

어쩌면 정말 바닥까지는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물에 빠져도 발이 땅헤 닿으면 안심하잖아요.

딛고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닥이 어딘지 모른다면 공포감이 어마어마하겠죠?

 

- 내가 상대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 강도 높은 실험을 하는거라고

이래도 날 사랑해? 이래도? 이래도? 상대가 받아준대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상대가 포기하고 떠나면 역시나 나를 다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위안한다.

 

-가장 힘이 들 때 옆에서 힘내라고 말하면 멱살을 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지 함께 고민 해주거나,

아니면 같이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유경험자라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생각보다 별일 아니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이야기해주면 된다.

 

-아마도 삶은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같다.

 

-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움직일 때 글을 쓰고, 그에 맞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늘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다.

삶의 무수한 여백에 이성적인 힘이 마구 끼어든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빛나는 힘과 여유마저도 잃어버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이성적으로 가난해도 감성적으로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고 싶다.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에 우위를 따질 수는 없지만, 분명 질감은 다르다.

난 사랑과 감성으로 채워진 질감을 더 세삼하게 느끼고 즐긴다.

 

- 한결같은 사람이 된다거나, 혹은 그래주기를 바라는 게 어떤 이에게는 아주 혹독한 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삶이 그저 살아남는 일이 되어버릴 때, 생존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그 외의 모든 요소는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그 상태로 시간은 무섭게 지나가고 결국 많은 것들이 메마르고 썩어버릴 때,

그런 상황에서도 한결같기를 바란다는 건 이기적인 바람이자 모순 아닐까.

 

 

<죽고 싶지만 떡뽂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도서출판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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