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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옥수수빵

돌봄센터에 다닌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놀지 않으려고 할까봐 말을 안한다고 했다.

초등 저학년 정도 됨직한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돌봄센터에 올 수 있는 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를 선별해서 도움을 주려다 생긴 문제이다.


어린 아이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에서 그 아이의 속마음에 배어 있을 서운함이 드러나는 듯 했다.

그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을 상처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남아 그 아이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아 마음이 짠 해 온다.

 

누구를 돕는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힘들게 버티던, 나의 초등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오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옥수수빵 배급이 나왔었다.

우리반 선생님은 어려운 아이들을 선별해서 나누어주지 않았다.

우리 선생님만 그러셨는지 다른 반도 다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반에선 돌아가면서 청소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아이의 구분을 옥수수빵으로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다 어려운 아이들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고려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른 주먹보다 좀 더 큰 크기의 옥수수빵은 아주 단단했다.

지금 우리가 쉽게 사 먹고 있는 빵과 비교하면 아주 거칠기 그지없지만

교실에 빵이 들어올 때 냄새가 따라 들어와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들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내가 교사가 되어서 근무했던 한 학교에는 생활보호 대상자 아이들이 많았는데

 

당시 겨울에 생활보호 대상자 아이들에게 파커를 사서 나눠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파란 색 파커를 추워도 잘 입으려 하지 않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이유가 방금 뉴스에서 돌봄센터에 다니는 걸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이유였다.

그 옷을 입으면 생활보호 대상자, 즉 못 사는 아이들임을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각자 고르게 해서 색깔도 다양한 것으로 지급해야 겠다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누구를 돕는 문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함을 그때서야 느꼈었다.

 

그 다음부터는 생활보호 대상자를 위한 행사에서도

생활보호 대상자의 아이들과 잘 어울릴만한 일반 아이들도 함께 참여 시키기도 하였다.

 

누구를 돕는 문제는 예민한 문제라, 참 접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돕는 사람들의 마음 기저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만 조금 더 있다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선진국에서 부모들이 학교에 기부하는 기부 액수나 기부 여부를 알 수 없게 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말도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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