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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소년이 온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소설가 한강의 작품이다.

광주민주화항쟁 이야기?

이젠 진부하지 않아?

영화로 다양한 매체에서 그리고 시위현장에서......하도 많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이젠 식상해진 이야기로 느껴질까?

지금껏 광주를 다룬 것들이 얼음을 해머로 치는 것이었다면 한강의 이 소설은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방법같아 보인다.

특유의 섬세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듯, 아주 세밀화로 그림을 그리듯 표현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고, 당시의 나이가 10살의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쓴 것 같다는 짐작을 해 보았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훌쩍 35년의 세월이 지나 점차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끔찍한 경험을 한 이들은 상처를 감싸 안은 채 나이가 들어간다.

나이 어린 이들은 책 속에서나 배우는, 마치 내가 한국전쟁을 책 속에서나 배운 것처럼,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하여 누구는 전두환 때가 참 경기는 좋았는데, 하면서 그 시절을 약간은 호의적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1장은 읽기가 불편하다.

 

행렬 사이로 너와 눈을 맞추려고 엄마가 깨금발을 디딘다.

우는 아이처럼 힘껏 찡그린 그녀의 이마를 향해 너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도 아니고 나는도 아닌 너는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작가는 왜 이렇게 썼을까? 아마도 곧 죽을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가지고 있던 시기.

 

2장에서는  죽은 자의 이야기이다.

죽었지만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자신의 죽어 썩어가는 모습을 본다.

원한에 사무쳐 이승을 떠돌며 자신의 몸이 구더기 범벅이 되는 것을 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언론에서는 광주사태라고 표현했었다.

한참 지난 후에야 성당 지하에서 당시 광주에서의 모습을 상영하여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가장 가슴 먹먹했던 대목이다.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 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다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 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 우리는....., 죽을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아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소년이 온다 / 한강 지음 / 창비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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