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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자기 앞의 생, 내 앞의 시간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푸짐하게 장을 보아온 것들을 보면서 요리할 일을 생각하면 흐믓한 미소가 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요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저거 언제 다듬고 씻고 언제 다 만드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저 해 치워야 할 일거리일 뿐이라 여길 것이다.

 

요즘 나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하는,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일 매일 주어진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일 매일 누군가가 장을 보아다 주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엔 화창한 날이 이어지고 화단엔 꽃들이 나날이 다르게 피어나니 즐겁기 그지없지만

계절이 바뀌어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고 음산하게 비라도 내리면 나는 주어진 그 하루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한숨을 내쉴지 모를 일이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사중 '겨울이 온다'라는 대사는 나에겐 '지옥이 온다'로 들린다.

어쨌거나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흐믓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요리를 하는 일이 나의 의무요, 길이요, 생명이니라.

 

오늘 하루를 머리 속에 그려본다.

일단 화단에 나가서 밤사이 꽃들이 어찌 지냈는지 꽃들을 살펴보다가

붓글씨를 쓰러 가는 날이니 도구를 챙겨 글씨를 쓰러 갈 것이다.

글씨를 쓰고 나면 점심 시간이 되는데 혼자 해결해야 하니, 두부 마을에 가야겠다.

배달 신청한 책이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어제 왔으니 주문한 책을 대출하러 도서관에 가고,

도슨트가 해설해주는 시각에 맞추어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을 갈 것이다.

날이 좋으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때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쉴 겸 배낭 속 대출한 책을 꺼내 볼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바둑을 한 판 둘 것이다. 아생연후살타를 되뇌이면서.......

 

김혜자가 백상 예술 대상 시상식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오늘을 사세요. 눈이 부시게~~~~

하지만 매일 매일이 눈이 부실 수는 없겠지.......

 

어찌 보면 눈이 부시게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다.

화단에 무중력 의자를 펴놓고 누워서 책을 보다가, 멍~때리다가 잠을 잔 어제가 가장 눈이 부신 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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