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지는 한참 지났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가 들끓고 있는 지금,
그 절절한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18대 대선 결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그 선거.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고 절망적인 심정이었는지
당시엔 먹고 싶지도 않고 그저 한숨만 나온다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내 주변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잠도 안 온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울분과 절망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대통령깜도 안되는 박근혜 후보를 찍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점을 되돌아보며 쓴 책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의 요지는 사람들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애완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다. 애완용 개가 아닌, 애완용 사람.
국가 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세대의 사람들.
우린 알게 모르게 권력을 가진 자, 재산을 가진 자등......가진 자들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얼마나 무섭고 모멸감 느끼는 일인가?
읽으면서 작가가 얼마나 상실감이 컸는지 감정이 너무 지나쳐서
조금 차분하게 표현했으면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여겨지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는 미래의 삶이 암흑기라고 여길 때 사람들은 시간의 권위를 복원하려고 한다.
박정희 시대는 좋았어 라든가, 전두환 정권 시절엔 그래도 경제는 좋았었지....라는 식으로.
개발 독재 시대에 대한 감상주의적 회고나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는 기성세대에게는
이 상태를 호전 시킬 수 있는 아주 매혹적인 해결 방식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식들의 세대에게 퇴물 취급 받거나, 그들의 가치가 쓰잘 데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험도 하고,
개저씨 소리나 듣던 나이든 세대가 젊은 녀석들에게 보란 듯 어깃장을 놓는 심정으로 투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거봐요~~내가 박근혜 찍지 말라고 했잖아요.”
“미안하다. 내가 면목이 없구나. 너희들 말을 들을 걸~~”
가족간의 이런 대화 상황을 떠올려보게 된다.
우리가 최순실로 대변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의 경험을,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해서 애완의 시대가 끝날 것인가?
저자는 아직도 애완의 시대는 대물림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시장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시장의 요구에 맞춰 만들어내는 곳으로 변질되어 버렸으며
젊은이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갇혀 오로지 정규직과 명품 만이 자신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결코 길들여지는 애완의 시대가 끝나려면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애완의 시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언젠가 연수를 받다가 본 영상도 떠올랐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세계 각국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었다.
대통령 오바마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할 것있으면 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콕! 집어서 ‘한국기자’라고 지칭 하였다.
아마 한국 기자에게 꼭 질문을 받고 싶었던가 보았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한국 기자들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오바마가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였다.
“이 자리에 와 계신 한국 기자 분 질문할 기회를 드릴 테니 질문하세요~”
나는 오바마가 두 번씩이나 이야길 하니 한사람의 기자라도 나설줄 알았다.
영상으로 보고 있는데도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배울만큼 배운 고학력을 가진 한국 기자들조차 질문이란 걸 잃어버린 건 아닌지.
보다 못한 옆의 중국인 기자가 한국인 기자 대신 질문하겠다고 나서는 장면을 보았을 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장면을 보다가 내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질문을 안 받으니 길들여져서 그래.” 라고 말하자,
주변에 있던 분들이 공감한다는 듯 킥킥~~ 웃었다.
학회나 소모임처럼 토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울 공간도,
선후배 사이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배울 계기도 사라졌다.
물론 인터넷 공간이 활발해지면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이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물질적 욕망이 최전방에 놓이고, 다른 가치는 잊혀진 채 인간관계는 이해관계로 치환되고,
살인적인 무한 경쟁으로 치달을 때 삶은 욕망과 소유와 투쟁의 연속일 것이며,
사람들은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를 찾으려는 헛된 소망의 늪에서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과연 그러한 것이 있는가.
지금 우리는 누구의 애완용으로 길들여지고 있는가?
<애완의 시대 / 이승욱 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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