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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퇴임사

 제 부모님은 6.25 전쟁 중에 제 위로 형과 누이 셋을 모두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가슴 아픈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한 번도 꺼내시지 않으셨고,

할머니를 통해서만 힘들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궁금해도 저는 그 이야기를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휴전이 되어 서울에 정착한 부모님은

나의 누이들인 딸을 연이어 낳으신 이후 마침내 아들인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런 내가 어릴 적에 하도 장난 치다 다치기도 많이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어

걱정이 되신 어머니가 점을 보러 가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점쟁이가 하는 말이

언제 어디서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항상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근무했던 학교마다 항상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초임 때는 정말.. 모르는 것도 많고 어리버리해서 선배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게다가 학생들 시험을 봐서 통계를 반 별로 내 보면 저희 반이 꼴등을 해서 실망하고 자책하며

교직이 내 길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경력이 4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달인은 커녕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지금은, 

여러 후배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고 있어 그 점쟁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 초임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던 시절로

거의 매일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상처럼 벌어지던 그런 혼란한 때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이후에도 군부 대통령 시대는 여전했고

소문도 흉흉해서 어떤 선생님은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안기부에 끌려갔다 와서는

실어증에 걸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종례때면 교장 선생님께서는 말조심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남산이란 말은 두려움과 공포의 언어였고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서

1980년대에 해외 여행을 갔을 때는 여행 자유화가 되지 않았을 때라서

외국에 나가려면 남산 어딘가에 가서 안기부 직원에게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그 직원이 하는 말이

다른 나라에 가서 혹시 북한 대사관 근처에서 얼씬거렸다가는

자기들에게 먼저 발각 될거라고 겁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는 이젠 근현대사 역사책 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습니다.

따르기에도 벅찬 변화로 인해 트렌드 관련 책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교 환경과 문화도 빠르게 변해서,

과거에 익숙한 저에게는 그런 변화된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 교실은 개인 사무실처럼 변했고, 옆 반 선생님이 결근을 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수도 있을 만큼 

선생님들은 서로 서로 무덤덤한 사이가 되어 학교도 파편화된 개인만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오래지 않아 같은 학년이 아니면 전화 번호도 서로 비공개로 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학교에서 근무 연한은 3년에서 4년, 5년으로 늘어났지만

함께 어울리는 시간은 적어져서 공유하는 추억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필요한 학습자료나 고민 상담도 동료보다는 인터넷을 통해서

모르는 이들과 익명으로 도움을 주고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변화되었거나, 달라졌거나, 없어진 옛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해서,

그리운 것으로 여기지만, 젊은 선생님들께서는 많은 것들이 당연히 바뀌고 없어져야 할 것들이라 생각 할 것입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보는 교사에 대한 시각도 변해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요즘엔 비아냥거림이나 욕을 듣는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점점 힘들어 지는 건 마찬가지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퇴임을 앞 두고보니

이렇게 힘든 학교 생활에서 발을 빼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결혼 후 36년 동안 밥해 주었으니 앞으로 36년 동안은 밥을 해 줘야한다는 말을 듣고는

벌써부터 부엌 일이 걱정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학교 중간 놀이 시간 쯤에, 늦은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문득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먹먹해지고

한 달 두 달 백수로 지내다 보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조차 그리워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하자면 선생님들과 함게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간이역에 나만 홀로 내려, 멀어져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마치 줄이 끊어져 버린 연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제 자신을 떠 올려 보게도 됩니다.

 

하지만, 인정사정 보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가는 세월은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게 놔 두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 전엔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만 같던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이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2000년을 가볍게 지나 2019년이 되었습니다. 

2019년 올해,,,, 선생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마음에 상처받는 일없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댁네 애경사에 연락을 주셔서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푸념같은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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