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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도쿄여행 1 - 그곳에 빈 집이 있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기장은 도쿄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수속을 마치고 밖을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지난 여름 파리에 도착했을 때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내리고 보니 비가 그친 것과 같았다.

 

데자뷰....

파리에서 도착한 첫날 카메라 잃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이번엔 캐리어에 묶지도 않았고 목에 걸지도 않고 아예 손에 들고 다녔다.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새로 또 산 카메라이다.

 

나의 개인 가이드인, 마가렛이 구글 지도를 보더니 전철을 타고 신카마가야에서 갈아타고,

다시 마스도역에서 한 번 더 갈아타고 목적지인 가메야리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전철표를 구입하기 위해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일본여성이 다가오더니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화면을 터치하면서 표를 구매 해주려는데, 가메야리는 화면에 안 나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액권을 구입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3000엔짜리 표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3000엔씩이나요? 하며 놀란다. 우린 도쿄에서 오래 돌아다닐 것이라고 말하자,

아하 그래요? 하면서 정액권 구입 버튼을 터치한다. 우리가 알아내도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

시간도 절약되고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듯해서 기분 좋게 그의 지시를 따랐다.

정액권 카드에는 파스모(passmo)라고 씌어 있었다. 버스도 지하철도 기차도 가능하다고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또 한 장의 카드를 마저 뽑고 돌아서니,

그 일본인 여성은 자기가 가르쳐 준대로 실수 없이 해내는지 뒤에서 가지않고 지켜보고 있다가,

제대로 표를 뽑아내자 선생님처럼 흐믓한 표정을 짓더니 목례를 하고 비로소 자기 갈 길을 갔다.

 

가메야리 (龜有)역에 내리니 6시도 안 되었는데 이젠 완전히 어두워졌다.

살짝 긴장이 되어서, 마가렛에게 열쇠 가지고 왔어?” 하고 묻자,

일찍도 물어보네~” 하면서 열쇠를 들어보여주며 킥킥 웃는다.

 

맥도널드 건물이 있는 길로 접어 들어서가다가 T자로 갈라지는 곳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꺾어들었다.

이젠 세븐일레븐이 나올 때까지 직진하면 된다. 한참을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가다보니,

불이 환하게 켜진 세븐일레븐이 멀리에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도 최초의 편의점이 들어선 것이 세븐일레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를, 골목 상권을 죽인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정겹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어쨌거나 사람도 생긴 모습과 상관없이 친절하면 다 정겹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세븐일레븐에서 좌회전하여 정자가 나오는 길까지 가서 다시 우회전해서 병원 건물을 찾으면

그 윗 층이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인 것이다.

우리는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길을 찾아 조카의 방 열쇠로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도쿄에 사는 조카는 지금 태국으로 여행 중이고 조카의 방은 비어있다.

그 비싼 땅값의 도쿄에 집이 비어있다는 사실과 내가 방학 기간이란 것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 빈 집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경제논리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마가렛은 비행기를 뻔질나게 탄 덕분에 골드회원을 넘어서

마침내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다이아몬드회원이 된 특권을 

나와 함께 누려 볼 기회를 갖게 되어서 더욱 기분이 좋아보였다.

 

남자 혼자 지내는 집인데도 워낙 깔끔한 아이라서 집 안은 무척 잘 정돈이 되었고,

담배를 피우는 아이임에도 담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방이 두 개인데 한쪽 방은 다다미가 깔려있었고, 거실에다 화장실에 욕실까지

신혼부부의 방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표를 달성했음은 물론, 오늘 하루 물건과 길을 잃지 않았음에 혼자 속으로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나의 어리버리함은 어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