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터키 - 이스탄불 9일째 이야기

오늘의 날씨는 1도~5도 분포를 보이고,  비 소식은 없다.

 

매일 새벽마다 보던 금성이 오늘따라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교직에 첫발을 내딛기 직전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렇게 멀리 떠나와 있다.  희망 사항이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생전 그러셨듯, 엄마도 내 옆에 있는 당신의 며느리를 나와 함께 흐믓하게 보실 것 같다.

지극 정성(?) 당신의 장남을 돌보고 있으니......

 

실내에 있는 전등을 모두 다 꺼서 유리창에 얼 비친 빛을 없애고 밖을 본다.

상념에 젖기 알맞은 환경이 갖춰졌다. 멀고 먼 동쪽 하늘 금성을 다시 보았다.

물끄러미 하늘을 보다 시계를 보니 워낙 일찍 일어나서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이제 새벽 6시다.

 

요즘엔 부쩍 이런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시간이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시간이 되지만 않았으면 싶다.

남에게서도 상처를 받는데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어선 안될 일이다.

 

나를 알고, 또 남을 알고자, 심리학자, 신경정신과 의사들의 책을 많이도 찾아 읽었다.

아주 오래전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를 비롯해서 이나미, 김정일, 양창순, 김혜남 의 책들을 거의 다 보았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보다 더 독자들을 위해 잘 쓴다고 여겨지는 소설가 김형경의 책까지.......

그 덕분일까? 아니면 나이 덕분일까? 조금은 무뎌졌고, 조금 딱딱해졌고,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눈도 생겼다.

그리고 가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는 버릇도 생겼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게 쉽게 나의 것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세상엔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널려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는 이나미의 책을 들고 왔다.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한 책으로 <운명에서 희망으로>라는 책을 보았다.

문재인과 대담하고, 혹은 질문지를 보내서 답변을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문재인이 대통령되기 전에 출판된 책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대통령 후보로 홍보 차원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

알았더라도, 충실하거나 읽어 볼 가치있는 책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시,

전반적으로 꽤 심도 있게 한 개인을 분석한 책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재인이나 현 정권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 쪽에선 문재인 홍보물에 불과하다고 폄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램을 타기 직전에 빵 두개를 나눠 먹었다. 트램을 내려서 튄넬(푸니쿨라)를 갈아타고

현대 미술관에 갔더니 문여는 시각이 9시가 아닌 10시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다보니 쓸데없이 부지런을 떨었다.

생각보다 날이 쌀쌀해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자고 카페를 찾았다.

 

찻집에서 나와 미술관으로  가는 중에 아가사 크리스티가 머물면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등을 썼단는 페라 팔라스 호텔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길을 건너 기웃거려보았더니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해 보였다.

'이게 웬 횡재야~~'하면서 가려던 미술관을 뒤로 미루고 따라 들어갔다.

혹시 호텔 직원이 당신들은 일행도 아닌 동양인이 왜 끼어들었느냐고 나가라고 하지않을까?

하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듯 보였다.

 

1층에는 에펠탑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졌다는 나무로 만든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아가사 크리스트가 머물며 소설을 쓴 방에는 타자기와 그가 쓴 소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방도 일반인이 묵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운이 좋으면 그런 기회도 있다고 하였다.

물론 값은 비싸겠지?

 

터키어로 설명을 하는 바람에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다.

히치콕이 묵었던 방에는 그가 감독한 <새>을 연상하게 하는 새와 영사 필름도 전시하고 있었다.

히치콕 감독이 터키에 머물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아타튀르크가 머물던 곳은 박물관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내가 '아하~아타 튀르크' 하며 아는 체를 하자 우리나라 로 말한다면 외국인이 이순신 장군을 아는 것과 같은 반응으로

아타 튀르크를 아느냐는 듯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들 일행이 단체 사진을 찍는데 우리 내외에게도 가운데 자리를 내 주며

같이 찍자고 권하는 바람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호텔을 나와 현대 미술관을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작품 수가 적었다.

하루 종일을 보아도 시간이 모자라는 미술관을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 작품이 야외도 아닌, 실내에 너무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 미술관을 나와서 지난번 문이 닫혀 못 들어간 순수 박물관을 다시 찾아갔다.

 

오르한 파묵의 책 <순수 박물관>을 보고 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타난 한 벽면 가득 꽂혀 있는 수많은 담배 꽁초는 한사람에 대한 집착의 끝판왕을 보는 듯했다.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순수 박물관>책을 전시하는 가운데 민음사에서 출판한 한글 책도 전시하고 있었다.

순수 박물관 입장료는 40리라 였다. 다른 곳에 비해 비싼 입장료였지만

<순수 박물관>을 읽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지불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다음에 이스탄불을 방문한다면 그 첫번째 이유로 순수 박물관을 꼽을 것이다.

 

순수박물관을 나와 고등어 케밥집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저 아저씨가 이스탄불 검색할 때 보았던 에민 아저씨라는 사람 같단다.

그런데 장소는 여기가 아닌데 옮겨 왔을까? 아니면 동생일까?

지금에서야 물어볼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기 직전에 익숙하게 가시를 다 발라 주었다.

이것저것 야채와 향신료를 넣어서 그런지 비린내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함시(멸치구이)를 못 먹은 걸 만회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벽에는 손님으로 온 관광객들과 찍은 사진을 붙여 놓고 있었다.

주변엔 온통 공구 상가들 사이에 간판도 없어 찾기도 쉽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맛이 좋고 긍정적인 아저씨의 친절이 더해져 입소문과 눈소문을 타고 번성 할 것이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기 전에 구운 옥수수도 하나 사서 먹고

걸어서 다리를 건너서 이집시안 바자르에 들어갔다.

이집시안 바자르는 그랜드 바자르와 비슷한데 길이 조금 넓고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이곳도 그랜드 바자르 처럼 입구에 검색대가 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우리 말로 '깎아 줄게요~~'하는 상인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흥정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하는데 물건을 특별히 살 것도 아니었지만 흥정하는 것도 스트레스일 것 같았다.

구경하고 시르케지 역에 있는 철도 박물관에 들어갔다가 다시 트램을 타고 귀가하였다.

 

모자를 벗고, 목도리를 풀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패딩도 벗어 던지고 모든 것을 풀어 헤치고 나니 

세포 하나 하나가 해방감에 환호하는 듯했다.

씻고 누우니 잠이 스르르 찾아왔다. 잠시 자고 일어나니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고 하늘의 색이 변함에 따라 바다색도 변해 있었다.

 

내가 상추를 씻으며 상춧잎 하나 입에 넣어주려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아니 먹고 싶지 않아? 나는 맛 있어서 항상 상추를 씻으면서는 하나 둘씩 떼어 먹곤 하는데"

그래서 내가 " 고기가 맛있어? "하고 물었다. "그럼 맛있지. 맛 없으면 왜먹어? "

나는 육류는 마지 못해 먹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우린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나에게 잘 맞춰주는 바람에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것도 나보다 어린 55세의 젊은 나이에....

난 지금 ...... 이렇게 멀리 떠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