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나오는 영화 <군도> 봤어? "
"응 그런데 악당으로 나오는 강동원이 너무 멋있어서. 하정우가 찌질하게 보이더라고...ㅎㅎ"
영화배우 하정우가 쓴 이 책을 읽다가 영화 군도 이야기가 나와서 물었다.
영화 <군도>에 대한 하정우의 이야기가 책 속에도 들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일 년가까이 감독과 군도에 대해 이야길를 나누었단다.
당시 영화 외적인 상황도 좋지가 않았고....그래서 좀 안타까웠다.
영화가 끝나고 나누는 이런 대화 속에서 많은 성장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정우가 연기한 도치가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불러오는 속시원한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난 뒤 관객들은 애매하고 허탈한 느낌을 받고,
특히 <군도>가 개봉한 2014년 여름은 세월호 참사 이후였기 때문에, 현실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가 무척 깊은 시기였다.
관객들은 좀처럼 풀기 어려운 울분을 영화에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정서와 맞물려 영화에 대한 호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모든 상황을 염두해 두어야 하는 연예인들, 정치인들의 삶은 참 힘든 삶이라 생각된다.
그나마 그런 어려운 여건을 견뎌보아야만 참된 연예인, 정치가가 되는게 아닐는지?
그저 단맛과 멋에만 취해 있다가는 손가락질 받는 언행으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면에서 보자면 하정우는 참 외모와 맡은 배역과는 달리 섬세하고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 느껴지는 그런 점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번 미술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고 여행하면서 나도 다녀온 적이 있는 미술관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를 더했다.
김용건의 아들에서 이제는 김용건이 하정우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을 보면 하정우의 노력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잔뜩 힘과 겉멋이 들어간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책 표지만 보고 생각했었는데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걷기를 무척 좋아해서 내가 보게된 이유이기도 했지만 읽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지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읽기를 권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기 삶은 만들어 나가는데 조금 보탬이 될 수 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10만보 걷기에 도전한 것은 내 생각엔 조금은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무엇에든 도전해보는 것은 젊은 시절 충분하고도 건전한 의미로 여겨졌다.
요리 좋아하고, 그림 잘 그리고, 걷기를 즐기는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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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별 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 종일 책상 앞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이가
“ 제 몸엔 머리와 손밖에 없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라고 말해서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아마 많은 사무직 종사자들이 공감하는 얘기 일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리 대신 바퀴에 의지해 잽싸게 이동하길 요구하고, 머리와 손은 더 빨리 움직여 생산성을 높이라고 다그친다.
이런 와중에 내 다리를 뻗어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는 행위는, 잊고 있던 내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
-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걷는다는 것,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통해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 한겨울 오후 5시 무렵 걷기를 좋아한다.
이시각을 나는 걷기의 매직 아워라 부른다. 매직아워는 원래 촬영 할 때 많이 쓰는 단어다.
여명기나 황혼기에 햇빝의 양이 적당해서 아주 아름답고 부드러운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간대를 가리킨다.
- <군도>는 언뜻 보면 민중이 들고 일어나 부패한 세상을 뒤엎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심했던 조선시대가 배경이고 의적떼인 군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도치가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불러오는 속시원한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난 뒤 관객들은 애매하고 허탈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군도>가 개봉한 2014년 여름은 세월호 참사 이후였기 때문에, 현실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가 무척 깊은 시기였다.
관객들은 좀처럼 풀기 어려운 울분을 영화에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정서와 맞물려 영화에 대한 호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부분까지가 다 관객들의 선택이고 영화가 당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영역인 것이다.
섭섭하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절대 할 수가 없다.
- 술이나 약물에 중독돼 흐트러진 자세, 충동적인 일탈과 자유분방함, 무절제와 탕진하는 습관, 감정 기복, 우울증과 예민함,
그리고 그 불행과 절망을 딛고 태어나는 훌륭한 예술작품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런 쪽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평범한 직장인처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어 한다.
내가 배우이자 감독이면서 동시에 그림까지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가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하정우를 상상했다가
나에게 몹시 실망(?)하는 듯한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 대중이 열광하고 추앙하는 작품이 우연히 나와서 인기와 명예까지 얻다보면,
이제는 행복과 안정을 향한 길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상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번쩍, 하는 충동의 순간에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강도를 점점 높여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나는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작정하고 웃기려 들면 과장되기 마련이라 부담스럽고 오히려 재미가 떨어진다.
웃기려고 노력하는게 느껴지면 이미 그 농담은 실패한 것이다.
유머는 삶에서 그냥 공기처럼 저절로 흘러야 한다.
- 김치도 그렇듯 장조림 고기도 결대로 쭉쭉 찢어야 맛이 있다.
- 연에인들은 늘 대중의 시선과 평가를 받으며 살다보니 정신적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것 같다.
자신감이 소진돼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마음이 요동치고, 아무 이유없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그간 이뤄놓은 것들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허물어질 것 같고,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너무도 어렵게 느껴져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사실 이런 증상은 연예인들만이 아니라 과잉업무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많은 현대인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기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란 쉽지않다.
변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물결에 배가 휩쓸려가서는 안 되므로 닻을 단단히 내려둘 필요가 있다.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네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 나는 생각을 이어가다가 지금 당장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다.
살다보면 답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문제들을 수없이 만난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질질 끌려가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감독으로서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나니 비로소 영화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구석구석 만져본 기분이 들었다.
- 나를 염려해준 지인의 말이 고마웠지만, 나는 내가 정말 ADHD 성향이 있는지 검사하러 병원에 가진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부터 가만있지 못한다고 말하는 대신 가만있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야겠다.
그 능력 덕분에 배우, 감독, 제작자,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여러 직업을 한 번의 생에 동시에 살아가는 축복도 누리는 것일 테니까.
- 하정우가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들 : 브르통의 <걷기 예찬>, 구가야 아키라의 <최고의 휴식>,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
마이클 해리스의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토니포터의 <맨박스>,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 다다후미아키의 <말의 한수>, 이기주의 <말의 품격>
-배우의 삶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던 일상이 사라지는 경험은 의지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걷는 사람, 하정우 / 하정우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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